* 이 글은 지난 2010년 2월 25일 열린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PDF 파일로도 발제문 전문을 첨부했습니다. 

금민 (사회당)


I. 들어가며

2010년 지자체 선거를 맞아 정치세력 간의 연대연합과 통합에 관한 논의가 많아졌다. 일부는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연대연합 논의에 이의를 제기하며 일부는 2010년 선거의 전환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에서는 중요 사안의 연대나 2010년과 그 이후의 일정한 시공간에서의 프로그램 연합이 현실적 목표로 제시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정치세력 간의 통합이 선거논의와 맞물려서 진행된다. 연대와 연합을 우선하는 논의도 있는가 하면 통합을 전제로 하는 연대연합론도 있다. 민주당은 국민참여당에 대하여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에 대하여 조직적 통합을 연대와 연합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한편에서는 1987년 이래로 한국에서 일종의 '유사 정당체제'를 형성해 왔던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입각한 민주대연합이 추진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역시 1987년 이래로 민주 대 반민주의 '기본 정당체제'와 나란히 일종의 '보조 정당체제'로 작동해 왔던 '노동자ㆍ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시대 규정과 중심 과제의 설정을 달리하는 여러 진보정치세력 간의 조직적 통합을 촉구하는 정당성 근거로 등장한다.

이러한 여러 갈래의 논의 중에서 정작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연대나 연합 또는 통합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문제이다. 무엇을 중심으로 연대ㆍ연합하며 어떤 내용으로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 곧 구체적인 시대 규정에 입각한 구체적인 핵심 과제에 대한 해법의 공통성, 즉 연합에 참여하는 여러 정치세력이 동의하는 공통적인 대안의 문제는 연합논의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무조건 통합하고 보자는 주장은 정치적 연대의 현실적 가능성마저 줄인다. 하지만, 선거연합을 위한 합리적 방안들이 논의의 모든 것이 될 때 과연 무엇을 위한 연합인가는 영영 불분명해질 것이다. 아래에서는 연대ㆍ연합ㆍ통합의 문제에서 정치세력 간의 공통적 대안에 관한 논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우선 여러 갈래 논의들의 결절점들을 따져 볼 것이다. 그러한 결절점들은 연대ㆍ연합ㆍ통합을 위한 공통적 대안의 윤곽과 위상을 좀 더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II. 첫 번째 결절점 - 민주대연합, 그런데 어떤 민주주의?

먼저 두 가지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 두 문제는 각기 다른 수준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민주대연합 또는 민주주의 연합정치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다. 두 번째 문제에 있어서 이해방식의 차이는 민주대연합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내용 문제에서 차이를 낳을 것이다.

이 시대는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이고, 이명박 정부에 의해 이 위기는 심화된다. 이와 같은 현실 진단에는 진보정치세력뿐만 아니라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재 진행 중인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에서 정치세력들의 의견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위기의 성격을 달리 규정한다면,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 투쟁의 핵심 과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II-1.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 이명박 정부는 독재 정부인가?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독재 정부인가?

