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0년 1월 27일 서강대 다산홀에서 개막된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Seoul Basic Income International Conference 2010) 발표문 전문입니다.
금민*
1. 들어가며
이 글의 중심적인 관심은 일체의 자산 심사나 노동 강제 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충분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일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글의 목표는 기본소득에 대한 적절한 정당화 이론(theory of justification)의 제시이다. 물론 이와 같은 논의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실천적 논의에서 그다지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분명히,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제고에는 실현가능성과 실현 모델에 관한 논의, 재원과 지급액에 관한 논의, 사회적ㆍ경제적 효과에 관한 논의가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는 우리를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칙에 관한 논의로 이끌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칙을 명확히 하는 일은 사회적 이행의 현실적 조건과 경로를 밝히는 일에 분명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이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는 정당성의 준거를 먼저 설정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모든 정당화는 척도의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기본소득은 척도 x에 입각할 때 정당하지만, 척도 y에 입각할 때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정당성에 관한 논의는 척도에 관한 논의이며, 어떤 척도가 과연 척도로서 자격이 있는가라는 문제에 관한 논의일 것이다. 이 글에서 채택한 척도는 '자유'와 '공화국'이다. 두 가지 모두 익히 알려진 전통적인 준거점들이다. 자유의 근대적 개념은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정당화의 중심 개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정치ㆍ사회철학과 경제윤리학의 중심 범주이다. 이 글은 자유 개념의 구성적 전제가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와 함께 개인의 자유 개념에는 구성적 전제가 필요하다는 점과, 그것은 지구에 대한 모든 인류의 공유(共有)라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 서로 다른 조건과 처지에 서 있는 모든 개인의 '공통성'은 지구에 대하여 모든 인류가 가지는 공유자로서의 자격일 것이다. 기본소득의 정당성 논증을 위하여 이 글이 이와 같은 전개 방식을 취하는 까닭은 한편으로는 자유의 가능 조건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 개념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인류의 공동사회로서의 '공화국'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공화국'은 기본소득의 정당성 검토를 위해 이 글에서 채택한 두 번째 준거인데, 이는 자유의 개념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진다. 그것은 멀리 그리스와 로마까지 소급한다. 물론 '공화국' 이념의 발전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이 글의 주된 관심사인 것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적절한 정당성 이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공유의 관계를 '보편적 공화국' 개념의 내적 구조로서 확보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이 글에서 전개한 논증의 첫 부분(제2장과 제3장)은 자유 개념의 재규정으로부터 출발하여 공유 개념을 거쳐 모든 개인의 '공통성'으로서의 '공화국' 개념으로 전개된다. 이에 기초하여 두 번째 부분(제4장)에서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과 민주주의 원칙의 상동성(相同性)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글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현존의 '민주공화국' 개념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평등(민주주의)의 원칙과 공통성(공화국)의 원칙으로부터 검토한다.
자유, 평등, 공통성의 원칙은 이 글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 검토를 위해 채택한 척도들이다. 그것들은 현존 사회의 구성원 대개가 동의할 정당성 준거로서 충분하다.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칙에 대해서도 우리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자유, 평등, 공통성을 보유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연합으로 표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의 그 유명한 정식화, '자유로운 생산자의 연합',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여전히 불명료한 것은 자유의 진정한 개념, 연합의 진정한 개념이었을 뿐이다. 현존 사회를 구성하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내파(內波)의 방식으로 개념을 확장하고 새로운 내용을 획득하는 것도 하나의 접근 방식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의 관심은 자유, 평등, 공통성의 잘 알려진 원칙에 충실하면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검토하는 일을 넘어선다. 거꾸로 이 글은 기본소득을 통해 그와 같은 원칙들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고자 시도한다. 곧 이 글의 진정한 목표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라는 '사고 실험'을 통해 정치적ㆍ사회적ㆍ경제적 정당성의 현존 척도를 재검토하고 정당성 검토의 준거를 새로 생성하는 일이다. 그러한 작업은 현존 사회의 척도에 입각한 정당화를 넘어서며 -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칙이 될 수도 있을 - 척도 그 자체를 새로이 생성한다.
2. 우리 모두의 기본소득과 우리 모두의 실질적 자유
자유의 관점으로부터의 정당화는 기본소득에 관한 현대적 논의를 이끌어 온 판 빠레이스(van Parijs)의 작업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Real Freedom for All)에서 판 빠레이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받아들이기 힘든 불평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자유의 중요성 사이에서 두 번째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제1장에서 그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자유의 목표들, 자유 개념을 구성하는 전제인 강제 개념의 두 유형,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의 구분 등을 특유의 분석적 엄밀함 속에 검토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자유 개념은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로서 재구성된다. 판 빠레이스는 자신의 입장을 '실질적 자유지상주의'(Real-libertarianism)라 규정하며 단순히 평등주의적일뿐인 그 외의 '좌파 자유지상주의'(Left-libertarianism)와 구분한다. 소유(ownership) 개념을 자원에 대한 모두의 '동등한 몫'(equal share)으로 정식화하는 힐럴 스타이너(Hillel Steiner)와 비교할 때, 자유 및 권리 개념에 관한 판 빠레이스의 재구성은 '자기소유권의 원칙'(principle of self-ownership)과 '최소수혜자 우선의 원칙'(principle of leximin priority) 모두를 더 많이 보장할 뿐만 아니라 그 둘의 상관관계를 더욱 정연하게 만든다. 이처럼 재구성된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의 개념은 정의(Justice) 개념 특유의 기초인 개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종류의 연대성의 지평을 열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유지상주의의 지반 위에 수립된 논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본소득의 정당화에 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 빠레이스의 정당화가 기초하는 자유지상주의 논변의 지평이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당화를 위하여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우리는 되물을 수 있다. 정당화를 수행하기에 더 적절한 논변 지반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판 빠레이스의 논구에 대한 치밀한 평가나 그의 중요 관점 중의 하나를 더 상세히 전개하는 일은 이 글의 목표를 벗어난다. 대신에 아래에서는 판 빠레이스와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자유 개념을 재구성해 볼 것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자기소유권'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사회에 대한 정당성 준거를 확보하기 위한 이와 같은 방식은 모든 종류의 자유지상주의의 유적 특성을 이룬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개 방식에는 논증 그 자체의 숨겨진 전제가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판 빠레이스가 재구성한 실질적 자유 개념도 이 개념을 가능하게 만드는 좀 더 근원적인 전제에 닿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전제는 자유지상주의 논변에서 원천으로 인정되는 로크(J. Locke)의 텍스트에서 좀 더 쉽고 명료하게 발견될 수 있다. 예컨대 그것은 '근본적인 자연법'이나 대지에 대한 공유 개념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로크의 자유, 권리, 소유 개념의 재구성과 상호간의 논증적 연관관계를 밝히는 것은 자유지상주의 논변의 출발점으로부터 그러한 논변의 틀 자체를 형성하는 전제가 과연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유지상주의가 인정하는 고전적 텍스트로부터 자유지상주의 논변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자유지상주의적으로 독해될 수도 있을 로크의 논변을 따라 가면서 로크 안에는 구성 요소로서 내장되어 있으나 현대의 자유지상주의에는 생략되어 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과연 자유와 권리와 정의의 구성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밝혀 볼 것이다.
1) 개별적 권리의 정당화와 자유 개념
신자유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자유의 개념은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다. 그것은 외적 강제(coercion)가 없는 상태를 뜻하고 이와 같은 자유 개념은 홉스(Thomas Hobbes)까지 소급된다. 홉스는 권리와 법을 자유와 의무의 쌍에 대응시키면서 권리는 법이 없는 곳에 존재하며 자유는 의무 및 강제가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에게 자유는 권리의, 강제는 법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이와 같은 자유 개념은 로크 이후에는 벤담(J. Bentham)에게서, 그리고 그린(Thomas Hill Green) 이후에는 벌린(Isaiah Berlin)에게서 재현된다.
그러면 로크의 자유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홉스의 법 개념인 명령설(imperative theory of Law)이 로크의 법 개념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크에게 법은 이성과 정확히 일치하며 법과 권리, 강제와 자유는 홉스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대립되지 않는다. 이 점은 『통치론 제2부』(Second Treatise)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참다운 의미에서 법이란 자유롭고 지적인 행위자가 자신의 적절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제한하기보다는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법(강제)이 없는 곳에는 권리(자유)도 없다고 보는 홉스와는 정반대로 로크는 "법이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는 한편으로 "자유란 타인의 구속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법이 없는 곳에서는 그것이[그러한 자유가]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결국 로크에게 법은 자유와 권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전제로서 파악된다.