많은 사람이 이명박을 독재자라 말하며 반독재 투쟁과 비슷한 반MB연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명박은 독재자가 아니다. 독재자가 아니라고 말할 때의 의미는 이명박 정부가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며,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권으로서의 인권의 후퇴도 잠정조치적이지 제도 수준에서 관철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1987년의 전환은 불가역적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또한 독재자이다. 그리고 이때 독재자라는 의미는 1987년 민주항쟁을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의미와는 좀 다른 뜻이다. 그것은 지대적 수탈과 조세재정적 수탈의 집행자이고 금융적 수탈의 보호자라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는 광범위한 사영화 및 영리화 조치를 통해 공공의 것을 수탈하는 수탈자라는 뜻에서 독재적이다. 독재 개념이 가진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야기되는 오해를 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부'라고 부르는 대신에 '수탈 정부'라고 불러야 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수탈체제의 관철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서 작동한다. 4대강 문제도 단순히 생태환경파괴의 문제만이 아니며 수탈의 문제이기도 하며, 세종시 문제도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탈의 문제이다. 토건업체에 이윤을 보장하거나 원형지를 헐값에 공급하는 지대적 수탈방식뿐만 아니라 재정상의 문제를 복지재정 축소로 해결하려는 재정적인 수탈방식과 이로 인해 국가나 개발공사 등이 입게 되는 손실을 조세나 공적자금 투입으로 해결하려는 조세적인 수탈방식은 두 문제 모두에서 촘촘히 얽혀 있다. 4대강 문제를 생태환경문제의 시야에서만 대응할 때, 또는 세종시 문제를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로만 한정시킬 때,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수탈을 문제 삼지 않는 협소한 대응은 가치근본주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에 의한 수탈체제의 전면화는 현실적 국익을 위한 이성적 결단으로 둔갑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탈을 통해 시민의 사회적 권리는 축소되고 시민 또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은 보통선거권과 같은 형식적 동등성에 한정되어 버린다.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보편적 조건으로서 모두의 보편적 복지는 파괴된다. 공공의 것에 대한 파괴자라는 점에서 이명박은 독재자이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문제로부터 유리되어 단지 절차의 문제로 형해화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확립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다소 시대착오적이지만 매우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해서 위기의 세계적 수준, 위기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시대란 사회국가와 사회공공성 파괴의 시대이고, 공공적 복지체계가 시장화되고 잔여화되는 시대이며, 그 결과 그 이전에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접근 가능했던 공공서비스가 시장에서 구입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뀐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는 서유럽에서도 90년대에 이미 진행된 일이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부이다. 이명박 정부를 통해 1997년 이후 진행되어 온 민주주의 위기는 심화된다. 하지만, 이미 민주주의 위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곧 1997년 체제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물려받았고, 현재 진행 중인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시대착오적인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통해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1987년 민주주의의 성과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1987년 민주주의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에서도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으로만 도입된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의 부재가 낳은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 예산제도의 문제, 기소 임의주의의 문제, 헌법재판제도의 문제 등 1987년 민주주의는 수많은 문제에서 미완성적 성격을 가진다. 이명박 정부는 이와 같은 미완성적 성격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3,000쪽 수사 기록 미공개의 문제가 용산참사의 핵심이 아니고 서민 배제의 재개발 정책의 문제, 곧 지대적 수탈체제의 문제가 핵심이듯이 인권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신자유주의적 수탈체제의 전면화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또한, 이와 같은 수단의 사용은 1987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그 미완성적 성격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최근에 일어난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 수색 사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태의 핵심에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악법이 놓여 있다. 이는 1987년 민주주의의 미완성적 성격과 관련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분쇄하려는 정치적 의도와도 관련된다. 근본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은 '독재 정권'에 의한 1987년 이전으로의 퇴행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일반적인 증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운동의 과제가 단순히 이명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 없음을 뜻한다. 1987년 전환으로 성취한 모든 성과가 일정하게 후퇴하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를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지시키고 평등 선거권을 박탈하는 반민주주의라고 규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의 해법도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는 '민주회복'일 수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방향은 1987년 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극복의 문제와 불가분의 연관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현재의 시기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반민주주의도 아닌 시대, 곧 신자유주의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일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관철이며 이명박 정부야말로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필연적인 정치적 귀결이다. 단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달리 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인 사영화, 부자 감세, 복지 삭감을 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착시현상이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착시현상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현재 진행 중인 민주주의의 위기의 성격을 이명박 정부에 의한 1987년 민주주의 후퇴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반MB연대의 목표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우회한다면, 그러한 반MB연대는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연합일 수 없다. 오직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연합만이 진정한 민주대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신자유주의로 초래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극복의 대안은 무엇일까?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 서민중심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이고, 곧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다. 단언하여, 복지야말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복지의 개념일 것이다. 그것은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평등 원리 위에서 작동하는 복지, 즉 모두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복지이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겠다.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현재 논의되는 연합정치의 주된 문제인 민주대연합이 가지는 유사 정당체제적 측면인 것 같다.

II-2. 유사 정당체제로서의 민주대연합의 장기 지연과 '민주주의 대안연대'의 실종

'반MB연대'야말로 적어도 수의 민주주의에서는 가장 넓은 범위의 대중결집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가능성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반MB연대'는 잠재적 최대를 포괄하지만, 적극적 최대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이는 '부정적으로 구성된 연대'(negatively framed solidarity)의 한계 때문이다. 적극적 최대, 곧 현실적 최대를 구성할 수 있는 연대는 '민주주의 대안연대'이고, 이는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에 대한 공통된 인식, 위기의 극복 방식과 핵심과제 선정에 대한 합의, 위기 극복 이후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이 시대가 요청하는 '민주주의 대안연대'는 신자유주의로 초래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사회적 대안을 분명히 내세우는 정치연대, 곧 '긍정적으로 구성된 연대'(positively framed solidarity)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 연대'는 신자유주의 극복의 대안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동일한 문제를 반대 방향에서 살펴보자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운동은 언제나 민주주의 운동이다. 그러한 운동이 이를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그것은 민주주의 운동의 새로운 내용이며,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에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운동은 없다.

위기의 극복과 전환을 위해 요청되는 것은 긍정적 대안연대이다. 부정적 저항연대는 2008년의 촛불과 같은 유형의 저항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역사에서 한번 일어난 사례는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지 않는다. 1997년 이후 소위 민주화세력의 집권이 만들어낸 착시 현상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문제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문제로,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문제로 한정되었다. 이와 같은 분리는 2008년까지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은 '반(反)신자유주의 저항연대'의 구성을 시도했을 뿐,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연대'를 구성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10년간의 '민주화세력' 집권기의 착시 현상은 사라졌지만, 그 기간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대안연대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답보성은 후과를 남기고 있다. 연합정치 논의는 반MB냐 반신자유주의냐의 문제로, 즉 저항연대의 방향에 관한 문제로 앙상하게 축소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시기 동안의 연합정치 논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결합하여 사고하지 못하는 한계 못지않게 저항연대에서 대안연대로의 발전의 문제도 과제로서 짊어지고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환의 문제는 가치연합 이상의 대안연합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반MB대안연대의 총괄 대안을 '빈 기표'로 이해하는 태도는 주어진 과제에 비추어 매우 부적절하다. 대안은 '빈 기표'가 아니며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이어야 한다. 수렴을 거쳐 합의해 가야 할 사항은 이와 같은 전체적인 방향이 아니고 그저 극복의 구체적 수단에 관한 것일 뿐이다. 대안 자체가 '빈 기표'라면 그것을 우리는 대안연대라 부를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보면, 지방선거가 100일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민주주의 대안연대'를 구성하는 일은 난망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6월의 실제적인 개표결과와 무관하게 내용상으로는 이미 진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정당들의 태도를 보자면,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부 심판을 위한 민주대연합을 당면 과제로 보는 듯하며 일종의 전술적 연합으로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5당의 선거연합을 추진한다. 물론 당의 통합을 전제로 하는 진보대연합을 또 다른 축으로 설정한다. 이는 이중성이라기보다 민주노동당의 객관적 처지의 반영이다. 이를 이중성으로 비난하는 것은 객관적 처지를 무시하는 비난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구사하는 연합정치의 두 축은 분명히 민주노동당 운동의 객관적 한계를 각각 고유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진보대연합의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살펴볼 것이다. 진보신당 역시 5+4테이블에 참여한다. 진보신당은 지방선거연합을 단순한 ‘반MB연대’가 아닌 ‘반MB대안(가치)연대’로 이해하며 ‘진보대연합’은 이를 위한 필수요건으로 파악한다. 연합정치의 두 축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진보신당도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이지만 '반MB대안(가치)연대'를 형성하겠다는 목표는 '민주주의 대안연대'에 한 걸음 다가선 기획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에서 시간은 배제할 수 없는 요소이고, 이명박 정부 2년간 이루지 못한 일을 급박한 선거연합의 틀 안에서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명분을 위한 수사처럼 들린다. 게다가 구체적인 대안연대인지, 막연한 가치연대인지도 분명치 않다. 물론 두 번째 후자의 구축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가 요청하는 연대의 상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막연한 가치연대에 입각한 감성정치에 대중이 공명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 수익이 진보신당이나 진보정치세력에 돌아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아마도 가치연대는 국민참여당에 최대 수익을 보장할 것이다. 어쩌면 선거연합 논의 자체가 후보구도의 특성상 민주당 대 국민참여당+α의 구도로 짜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연합정치의 두 축을 설정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대안연대는 시대적 요청이다. 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 것인가를 우회하고, 또는 이를 빈 기표로 남기고서 그와 같은 대안연대가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점과 지방선거 100일 전이라는 시간적 상황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각으로 생긴 비용은 어차피 지불할 수밖에 없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늦었다 아니다가 아니라 어째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사회대안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채 민주대연합의 틀이 작동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웃을 필요도 없고, 울 필요도 없지만, 이해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놓여 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치지형은 1987년 체제에서 기본 정당체제와 유사한 작용을 했고, 지금도 다른 지형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위기 속에 장기 지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로 민주당은 기반을 잃었지만, 이명박 집권으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상징 지형이자 20년 이상의 역사블록으로 복원되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장기 지연이 가능할까? 그 답 역시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하며 이를 통하여 80년대적 과제인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대표성을 지금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은 19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바로 그 순간부터 당대성(當代性)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을 모두 민주노동당 운동의 한계에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구체적인 사회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인 좌파 대안정당의 미형성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여전히 기본정당체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회대안의 부재 속에 진행되는 민주대연합 논의가 위력을 떨치는 이유는 진보정치세력 전체의 미숙성과 한계 때문이다.