로크 텍스트의 재구성을 여기까지 진행하면 그의 법 개념은 부자유, 곧 "구속과 폭력"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법은 소극적 자유를 보장해 주는 야경국가의 강제력으로 되고 권리는 그러한 불법 국가에 대한 방어권으로 법이 부여한 자격(title)이 되고 만다. 또한 로크의 논의는 자연법(Law of Nature)이자 이성법(Law of Reason)으로서의 법에 관한 것이기에, 그의 논변 전체는 야경국가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 이론이자 소극적 방어권 우선의 권리론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로크는 가장 "근본적인 자연법"(the Fundamental Law of Nature)의 내용을 "인류 전체의 보존" 또는 "전체 사회구성원의 보존"으로 본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해 많은 곤란함을 제공한다. 두 가지 측면을 상호 모순이 없도록 재구성하면 소극적 자유와 방어권으로서의 권리 제도와 이를 보호해 주는 야경국가가 전체 사회구성원의 복지에 결과적으로 가장 크게 기여한다는 '규칙공리주의'(rule-utilitrianism)적인 입장으로 나아가게 될 뿐이다. 이러한 해석은 흄(D. Hume)이 비꼬고 벤담이 경멸했던 로크 이론의 자연법철학적인 틀과 들어맞지 않는다. 아울러 로크도 어려운 사회구성원의 존재를 인정하며 자선(charity)를 자연법적 원칙으로 주장하는 한에서는, 전체 사회구성원의 복지를 위해서라면 법은 단순히 개별적 자유의 침해를 막는 울타리 이상의 적극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법은 정부와 개인에게 어려운 처지의 사회구성원을 도울 의무를 부과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존 던(John Dunn)과 제임스 털리(James Tully)는 자유지상주의가 로크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정반대의 로크 이해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는 권리중심적 철학에 반대하는 의무중심적 해석으로 귀결된다. 즉, 자유지상주의의 로크 이해와는 달리 로크의 정치철학의 중심범주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물론 로크의 논증 구조에서 권리가 출발점인 것은 아니며 자연법이 출발점이고, 또한 법을 의무를 뜻하기에 의무가 출발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로크의 자연법철학의 체계가 법에서 출발하여 의무로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로크의 자연법은 권리를 낳는다. 모든 인류를 보존하라는 "근본적인 자연법"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존할 의무'를,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보존이 위태롭지 않을 때 가능한 최대한 다른 사람들을 보존하라"는 의무로 구체화된다. 로크의 논증 구조에서는 근본자연법이 담고 있는 의무 내용의 이중화를 통해 개인의 권리, 타인에 대한 의무, 그리고 권리와 의무의 대응관계(correlation)가 한꺼번에 입론된다.
한편으로, 자기보존 의무는 자기보존의 권리를 성립시킨다. 자기보존권은 노동을 통해 수립되는 소유권과 같은 권리로도 나타나지만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자선을 받을 권리'(charity rights)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타인의 보존에 가능한 한에서 조력할 의무는 - 자연상태에서는 타인이 평화를 추구한다면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조건적인 상호성에 입각한 평화 의무 이외에는 오직 자기보존 의무만이 있을 뿐 타인에 대한 어떤 의무도 있을 수 없다고 보는 홉스와는 정반대로 - 타인의 자기보존권을 존중할 소극적 의무와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적극적 의무를 낳는다. 이처럼 근본자연법이 타인에 대한 의무를 발생시키는 한에서 그로부터 발생한 권리도 홉스의 자연상태에서의 권리와는 달리 '보호된 권리(protected rights)가 된다. '자선을 받을 권리'(charity rights)에 대해서는 좀 다른 방식의 논증 구조도 구성될 수 있다. 즉, 로크에게 타인에 대한 의무가 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로 이중화되기 때문에 근본자연법으로부터 나오는 권리도 이중화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의무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권리를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은 관계는 권리와 의무의 대응관계일 뿐만 아니라 의무가 권리를 논증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로크의 논증 체계에서는 의무가 권리를 만들어낸다는 점과 한 사람의 권리에는 적극적 의무이건 소극적 의무이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의무가 대응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의무가 권리를 만들어내는 한에서 로크의 자연법철학이 권리중심적인가 또는 의무중심적인가라는 질문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 된다. 바로 로크에게 개별적인 인간들의 권리와 의무는 모두 동일한 기초로부터 성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초는 로크에게서 모든 인류를 보존하라는 근본자연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자연법은 원천적인 "자연의 공동체"(community of Nature)에서 작동하는 법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원천적 상태는 보편적인 자연법 공동체(universal community of natural law)로 파악된다. 아래에서는 로크의 권리 논증에서 이와 같은 원천적 공동체가 어떤 논증적 기능을 가지는지에 대해 그의 소유권 논증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겠다.
2) 자기소유권과 만물에 대한 공유 개념의 관계
『통치론 제2부』중에서 자유지상주의 틀 안에서 많이 논의된 부분인 제5장 「소유에 관하여」(Of Property)이다. 그리고 자유지상주의적 수용의 한 극단에 로버트 노직이 위치한다면, 다른 극단에는 힐럴 스타이너가 위치할 것이다. "자연의 단일한 공동체의 공유"(sharing all in one community of Nature), 곧 만물에 대한 공동소유("community of all things amongst the sons of men")는 로크의 논증 전체의 전제로 작용한다. 소유권 장(章)의 첫 절인 § 25에서 로크는 소유권 논증의 두 가지 전제(premises)로서 한편으로 원천적인 공유제를, 다른 한편으로 자기보존(self preservation)의 권리를 제시한다. 이어서 § 26에서는 자기보존권은 자기보존을 위한 수단에 대한 권리를 당연히 파생시킨다는 점을 논하며, § 27에서는 이와 같은 수단에 대한 권리로서 인격, 신체, 행위, 노동에 대한 자기소유권을 제시한고, 이로부터 '소유 획득에 관한 노동론'(labor theory of property acquisition)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로크는 자기보존권을 자신에 대한 소유권이 노동에 대한 소유권으로 발휘되고 외적 사물에 대한 소유권으로 확장된다는 논변, 소위 '합체 논변'(mixing argument)을 제시한다.
제5장의 논증 전체에서 노동 개념은 신의 명령으로서 '노동 계명'(§§ 32, 34-35), 인간의 욕구의 측면에서의 노동의 필연성에 관한 설명(§§ 32, 35, 36), 노동을 통한 일반적 복지의 증대에 대한 설명(§§ 37, 41), 노동을 통한 가치증대(§§ 36, 40, 42, 43) 등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그로티우스(H. Grotius) 및 푸펜도르프(S. Pufendorf) 등의 '점유에 의한 소유논증'(theory of occupation)에 대한 로크의 비판에서 중요한 개념적 도구가 되며, 소유권은 동의와 계약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논변들에 대한 반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크가 제공하는 논증의 연쇄에서 간과해서 안 될 점은 노동에 대한 소유는 인격에 대한 소유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즉, 로크의 소유권 논증의 분석적 핵심은 인격에 대한 소유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행위 주체의 권리가 행위를 통해 결과물에 합체된다는 설명, 외적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인격권의 확대로서 이해하는 방식, 바로 '합체 논변'이다. '합체된 것'은 노동이지만, 바로 그 합체된 노동이 배타적인 소유권을 성립시키는 이유는 인격에 대한 소유는 곧 노동에 대한 소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 26에서 말한 자기보존 수단이지만, 이와 같은 수단이 권리를 만드는 이유는 노동이 인격에 대한 소유를 외적 사물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체 논변'은 토마토 주스 캔을 바다에 던지면 바다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대신에 토마토 주스 캔에 대한 소유권을 잃는 것이 아니냐고 로버트 노직이 항의할 때 노직의 이해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물론 로크도 노직과 마찬가지로 노동이 외적 대상의 가치를 증대시키기 때문에 소유권을 성립시킨다는 논변을 사용하고 있지만, 노동가치 증대의 논변은 로크의 소유권 논증에서 보조적인 지위를 가질 뿐이다. 인격에서 출발하여 노동을 거쳐 소유권으로 귀결되는 '합체 논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변의 출발점인 "인격에 관한 소유(property in his own person)"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와 과연 이 논변은 로크의 소유권 논증 전체에서 독립적인 부분인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 6에서 로크는 모든 사람을 신의 소유물(workmanship)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 26에서는 로크는 아무런 설명 없이 만인은 자신의 인격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 두 관계가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로크에게 인격의 개념은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의 전제로서 "법률적 개념"(a forensick term)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인간이 신의 창조물인가 아닌가의 종교적 문제에 대해 중립적이다. 로크에게 인격에 대한 소유는 개인 간의 관계의 기초로서 모든 사람의 당연한 권리이다. 또한 자기보존권도 인격에 대한 소유권의 형태로 구체화될 때에만 자기보존을 추구하는 개인 상호간의 사회적 관계가 전개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모든 사람은 신의 소유물이라는 § 6에서의 언명에 의지하여 로크의 소유권을 지구와 인간 자신에 대한 신의 소유권에 기초하는 권리, 곧 단순한 용익권(use rights)으로 간주하는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통치론 제2부』의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신학적 함축은 소유권 논증의 내적 구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격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를 자유의 기초로 보고 여기에 타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의무를 대응시키는 - 많은 점에서 칸트에 접근하는 - 로크의 출발점이 '합체 논변'을 하여금 행위와 행위 결과물 사이의 연관을 보장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합체 논변'은 로크의 소유권 논증의 고유한 내적 구조를 이룬다. 자유지상주의 논변이 '합체 논변'을 로크 소유권 이론의 전체적 맥락으로부터 분리하여 수용하고 나름대로의 분석적 전개를 시도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하지만 단지 소유권 논증의 일부분에 불과한 '합체 논변'에만 의지하여 이러한 논변이 서 있는 전체적인 맥락을 간과하는 통상적인 해석은 또 다른 이유에서 지지될 수 없다.
외적 대상에 대한 소유권의 기초로서 자기소유권(self-ownership)은 로크에게서 다른 어떤 논거와도 무관계한 자립적 부분은 결코 아니다. 이는 로크가 § 25에서 자기보존권뿐만 아니라 만물에 대한 원천적 공유제를 사적 소유권의 전제로서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 분명한 듯하다. 이는 로크가『통치론 제1부』에서 로버트 필머(Robert Filmer)의 '세계에 대한 아담의 사적 소유권'에 대해 논박하면서도 일관되게 토지 공유의 관점을 펼친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자기소유권과 공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로크의 소유권 이론을 이해하는 데 관건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양자의 논리적인 관계는 첫째로 양자는 서로 독립적인 근거이지만 모두 "근본적 자연법"으로부터 나온다는 점과, 둘째로 인격, 신체, 활동, 노동에 대한 자기소유권이 외적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성립시키는 적극적 근거라면 공유는 그러한 소유권의 성립에 대해 가능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개인들이 비록 자신의 인격과 노동에 대한 배타적 소유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계에 대한 근원적 공유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외적 대상에 대해서도 일체의 접근과 이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대상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공유라는 가능 근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해석은 일단은 로크의 논변에 대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재구성일 뿐이다. 하지만 § 25의 출발점과 § 27의 '합체 논변'을 통해 논증된 사적 소유권에 대해 로크는 다시금 §§ 27, 31, 34, 46에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노동을 통해 사적 소유를 성립시킬 기회가 충분히 남아 있어야 한다는 유보 조항, 즉 '충분성 조건'(sufficiency-proviso)을 단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 대한 텍스트 상의 근거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3) '보편적-필수적 권리'와 '특수하고 조건적인 권리'의 구별과 '충분성 조건'의 권리 논증적 기능
로크의 사적 소유권은 지구에 대한 전 인류의 공유를 가능 근거로 하고 자기소유권을 적극 근거로 하여 논증된다. 그런데 이런한 권리는 과연 어떤 종류의 권리일까? 로크의 논증 방식을 따르자면, 노동이라는 계기를 통해 자기소유권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떠한 사적 소유권도 성립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특수하고 조건적인 권리'(special-contingent rights)이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 조건과도 무관한 권리, 곧 무조건적 권리(unconditional-noncontingent rights) 개념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로크의 체계에서 무조건적인 권리는 '특수하고 조건적인 권리'를 낳는 직접적 근거로 나타난다. 예컨대 자기소유권은 만인의 무조건적 권리이며 대상에 대한 사적 소유라는 '특수하고 조건적인 권리'를 낳은 적극 근거이다. 여기에서 던져볼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로크에게서 소유권의 가능 근거로 나타나는 지구에 대한 공유는 무조건적 권리인가? 또는 인격에 대한 권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조건적인 권리를 직접적으로 발생시키는가?
일단, 공유 개념 그 자체는 개인의 '배타적 권리'(exclusive rights)를 의미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물론 공유에 기초한 이용권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로크의 논증 체계에서는 공유지의 이용이란 노동을 의미하며 곧바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으로 귀결된다. 비록 로크는 공유 개념을 소유권의 전제로 삼았지만 그의 체계 안에서 '공유 개념에 포함된 열린 권리'(inclusive rights)는 개별적 권리로 나타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공유는 개인의 조건적인 권리의 가능 근거이지만 그 자체로는 개인의 무조건적인 권리로서 현실화되지 않으며 그 밖의 조건적인 권리를 직접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로크의 논증 구조에서 가능 근거는 언제나 적극 근거를 필요로 하며 가능 근거 자체로서는 어떤 권리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로크는 소유권 논증의 전제를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독립된 전제로 설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통상의 논증 구조에서 전제는 그로부터 얻어진 결과 속에 일정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로크의 체계에서 이는 소유권의 한계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공유는 사적 소유권의 가능 근거이기도 하지만 그 한계도 만든다. 로크가 소유권의 한계인 '충분성 조건'을 느닷없이 등장시킬 때 이는 '합체 논변' 이외에 또 다른 근거로 작용했던 원천적인 공유라는 외적 구조를 소유권 논증의 내부로 끌어들인 것이다. 논증 구조 전체의 정합성에서 볼 때 사실 그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원래 던졌던 질문은 좀 더 다른 형태로 가다듬어 진다. 곧, '충분성 조건'은 권리 논증적인 성격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이다. 애석하게도, 로크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인디언 추장과 영국의 날품팔이의 처지를 대비하는 § 41에서 그는 사적 소유권에 기초한 물적 생산의 발전이 '충분성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경험 논거만을 제시할 뿐이다. '충분성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이 조건은 권리를 발생시키는가라는 질문은 규범 논거를 통해 답해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로크는 이 문제를 회피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텍스트 재구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고 실험'이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적 소유권을 수립할 기회가 모두에게 충분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조건, 곧 로크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자유롭게 개간할 수 있는 미개간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경우,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로 바꾸어 말하자면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만인에게 열려 있지 않은 경우, 그런데도 - '하인'(servant)의 노동은 주인의 소유권을 만든다고 말하는 로크 식으로 볼 때 - 독립적 노동에 대한 대체 수단인 임노동도 더 이상 불가능한 경우, 곧 완전고용사회가 더 이상 불가능한 경우라면 어떻겠는가? 로크의 '충분성 조건'은 훼손된다. 이 경우에 '충분성 조건'은 소유권을 수립할 수단과 기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단지 그들도 원천적 공유자이었다는 자격에 입각하여 외적 대상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충분히 정당화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바로 그러한 권리일 것이다. '충분성 조건'이 훼손된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당연히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공통적인 '보편적-필수적 권리'일 수밖에 없다. 거꾸로, 기본소득이 그와 같은 권리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같은 '특수하고 조건적인 권리'는 다른 사람의 '보편적-필수적 권리'에 대한 침해를 의미하게 된다.
4)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관한 사고 실험: 기본적 필요에 따라 분배받을 권리
위에서 전개한 '사고 실험'은 기본소득을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로 남는 것은 정당화의 성격이다. 그것은 무조건적 권리(unconditional rights)인 기본소득을 단지 변화된 조건이나 바뀐 사회 상황에 입각하여 조건부로 정당화(conditional justification)할 뿐이다. 기본소득은 다만 '충분성 조건'의 훼손을 통해 논증될 뿐이다. 만약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의 확대가 60년대 말까지의 경향처럼 꾸준히 추가고용을 창출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완전고용사회가 재현된다면, 기본소득은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국면 변화에 따른 기본소득 폐지에 대해서 위에서 전개한 '사고 실험'은 어떤 종류의 정당한 항변도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루려는 문제는 미래에 대한 사회과학적 예측이 아니다. 문제는 정당화의 전면성에 놓여 있다: 부분적 정당화인가, 전면적 정당화인가? 조건적 정당화인가, 무조건적 정당화인가? 곧, 과연 기본소득을 경제 변동과 무관한 무조건적 권리로서 정당화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로크의 '충분성 조건'에 의지하여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인 정당화는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로크의 텍스트는 기본소득에 대한 다른 종류의 정당화 논변을 내장하고 있는가? 만약 로크가 § 25에서 자기보존권을 소유권의 전제로 삼은 다음에 한편으로는 이로부터 소유권 논증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른 분배를 받을 권리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자기보존권에 대한 이중적인 구체화를 수행했다면 우리는 로크에게서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정당성 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크는 그러한 방식으로 논증을 전개시키지 않았다. 주의할 점은 이 경우에도 필요에 따라 분배받을 권리를 소유권과 마찬가지의 심급에서 독자적인 권리로 정당화하는 구조를 채택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두 권리는 모두 동등한 수준의 권리이며, 한 사람은 둘 다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은 서로 배타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보완적이어야 한다. 이 문제에서도 로크의 체계는 아직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당화를 위해서 덜 발전해 있다. 로크는 필요에 따라 분배받을 권리의 정당화를 위해 논변의 독자적인 줄기를 전개하는 대신에 인류의 열악한 처지와 필요로부터 오직 노동의 필연성을 끌어냈을 뿐이다. 분배정의(distributive justice)에 관한 로크의 관점은 - 비록 '충분성 조건'을 통해 노동의 성과에 따른 분배원칙에 대해 강한 한계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노직의 '요구권적 정의론'(entitlement theory of justice)과는 분명히 구분되지만 - 전체적으로는 분명히 '소유론적 정의론'(proprietary theory of justice)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소유권은 로크 정의론의 중심이다. 나아가, 비록 로크가 '자선을 받을 권리'(charity rights)를 인정하며 § 5에서는 "정의와 자선"을 동등한 두 원칙으로 공표하지만, '자선의 원칙'을 통해서는 질병이나 사고, 무능력과 같은 특수한 처지에 입각한 조건적인 공공부조만이 정당화될 뿐이다. 보편적인 자격에 입각한 기본소득은 그로부터 전혀 입론될 수 없다. 그래서 로크를 종래의 복지제도의 원조로 간주할 수도 있고, 복지를 국가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개별적 시민의 권리라고 이해한 최초의 사상가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에게서 만인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관점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17세기 저작에서, 게다가 근대적 노동숭배의 출발점을 이루는 저작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발견하려는 것 자체가 당연히 무리일 것이다.