III. 두 번째 결절점: 진보대연합, 그런데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대연합을 둘러싼 논의는 통합론과 연대연합론으로 갈라진다. 민주노동당은 통합을 전제로 연대연합을 제의하며, 진보신당은 연대의 심화를 통해 통합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당의 입장은 진보의 다양성의 인정을 연대연합의 출발점으로 보는 점에서 진보신당과 비슷하다. 이와 같은 차이는 단순히 경로의 문제만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의 당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의미한다. 사회당의 관점에서 진보의 혁신과 재구성을 통한 통합 및 정치연합 구성을 근거전략으로 삼고, 현 상태에서의 연대연합은 혁신과 재구성으로 나아가는 경로로서 의미를 가진다. 연합정치에 대한 사회당의 태도와 비슷한 관점은 진보신당의 태도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진보대통합론은 민주노총의 추진하는 통합론과 궤를 같이한다. 노동자 민중의 정당은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다양성은 단일한 정당 안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결국은 분당이라는 결과를 낳은 패권주의는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이명박 정부를 통해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정당체제로서 장기 지연하듯이 노동자 민중의 독자정치세력화도 기본적 정당체제에 병렬적인 보조적 정당체제로서 장기 지연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진보단일정당론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와 같은 지연현상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발전의 지연 현상이지 과거를 복원할 힘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의 발전 방향은 80년대의 노동자 민중의 독자정치세력화를 넘어서는 의제를 설정하고 현대의 신자유주의 수탈경제를 극복할 사회대안을 중심으로 연대연합하고 다양성에 기초하여 발전적인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양한 것으로부터 하나됨"(E Pluribus Unum)은 "하나에 앞선 다양한 것"(plures ante Unum)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다양한 것이 있어서 비로소 하나도 있다." 

IV. 세 번째 결절점: 진보의 재구성, 그런데 그러한 재구성을 위한 공통의 대안은?

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ㆍ연합ㆍ통합에 진보신당이나 사노준, 그리고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현재 조성된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동당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어떤 대안이냐는 문제. 사노준은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서 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의 독자정치세력화로 목표를 재설정한 듯하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아직 빈 기표이지만,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내용 이전에 지향의 문제일 것이다. 후자의 문제라면 사회당은 이미 2002년에 사회주의 선언을 한 바 있고 전자의 문제라면 빈 기표를 내걸고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는 정치를 구성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진보신당은 ‘복지동맹’, ‘생태복지연합’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대안의 형태로 제시되지 않았다. 사회당은 민주주의 위기와 세계경제 위기의 시대에 신자유주의 수탈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아울러 지방선거 승리와 ‘진보재구성’을 위한 ‘대안연합’으로 ‘기본소득연합’을 희망한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의 수준에서도 6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20만 원 정도의 조건 없는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진보정치세력의 공통강령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상급식이 그러했듯이 동등한 자격에 입각한 공통적인 급여이고, 바로 그와 같은 단순성은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회당은 금융적, 지대적, 조세재정적 수탈을 극복하는 체계적인 대안이 필요하며 투기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와 토지세로 재원을 조성하는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이와 같은 대안의 중요한 일부라고 본다. 하지만, 사회당의 입장과 주장은 이렇다는 것이다. 사회당은 다른 진보정치세력이 제출하는 구체적인 대안과 함께 우리의 대안을 함께 논의하고 합의해갈 용의가 있다. 이를 통해 진보정치의 좌파 대안정치로의 재탄생에 일조할 의지가 있다. 연대ㆍ연합ㆍ통합은 오직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논의해야만 미래 지향적일 수 있다.

"정치는 과거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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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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