자기보존권으로부터 필요에 따른 분배권을 정당화하는 시도는 로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권리의 정당화를 위한 구조를 로크의 개념 틀 안에서 만들어 본다면 그 것은 로크가 직접 전개한 다른 논증 줄기들과 전혀 모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더 중요한 듯하다. 노동과 소유권에 대한 로크의 강조도 필요에 따른 분배 원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함축하지는 않으며, 그 이외에 두 원칙의 상관관계를 상호 배척적으로 읽을 어떠한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필요의 원칙을 도입한다 해도 로크의 전체 체계에서 이 원칙과 노동의 원칙은 독자성과 용인성을 가질 것이다. 필요의 원칙을 도입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로크의 체계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본다면, 모든 사회구성원은 원천적인 공유자로서의 자격과 자기보존권에 기초하여 한편으로 노동에 따른 소유권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만큼 필요에 따라 분배받을 권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분명 기본소득과 노동에 따른 분배를 상호 동등한 두 가지 분배원칙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에 상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두 개의 독자적 원칙에 근거한 분배정의론이라는 점에서 로크가 전개한 소유권 중심적인 정의론을 명백히 넘어선다.
판 빠레이스와 마찬가지로 이 글은 자유 개념을 소극적 자유의 뜻이 아니라 실질적 자유로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위에서 로크 텍스트의 재구성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와 같은 실질적 자유는 한편으로는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실질적 권리이어야 하며,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건적인 권리인 소유권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무조건적이고 필수적인 권리로도 나타나야 한다. 대지에 대한 모든 개인의 원천적 공유(original community)는 이러한 실질적 자유의 기초이다. 실질적 자유를 실현하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은 '실질적 자유지상주의'(Real Libertarianism)가 아니라 원천적 공유 개념의 재구성을 통해 협소한 자유지상주의의 지평을 벗어나는 일이다. 판 빠레이스의 '실질적 자유로서의 기본소득'은 그의 출발점인 자유지상주의적 지반을 더 많이 벗어날수록 더 분명하게 정당화될 것이다.
3. 공화국: 원천적 공유자로서 모든 개인들의 보편적 공통성
로크의 텍스트에 나타난 공유 개념은 소유권에 대해 이중적인 논증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소유권이 수립될 수 있게 하는 가능 조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권의 한계를 정하는 부정적-규제적 근거이다. 위에서는 이러한 공유 개념을 기본소득처럼 모두에게 부여되는 '보편적-필수적 권리'의 직접적 원천으로 재구성했다. 이와 같은 재구성은 로크의 택스트에서 군거를 찾을 수는 없으나 로크 논변의 틀 전체에 모순적이지는 않다. 공유 개념을 이렇게 전개할 때, 공유는 단지 소유의 한계만을 설정하는 부정적 준거(negative criteria)를 넘어서서 직접적으로 기본소득과 같은 권리에 대해 논증 기능을 가지는 긍정적 준거(positive criteria)가 된다. 이러한 공유 개념은 보편적인 자연법 공동체(universal community of natural law) 개념과 동일한 것이 되며, 일체의 특수 규정(particularity)을 제거한 보편적인 '공화국'(universal republic) 개념, 곧 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공통성(the universal-common)의 개념과 동일한 것이 된다. 대지에 대한 만인의 공유는 모든 사람이 공유자로서의 보편적 자격에 있어서 공통성을 가진다는 점, 곧 인류적이고 보편적인 공통성 개념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유 개념으로부터 조건 없는 기본소득과 같은 권리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로크의 자연법철학 전체의 틀에는 부합되지만 그의 소유권 논증에 좁은 틀인 소유권중심주의나 권리중심적 사고를 넘어선다. 로크의 공유 개념에 적극적 논증기능을 부여하면 소유권중심론의 로크와 그 이후의 자유주의를 넘어서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공유 개념은 좁은 의미의 공공성 개념을 넘어선다. 공유 개념에 입각할 때 단지 사적 권리의 영역과의 구별에서 근거하여 보편적인 정치적 권리의 장으로 이해되는 좁은 의미의 소극적 공공성에서 일체의 권리와 의무를 수립시키는 적극적 공공성으로, 공공성 개념이 전환된다. 이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공화국' 개념에 접근한다. 아래에서는 '공화국' 개념과 공화주의의 갈래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전 인류의 보편적 공통성에 입각한 공화주의의 입장에서 정당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몇 가지 전제들을 확보할 것이고, 그러한 전제들에 의지하여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공화주의의 입장에서 정당화하려는 현대의 여러 시도에서 나타난 다양한 난점들을 해결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1) 공화주의의 네 가지 갈래와 '공화국'의 개념
a) 고전적 공화주의와 '공적인 것'의 우위
공화주의는 오래된 정치철학이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의 근본명제인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는 명제까지 소급된다. 아리스토텔레스 공화주의의 특징은 폴리스와 오이코스의 엄격한 분리이다. 두 가지는 원리가 다른 별도의 영역이며, 오이코스 영역에 대해 폴리스는 인륜적인 우월성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우월성도 가진다고 본다. 폴리스는 인간 본연의 목적이 실현되고 인륜성이 전개되는 공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폴리스와 오이코스의 분리는 사적인 영역과 개인에 대한 공공적인 것(the public)의 우월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화주의의 현대적 대표자로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를 꼽을 수 있다.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아렌트는 로마 시대에 성립한 사회(societas)의 발전을 통해 두 영역의 염격한 분리가 점차 해소되었고 근대는 폴리스의 우위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고 개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지하는 공화주의의 특징은 공공적인 것의 우위 속에서 정치 사회와 경제 사회의 분리를 다시 수립하고 정치 사회를 덕성 있는 시민들의 폴리스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b) 마키아벨리와 해링턴에게 나타나는 '시민적 덕성의 공화주의'
역사상 나타난 두 번째 공화주의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등장했고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는『군주론』(Il Principe)과『로마사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에서 '운명'(fortuna)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덕성'(virtù)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시민은 '비르투'를 자져야 한다. 공화국의 일에 대해 시민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가 있고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덕성을 가져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는 '시민적 덕성의 공화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16-17세기의 공화주의 논변은 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제임스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오세아니아』(The Commonwealth of Oceana)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의 수용으로 이해된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는 대서양 세계에 가지는 해링턴의 영향력을 매개로 하여 18세기 미국 혁명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시민의 덕성에 대한 강조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나타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공화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 그리고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위이다. 그러나 '덕성' 개념은 마키아벨리 이후의 공화주의 담론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시민적 덕성의 공화주의'에서는 공적인 것의 우위가 존재론적 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폴리스의 우위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목적론적 형이상학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마키아벨리의 개인 개념은 스스로를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하는 근대적 개인 개념의 출발점이고, 이는 아리스트텔레스의 인간 목적으로서의 폴리스 개념의 해체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다른 방식으로 공적인 것의 우위를 주장한다. 공적인 것은 덕성이라는 개별 시민의 주관적 행위규범 및 동기와 결부되어 우위를 확보한다. 즉 개인은 유불리에 따른 합리적 선택을 하지만 시민은 정치공동체를 향하는 덕성에 의해 움직인다. 이 두 개의 행위 규범에서 전체를 향한 덕성은 개별적인 이익을 쫒는 합리성에 대해 우위를 가진다. 개인에 대한 폴리스의 우위는 개체적인 합리성에 대한 시민적 덕성의 우위로 변형된다.
c) 근대 공화주의의 두 갈래: 루소와 칸트
공화주의의 세 번째 유형은 18세기 루소와 칸트로 대표되는 근대 공화주의이다. 근대 공화주의는 17세기에 홉스와 로크에 의해서 수행된 반(反)아리스토텔레스주의 혁명의 지반 위에서 출발한다. 루소도 칸트도 모두 개인의 자유의지에서 출발하며, 이는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인간 규정의 폐기를 의미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논변의 출발점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다. 특히 칸트를 통하여 로크의 자유주의에서는 불분명했던 문제들이 좀 더 분명해진다. 즉 칸트에게 개인은 출발점이지만, 이 출발점이 이미 공적 원리에 의해 철저히 탈(脫)개인화 된다. 탈개인화의 대표적인 예로서 칸트의 정언명법(kategorischer Imperativ)에 따르는 개인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정언명법은 존 롤스(John Rawls)의 '무지의 베일'(Vail of ignorance)보다 훨씬 더 탈(脫)개인적이다. 합리적 선택을 하지만 선택이 초래할 유불리에 대해서는 차단되어 있는 롤스의 '최초의 상황'(original situation)의 개인들보다 칸트의 사회계약 - "원천적 계약"(contractus originarius) - 을 체결하는 개인들은 훨씬 더 강한 의미에서의 공적 개인이다. 칸트의 사회계약체결자들은 일반화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는 정언명법에 의해 규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탈개인화는 17세기 근대적인 출발점인 개인 범주에 의지하면서도 개별적인 권리를 공적인 기초 위에 세우려는 시도에 필수적인 특징이다. 탈개인화된 개인으로 출발함으로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동일한 기초 위에 놓이게 된다. 보편적인 고전 공화주의와 달리 두 가지는 원리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를 가진 것, 하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형성된 것이 된다. 그 둘의 준별은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공적 권리와 개인의 활동에 입각한 사적 권리의 준별에 상응한다. 그 둘을 규범적으로 입론하는 기초의 동일성으로 인하여 둘 사이의 우위의 문제는 해소된다. 우리가 이를 공화주의의 유형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규범적 입론의 근거가 - 탈개인화된 개인이라는 출발점처럼- 철저히 공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칸트의 공화주의는 '원칙의 공화주의'(Republikanismus der Prinzipien)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살폈듯이, 공적 자격과 사적인 권리를 정당화하는 동일한 기초에 관한 생각은 로크의 텍스트 안에도 맹아적으로 나타난다.
종래의 공화주의에 대해 '원칙의 공화주의'가 가지는 장점은 다음과 같다. 고전적 공화주의는 사적 이익들로부터 공적 영역을 지키려는 시도를 넘어설 수 없다. 반면에 '원칙의 공화주의'는 공적 자격의 체계뿐만 아니라 사적 권리의 체계도 적극적으로 공적 원칙의 기초 위에서 구성할 수 있다. 고전적 공화주의에서 사적 영역은 자의(恣意)가 지배하는 곳이고, 공공의 일과 무관한 영역이고, 그래서 공공의 논의에서 배제해야 할 영역이다. 반면에 '원칙의 공화주의'에서 사적 영역은 공적 기초를 가진다. 칸트의 공화주의는 사적 자치(private autonomy)와 사적 소유(private ownership)의 부정이 아니라 이를 공적 기초 위에 수립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바로 그 출발점부터 탈개인화를 수행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논증 목표로부터 결정된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점에서 서로 닮았지만 또한 많은 점에서 서로 대척적인 두 사상가인 루소와 칸트를 비교시킴으로써 근대 공화주의의 두 줄기를 좀 더 세분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대비는 '공유'와 '공화국'의 개념적 연관에 관한 문제와도 닿아 있기에 생략하기 힘든 듯 보인다. 먼저 자유 개념부터 살펴보자. 자유는 루소와 칸트 모두에게 전체 체계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자유는 두 사상가에게 모두 '자기입법'(Selbstgesetzgebung)의 자격으로서 파악되고 자기구속(Selbstbindung)의 개념과 동일하다. 물론 루소에게는 마키아벨리의 '덕성의 공화주의'의 요소도 여전히 나타나며 루소 역시 로마 역사로부터 자신의 공화주의를 이끌어낸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에서 루소는 "스스로 입법한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라고 말한다. 칸트는 루소의 자유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전개한다. "자유란, 그것이 일반적 법률에 따라 다른 자유와 조화될 수 있는 한에서 인간성에 의거하여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 유일하며 원천적인 권리"이다. 곧 이성적 입법을 할 수 있는 법적 지위(Rechtsposition)이다. 루소와 칸트의 자유 개념은 외적 구속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넘어서서 자유와 구속의 개념을 자기입법 및 자기구속이라는 개념 속에 통일시킨다. 칸트는 자유의지와 법의 통일이라는 관점 속에 이를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한다.
이와 같은 자유 개념, 즉 공적 입법을 할 수 있는 보편적 지위 및 자격으로서의 자유 개념과 자기구속의 개념은 근대 공화주의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자유가 자기강제와 자기구속의 차원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는 외부를 향해 무엇인가를 할 자유의 뜻으로서의 적극적 자유 개념과 다르다. 오히려 주관적 권리로서의 자유 개념에 내적 강제의 차원을 결합시킴으로써 루소와 칸트의 자유 개념은 정치공동체를 수립할 자유로 전환한다. 이러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에 대한 강제도 포함한다. 즉, 모든 사람에게 정치공동체 수립에 참여할 자유를 강제할 수 있다. 루소는 “일반의지에의 복종을 거부하는 자에게 복종을 강제하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자유를 강제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며, 칸트는 이성의 강제와 자연상태를 극복하는 사회계약을 체결해야할 '이성의 의무'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회계약을 통해서 누구도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권리를 잃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유 개념의 전환은 자유(권리)와 사회계약의 관계를 새로 규정짓게 만든다. 사회계약은 루소나 칸트에게 - 홉스나 로크의 경우처럼 - 권리의 포기나 양도가 아니라 사적 권리가 공공적 권리로 성격이 바뀌는 계기이다.
이처럼 자유 개념의 공화주의적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루소와 칸트는 공통적인 면을 가진다. 그러나 자유 개념의 실질적 기초의 문제에서 양자의 차별성은 확연히 드러난다. 루소에게 이는 중심 문제이지만 칸트에게는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칸트는 이 문제를 다른 지평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평주의적 지평에서 보편주의적 지평으로 문제를 옮긴다. 이 차이를 두 사상가의 소유론을 중심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인간불평등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de l'Inégqlité parmi les Hommes, 1755)에서 루소는 - 로크의 소유권 논증과 사회계약론을 의식하면서 - 로크 류의 사회계약이란 계약 이전에 이미 성립해 있던 불평등을 공고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자들이 빈자들을 기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꼰다. "사회와 법의 원천인 사회계약"은 "빈자들에게는 새로운 족쇄를, 부자들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루소에게 그와 같은 사회계약은 빈자의 권리에 대한 "찬탈(usurpation)"이며 기만이며 사기이다. 로크를 이해하는 루소의 방식이 맥퍼슨(C.B. Macpherson)이 로크로부터 읽어낸 소유권개인주의(possesive individualism)와 큰 틀에서 일치하며, 이 글에서 전개한 로크 텍스트의 재구성과는 대립적이라는 점은 일단 제쳐두자. 루소의 요점은 사회계약을 통해 소유의 불평등이 공고해져서는 안 되며 반대로 그러한 불평등을 시정하는 역할을 사회계약이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루소는 불평등의 시정을 정치공동체의 역할로 본다는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불평등의 시정을 통해 각 개인의 자유를 소유의 형태로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정치공동체를 지향한다. 중요한 점은 불평등의 시정 역시 소유중심론의 지평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록 소유를 보장하려는 로크와 정반대의 방향, 곧 불평등한 소유의 시정이라는 측면에서 루소는 사회계약을 구성하지만, 이와 같은 구성 방식에서 사회계약은 여전히 소유 때문에 발생한다. 옹호인가 시정인가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소유는 여전히 사회계약의 중심 내용을 이룬다. 루소는 여전히 소유중심적이며, 소유는 자유의 실질적 기반으로 이해된다. 로크가 노동이 발생시키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소유중심 논변의 우파라면 소유의 평등에 대한 요구하는 루소는 소유중심론의 좌파일 것이다. 이 점에서 분명 루소의 정치철학은 '소유의 수평주의'로 읽힐 수 있다.
반면에, 칸트의 소유론은 오른쪽으로 로크와 왼쪽으로 루소에 나타나는 소유중심론의 지평을 벗어난다. 아울러, 소유에 대한 국가중심적 관점을 대표하는 홉스와 사회계약에 대한 소유중심적 관점을 대표하는 로크를 칸트는 비판적으로 절합한다. 홉스에게 정치공동체의 성립 이전에는 사적 소유도 없다. 정치공동체를 전제해야만 비로소 소유가 성립된다. 개인들의 권리와 소유를 보장해 줄 어떠한 공적 강제력이 없는 자연상태에는 네 것 내 것이 없다. 이 점에서 소유는 국가에 대해 종속적이다. 반면에 로크는 공동 소유를 개별화하는 원칙으로서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 원칙’이 이미 자연 상태부터 유효하게 작동한다고 본다. 사적 소유권은 사회계약 이전에 성립해 있고, 사회계약을 통해 정치공동체를 수립하는 이유는 이미 수립되 있는 소유를 강제력을 통해 보장해 주기 위함이다. 로크에게 소유는 국가에 대해 독립적이며, 사회계약에 대해서도 - 사후적이지 않고 - 사전적이다. 설령 '필요에 따른 분배'가 원천적 공유에 입각한 원칙으로 로크의 체계 안에 포함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원칙은 노동에 의한 소유론과 모순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사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노동에 의한 소유의 질서와 나란히 필요에 의한 분배의 질서가 나타나게 될 뿐이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로크의 논변을 확장한다 하여도 노동중심의 정의론은 분배정의를 규율하는 한 축으로서 필요에 의한 분배원칙과 양립하게 될 뿐이다. 필요의 원칙을 도입해도 소유는 국가에 대해 독립적이며 사회계약에 대해서도 사전적이라는 로크의 논증 체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필요에 의거한 요구권도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해 강력한 방어권으로 바꾸리 뿐이다. 이와 같은 논변은 기본소득을 '국가에 대한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옹호하는 큰 줄기를 이룬다.
칸트의 소유론은 홉스와 로크를 모두 극복하고자 한다. 소유를 정치공동체에 종속적(사후적)으로 보는 홉스의 견해와 독립적(사전적)으로 보는 로크의 견해를 모두 비판한다. 한편으로 자연 상태에서도 - 그러나 로크처럼 노동이 아니라 점유를 통하여 - 소유가 '잠정적'으로 성립된다고 보면서도, 하지만 홉스처럼 '최종적 소유'는 오직 정치공동체가 수립되어야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첫 부분을 통해 홉스를 비판하며, 두 번째 부분을 통해 로크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뜯어보면, 첫 부분에서 칸트는 로크의 논변 틀을 수용하면서도 소유의 성립에 대한 로크의 논거를 비판한다. 칸트가 로크의 이론에 반대하여 노동의 계기를 잠정적 소유의 논증에서 아예 제거해 버린 이유는 잠정적 소유와 최종적 소유의 단계 구분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또한 그것은 자기소유권이 대상 세계로 확장되는 일방적인 관계를 통해 소유의 성립을 파악하는 대신에 '원천적 계약' 개념에 의해 표현된 공적 이성의 장(場)으로 소유권을 끌어내려는 개념적 장치이다. 결과적으로, 소유의 최종적인 성립은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의 폐쇄 회로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점유를 통한 잠정적 소유(provisorischer Besitz)는 아직 소유의 가능조건일 뿐이고, 아직 최종적 소유(peremtorischer Besitz)가 아니다. 최종적 소유를 수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공동체의 수립을 통한 실정화(Positivierung)가 필요하다. 정치공동체의 수립은 - 칸트에 따르자면 - 보편적 이성이 발동하는 '공법에의 요청'(Postulat zum Öffentlichen Recht)이다. 이 부분에서 칸트는 사회계약과 국가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홉스를 수용하면서도 홉스 특유의 계약 개념, 즉 전략적 합리성에 입각한 계약개념을 비판한다.
근대 공화주의는 공적 자유 개념에 기초한 공화주의라고 할 수 있다. 루소와 칸트는 공통적으로 자유를 전체 체계의 기초로 삼으며, 또한 자유 개념은 공적 입법을 위한 자격으로 이해한다. 자기입법 및 자기지배의 원칙 속에서 자유와 구속은 통일된다. 이러한 점은 근대 공화주의의 유적 특징을 이룬다. 루소의 중심 범주가 - 로크와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 여전히 소유론이라면, 칸트의 중심 범주는 로크와 루소처럼 소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홉스처럼 국가도 아니고 바로 계약 그 자체이다. 이는 공적 원칙 그 자체가 중심 범주가 된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우리는 칸트의 정치철학을 '원칙의 공화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루소의 공화주의는 - 그의 이론에서 로크와의 대결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인하여 - 소유의 불평등의 시정이 중요한 목표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차별성을 로크의 공유 개념이 루소와 칸트에게 어떤 형태로 변형되었는가라는 문제로부터 이해해 보자. 루소가 대표하는 '평등한 소유의 공화주의'는 역상상 황금기의 원천적 공유 개념은 정치공동체가 만인의 평등한 소유를 통해 만인의 실질적 자유를 수립해 줄 것을 요구한다. 반면에 칸트의 체계에서는 원천적 공유는 그의 사회계약론이 가상적 역사론이나 역사적 계약론이 아니라 가상적 계약론(hypothetical contractualism)이기 때문에 더 이상 불필요해지고 '원천적 계약' 개념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 '원천적 계약' 개념은 일체의 사적 권리에 근거를 부여하는 공적 원리이기에, 이처럼 변형된 공유 개념은 가장 광범위한 규범논증적 기능을 부여받는다. 루소와 칸트의 체계에는 로크의 원천적 공유 개념이 두 사상가의 논변 특유의 정치적 방향성과 이론적 목표에 의해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정당화와 관련하여 루소와 칸트의 공화주의는 각기 두 가지 고유한 난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 오늘날의 공화주의 논변이 가지는 난점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d) '공화국'의 개념
'고전적 공화주의'의 공화국 개념은 '사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역적인 준별을 벗어나지 못한다. 준별 그 자체가 '공공의 것'의 우위를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위는 공적 영역에의 '참여'를 인간의 본래적 목적으로 간주하는 목적론적 형이상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에, 마키아벨리로부터 출발하는 지적 전통에서 공화국 개념은 '시민적 덕성에 입각한 정치공동체'이다. 이 공화주의의 핵심은 '덕성'이며, 이와 함께 시민적 의무를 고취하는 동기(motivation)의 측면이 강조된다. 고전 공화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인 '참여'는 목적론적 근거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과정적이고 동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덕성' 중심의 논변은 '공동의 것'에 대한 참여의 문제에서 이성적 절차보다 정서적 통일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특징은 일정 정도에서는 일반의지 창설의 기초를 정서적 공감으로 보는 루소의 공화주의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루소의 '공화국'의 개념적 핵심이 '정서적 통일'에 의해 생성된 '일반의지'라기 보다 무(無)지배의 상태, 곧 '지배가 없는 공화국'이라는 점에서, 루소는 마키아벨리 전통으로부터 일정한 단절을 의미한다. 아울러 루소의 공화주의는 일반의지에 입각한 통일만을 지향하지 않으며 사회개혁적이다. 정치공동체는 적어도 불평등이 타인의 지배가 되지 않을 정도까지는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 로크에게 소유의 보장이 국가의 설립 목적인 것과는 정반대로 루소에게 불평등의 시정은 국가 설립의 참된 목적으로 나타난다. 칸트에게 공화국은 '만인과 만인의 결합된 의지'이며, 그러한 의지를 수립시키는 이성법적 절차이자 공적 원칙 그 자체이다. 칸트에게 '공화국'은 더 이상 사적 개인들의 세계와 분리된 영역도 아니며, '공적인 것'의 우위나 공적 영역에의 참여가 특별하게 논증 목표가 되지도 않는다. 그 대신에 칸트가 말하는 "이념적 공화국"(Ideale Republik)은 현실에 대해 규제적 원리가 된다. 즉 '공화국의 이념'은 '원천적 계약' 개념에 기초하고 사법 체계를 포함한 모든 제도에 대해 규제적 이념으로 작동한다. '공화국'의 개념은 이 말의 라틴어 어원(res publica)에 나타나는 '모두의 것'이라는 공간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공적인 것'의 우위와 '공적인 일'에 대한 '참여'의 개념으로 전개되었다. 칸트에 이르러서 공화국 개념은 제도 일체에 대한 보편적이고 공적인 원칙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2)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당화를 위한 공화주의 논변의 난점
이 글의 목표인 기본소득의 정당화를 위해서 루소와 칸트의 근대 공화주의는 각각 고유한 난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난점은 모두 근대 공화주의의 두 유형이 가지는 고유의 탁월성과 일치한다. 루소 공화주의의 핵심인 소유 불평등의 시정과 소유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인들의 자립성은 자유에 대한 현실적인 기초를 강조하는 효과를 가진다. 하지만 이 효과는 기본소득의 정당화에 대해서는 장점이자 동시에 난점이 된다. 즉, 소득의 재분배라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옹호되지만, 기본소득이 아닌 다른 방식에 의한 재분배도 마찬가지로 옹호되며 꼭 기본소득만을 위한 정당화 논거가 되기 힘들다. 캐롤 패트맨(Carol Pateman)이 적절히 지적하듯이, 루소에게 중요한 문제는 토지 소유의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었다. 루소의 논지를 이 시대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루소의 논지는 금융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과도하게 불평등한 집중에 대한 시정을 옹호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분배 원칙을 바꾸는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 특별히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물론 기본소득의 재원을 자산불평등을 시정하는 조치를 통해 마련한다면 루소의 논변에 적합하게 되겠지만, 이 경우도 조세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정 조치들, 예컨대 투기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나 규제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과도한 소유집중의 해소가 루소적 핵심이지 기본소득과 같은 '필요에 입각한 동등한 분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루소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루소는 타인의 자선에 의해 유지되는 삶은 가장 비참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언명은 일견 충분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 특히 기본소득은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무조건적 권리이지 타인의 자선에 의지하는 '시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루소의 언명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수미일관한 결론은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오늘날의 공공부조와 같은 형태의 시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제도보다는 생산수단의 재분배가 더 중요할 것이라는 결론일 것이다. 생산수단의 재분배로 평등주의적 자본주의를 끊임없이 재현하는 것이 기본소득 도입보다 루소의 원래 입장에 더 닮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칸트에게 이러한 구체적인 정당화 가능성의 문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칸트는 로크 특유의 노동 및 소유중심적 분배정의에 대한 강조도 폐기하면서 동시에 루소 특유의 재분배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강조도 벗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칸트적인 '원칙의 공화주의'는 기본소득을 공적 이성의 원리인 '원천적 계약'에 의거하여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당화에서는 기본소득은 '실질적 자유'라는 의미가 희박해진다. 이는 칸트에게 재화윤리학(Güterethik)은 비어 있다는 점과 맞물리는 문제이다. '보편적 원칙의 공화국'은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으며, 재화의 분배정의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칸트에 의지하면서 재화윤리학을 구성하려는 시도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롤스의 시도인데, 이를 위하여 그는 칸트 이론 특유의 의무론(deontology)에 이질적일 뿐만 아니라 대척적이기도 한 논변 체계인 공리주의 논변을 한 축으로 끌어 들인다. 기본소득은 의무론의 대척점에서 여러 종류의 결과론적 논변(consequentiamism)이나 목적론적 논변(teleology)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최소수혜자 우선 원칙'(leximin pinciple)이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사용된 판 빠레이스를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할 사항이다. '최소수혜자 우선 원칙'은 적어도 결과론적 논변 중에서는 전체 사회의 최대 이익의 원칙이나 각 개인의 평균 이득의 원칙보다 훨씬 더 기본소득의 정당화에 적합하다. 하지만 롤스의 칸트적 구성인 최초 상황(original situaltion)이 직접적으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재화윤리학이 수립될 수 없을 때 칸트의 공화주의는 단지 '심의 민주주의'(deliverative demacracy)만을 낳을 뿐이다. 이 경우에도 특별히 기본소득의 탁월성을 정당화하는 논변은 구성되지 않는다. 물론 사회국가의 일반적인 정당성은 칸트에 입각하여 공리주의 논변에 의지함이 없이 충분히 입론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입각한 사회국가를 다른 유형의 사회국가보다 특별히 더 정당화하는 논변은 칸트적인 건축술(Architektonik) 안에 내포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공화주의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다양한 논변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모두 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난점들 속에서는 그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지하고 있는 공화주의 전통의 원류들의 고유한 난점들이 비슷한 구조로 반복된다. 아래에서는 이와 같은 난점들을 유형화할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을 통해 공화주의 담론을 확장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a) 물질적 독립성의 문제는 주로 필립 페티(Philipp Pettit)에 의해서 강조된다. 이는 일찍이 로크와 루소의 논변 전개에서 중요한 구조로서 나타났던 '자유와 소유의 연관'(freedom-property-connection)을 통해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공화주의적 핵심은 소유의 재분배이고, 이는 공화주의적 정의(Justice)의 내용을 이룬다. 이러한 관점은 루소의 근본 입장과 상통한다. 하지만 앞서 살폈듯이, 모든 이의 물질적 독립성을 수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변은 루소의 틀 안에서 발견될 수 없다. 기본소득보다는 토지와 생산수단의 재분배가 루소의 이상(理想)인 '평등한 소유'에 좀 더 가까운 방법일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페티의 공화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된다.
b) 정서와 동기를 중시하는 전통에 의지하는 논변들이 있다. 이는 마키아벨리로 소급되는 논변인데, 부분적으로는 루소에게도 나타나는 요소이다. 그와 같은 논변도 기본소득과 공화주의의 연관을 어렵게 만든다.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로 파악되는 동기는 기본소득이라는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라는 물질적 조건이 정치체에 대한 참여의 동기를 유발한다고 설명할 경우, 이득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그와 같은 동기는 이미 공화주의적 동기가 더 이상 아니게 된다. 이득을 동기의 형성 요소로 보는 논거는 동기에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논거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논거를 바꾸고 나면 더 이상 동기의 측면이 논변의 중심을 차지할 수 없다. 어쨌든, 동기의 측면을 중심하는 공화주의는 기본소득 정당화에 이론적 어려움을 겪는다.
c) 스튜어트 화이트(Stuart White)는 자산소유자에 대한 조세 의무의 부과를 논증하기 위하여 '상호성의 원칙'(principle of reciprocity)을 사용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재원확보를 위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바로 이 원칙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당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리차드 대거(Richard Dagger)는 기본소득을 지지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시민적 의무와 연관시킨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무임승차자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으로 고안된 것이지만, 그와 같은 시민적 의무를 공화주의의 고유한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순간에는 기본소득과 같은 무조건적인 급여가 아니라 노동연계형 급여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대거는 노동은 "좋은 일"이며 "공화주의는 고용가능성을 넓히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유효한 반론은 - 판 더 베엔(R. Van der Veen)이 지적하듯이 - 기본소득은 고용되지 않을 자유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대거의 주장은 그 자신의 공화주의 개념에 의해서도 반박될 수 있다. 즉, 시민의 의무가 권리와의 대칭적 교환관계에 의거하여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유형의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화주의의 틀에서 시민적 의무란 시민 자격 안에 기초된 것이며, 그것은 의무의 수행을 전제로 하여 권리가 발생하는가라는 '상호성의 문제'와 전혀 무관하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살펴보자면, 우리는 '상호성의 원칙'을 칸트의 정언명법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원칙의 공화주의'의 전개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원칙으로부터 국가와 시민 간의 '상호성에 입각한 교환'이 - 곧 의무수행과 권리획득의 교환이 - 정의의 원칙으로 등장할 수는 없다. 그러한 원칙을 국가와 시민 사이에도 적용되는 정의 원칙으로 만드는 시도는 이미 공화주의 담론의 틀을 벗어나 버린다. 담론의 틀이 공화주의인 한에서, '상호성의 원칙'은 개별 시민과 개별 시민의 관계를 규율하지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적용될 수 없다. 그러한 원칙은 그저 - 홉스가 좋은 예인데 - 사회계약을 합리적 개인들의 잠정합의로 보고 최선의 타협으로서 정치공동체를 입론할 때에나 논증적 기능을 국가의 문제에 전개할 수 있을 뿐이다.
3)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공화주의'와 '조건 없는 기본소득'
앞 장에서는, 역사상에 등장한 공화주의의 난점들을 살피고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오늘날의 공화주의 담론에서도 동일한 난점들이 되풀이 된다는 점을 밝혔다. 난점들은 기존의 공화주의의 유형들이 기본소득과 같은 발상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는 논쟁 맥락에서 등장했다는 점과 관련된다. 17세기와 18세기는 소유권혁명의 시대이기에 소유는 이 시대의 정치철학에서 중심 문제가 된다. 설령 칸트처럼 논증 체계에서 소유중심적인 건축술을 의식적으로 배격하더라도 소유의 문제는 이미 그와 같은 이론적 발전의 배경을 이루며 칸트의 공화국 개념 내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칸트에게 '법적 상태', 곧 '공화국'은 '최종적 소유'의 형태로 잠정적 소유를 실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는 폴리스의 문제가 아니고 오이코스의 문제일 뿐이라고 보는 고전 공화주의는 논외지만, 어차피 고전적 공화주의에서는 기본소득이건 노예제도이건 폴리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화주의의 관심 영역을 벗어나 버린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려면, 사적 소유의 정당화 이론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이론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공화주의 역시 전혀 다른 유형의 공화주의일 것이다. 정당한 사적 소유의 이론과 연관되는 구조에서 공화주의는 기본소득에 대한 전면적인 정당화를 달성하지 못한다. 물론 오늘날 사적 소유권이 차지하는 사회적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개되는 사태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로부터 사회과학적 차원이 아니라 규범논증적 차원에서도 소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사태는 우리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사적 소유권보다 훨씬 더 높은 심급에서 정당화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으로,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의 실질적 자유의 사회적인 구현이어야 한다. 즉, 기본소득은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물질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소유권은 소유를 취득하는 특정 조건에 결부된 권리에 불과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인 일반적 권리'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는 소유를 취득하는 여러 가지 합법적 조건이 있다. 착취, 수탈, 임노동, 계약, 상속 등은 그러한 합법적인 조건들이다. 이로부터 취득되는 소유권과는 달리 만인의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논증은 더 보편적인 심급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구를 충족시킬 정당화 이론의 뼈대는 앞의 논의에서 이미 전개하였다. 아래에서는 이를 다시 간추려 보자.
첫째, 소유권 논증의 협소한 지평으로부터 벗어나서 지구에 대한 만인의 공유 개념에서 출발할 경우에만 기본소득에 대한 적절한 정당화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이와 같은 공유 개념은 소유의 한계를 설정하는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규범논증적 역할'(normbegründende Funktion)을 해야 한다.
셋째, 이와 같이 적극적인 규범논증적 역할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인 일반적 권리'로서 정당화하기에 충분하여야 한다.
넷째, 이와 같은 충분한 논증기능을 가지는 공유 개념은 그 개념에 내포되어 있는 고유한 대립인 '공유(communio)인가 소유(dominium)인가'의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 즉, 그러한 공유 개념은 물질적 재화의 귀속과 관련된 차원을 넘어서서 모든 인간에 공통적으로 부여된 '보편적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공유 개념에서 보편적인 '이념의 공화국', 보편적 원칙으로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로크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발전의 선(線)에서 대략적인 방향성이다. 이로써 우리는 공유 개념으로부터 '보편적 공화국'의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 이와 같은 '보편적 공화국'은 단지 - 칸트 식의 - '원칙의 공화주의'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즉, 한편으로는 추상적-규제적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 형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보편적 공화국'은 인종적 차이, 성별, 이주, 장애 여부 등 어떤 특수한 차이와 무관하게 만인은 모두 동등한 인간이라는 '보편적 인간 자격의 공화국'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충분한 기본소득을 통해 사회적 조건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인간 조건의 공화국'이어야 한다. 칸트는 앞부분에 머물고 말았다. '원칙의 공화주의'는 '공통성의 공화주의'를 통해서 보충되어야 하며, 이 때 '공통성'이란 '보편적 자격'과 '보편적 조건'을 함께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여섯째,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서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는 유형의 공화주의는 '보편적 조건의 공화주의'이고, 이러한 조건은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즉 자격의 보편성은 조건의 보편성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그가 가진 보편적 자격 - 인류의 공동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 에 부합되는 '사회적 조건'을 인류 사회가 공동으로 보장해 준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적인 사회적 공화국'이어야 한다.
4. '민주공화국'과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원리적 상동성(相同性)
'원칙의 공화주의'로부터 '사회적 조건의 공화주의'로 나아가는 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공적 원칙을 생성하는 '구성적 조건'은 그 자체로도 물질화되고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즉, 칸트에게 그러한 의미의 '구성 조건'을 의미하는 '만인의 입법자로서의 동등한 자격의 원칙'은 만인에게 단지 자격이 아니라 조건으로, 곧 자격에 부합되는 현실적 조건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보편적 자격의 공화주의'는 '보편적 조건의 공화주의'를 수반하며 양자는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다. 아래에서는 이 시대의 민주적 공화주의, 곧 '민주공화국'의 지평에서 이 문제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인류 공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만인의 보편적이고 동등한 자격은 개념적으로 '평등(동등성)의 원리'와 '공통성의 원리'를 모두 함축한다. 즉, 모든 사람은 i)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자격을 ii)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첫 부분은 무엇보다도 평등한 선거권의 의미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평등 원리는 선거권의 범위를 넘어 여러 가지 평등한 자격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또한 사회구성원의 물질적 조건의 문제로 전개될 수도 있다. 즉, 동등한 추상적 자격에 입각하여 구체적으로 자격에 합당한 조건에 대한 요구가 정당화된다. 여러 가지 사회적 권리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권리들 중에서 기본소득, 곧 모두에게 특수한 조건과 상관없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동등한 자격의 원칙', 곧 '동등성의 원칙'에 가장 접근한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 요건에만 기초하는 보편적 복지의 제도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동등성의 원칙'에 접근한다. 그것은 평등한 선거권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원리적인 상동성을 가장 많이 보여준다.
정치적 국민주권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평등한 선거권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역시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재산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지급받는다.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은 같은 원리 위에 기초한다. 기본소득은 구빈(救貧)을 위해 지급되는 국가의 시혜(施惠)나 사회적 자선(慈善)이 아니라 모두가 대등한 사회구성원 또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으로부터 비롯된다. 기본소득 도입은 시혜적인 복지를 보편적인 복지로 바꾸고,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과 국민주권의 정당성을 원리적으로 통일된 기초 위에 세운다. 이와 같은 원리적 상동성을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복지에 관한 논의가 가지는 주권론적 차원이 열리고 기본소득 운동의 민주주의 운동으로서의 의미가 확보된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연대성 개념을 변화시킨다. 자유와 평등과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기치 중의 하나인 연대성은 말 그대로 인류 공통의 자매형제애가 아니라 아직까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빈곤이나 질병, 실업 등과 같은 개별적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에 대한 사회 연대의 문제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제한된 의미의 연대성은 - 그것이 시혜의 원칙에 입각하건, 덕성의 원칙에 입각하건, 또는 의무의 원칙에 입각하건 - 복지제도를 원리 차원에서부터 이미 잔여화(residualized) 하는 연대성이다. 복지는 인간 자격에 합당한 조건을 혼자 힘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격에 합당한 조건을 모두가 함께 만들어 주는 제도이고, 이는 당연히 보충적 원리이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보충적 원리가 아니라 -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보편적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 근본 원리이다. 거꾸로 특수한 조건에 입각하는 소유제도가 예외적 원리가 된다.
기본소득을 통해 민주주의에 고유한 평등의 원리는 정치 영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적 권리와 같은 포괄적인 시민권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와 같은 확장은 연대성의 개념의 확장, 곧 '처지의 차별성에 입각한 연대성'에서 '자격의 동등성에 입각한 연대성'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개념적 확장을 우리는 권리 차원의 유형적 구분(typological distinction)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종래의 공공부조가 '특수한 처지에 입각한 시혜'(benefits from special contingent condition)라면 시민 또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권리'(rights from universal status)이다. 이 구분은 종래의 잔여적ㆍ선별적ㆍ시혜적 복지와 기본소득에 입각한 보편적 복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5. 나가며
이 글에서 구성한 정당화 논변은 공유와 공통성의 원칙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평등의 개념을 자격의 문제를 넘어 조건의 문제까지 확장시켰다. 평등은 단지 자격의 평등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로부터 수반되는 조건의 평등을 산출한다.
하지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통해 달성되는 평등, 곧 사회적 조건의 평등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충분조건을 가진다는 의미이지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소득은 전면적인 조건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부분적인 평등이 일체의 개별적 처지와 무관하게 수립된다는 결과를 낳을 따름이다. 공통적으로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는 것과 모두가 절대적으로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는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당화가 직접적으로 정치적 평등 원리에 의거하여 정당화되지 않으며, 둘은 오직 -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액수의 범위에서만 - 원리적 상동성을 가질 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만든다.
기본소득은 노동에 입각한 분배라는 소유중심적 정의론의 고유한 구조를 깨고,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부분적으로 완화시킨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의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왜곡하는 것은 착취와 수탈이지 기본소득은 아니라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소득은 이 연계를 완화하는 작용을 통하여 연계의 왜곡을 시정하는 기능을 가질 뿐이다. 금융적 지대적 수탈에 대한 조세적인 역수탈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고 가정하면 이와 같은 시정 효과는 확실해질 것이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을 통해 발생하는 노동과 소득의 연계의 완화는 이 사회의 전통적인 정당화 이론에 대해 매우 심각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바로 여기에 모든 정당화 이론의 확보된 척도들이 의심해야 하며 새로이 배열되고 새로운 내용을 부여받아야 할 필연성이 놓여 있다.
*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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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Tracked from 금민닷넷 2010/03/13 18:49 삭제<포스터1 그림 내용 시작> http://basicincome.kr " 기본소득은 어떠한 자산 심사나 노동요구도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입니다. 기본소득은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 수준으로 매월 지급하며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등의 기본복지와 함께 합니다."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Basic Income for All! 2010년 1월 27일, 서울 서강대학교 다산관 101호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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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2010 서울,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3부
Tracked from 금민닷넷 2010/03/15 11:39 삭제2010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3부 * 시민기본소득, 브라질과 한국을 위한 멋진 제안 - 수플리시 Eduardo Matarazzo Suplicy |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 의원 * 독일에서의 기본소득 논쟁 - 블라슈케 Ronald Blaschke | 독일 좌파당 기본소득 연방연구회 연구위원 * 자유와 민주공화국의 이념에서 바라본 기본소득 - 금민 |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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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 watches 2012/05/14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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