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8일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이 글의 일차적인 목적은 곽노완 교수의 발표문 「여러 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전」에 대한 논평이다. 곽노완 교수의 글은 기본소득 논의가 "기본소득인가 아닌가"의 지평으로부터 "어떤 기본소득인가"의 지평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곽교수는 먼저 "기본소득인가 아닌가"의 논쟁이 마이너스소득세 등 결코 기본소득으로 볼 수 없는 제도들을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오해하는 가운데 선별적 복지의 확대가 더 나은 대안이라는 입장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곽교수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논쟁을 "어떤 기본소득인가"의 문제 지평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기본소득에 대한 불필요한 반대를 잠재우고 기본소득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운동은 기본소득에 관한 외국 논의의 소개 단계, 민주노총 프로젝트를 통한 독자적인 모델 제출 단계, 개별적인 요구정책을 통한 정치사회적 확산 단계를 넘어 이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관심을 더욱 확산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의 이론적ㆍ실천적 내부로 논쟁의 중심이 이동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곽교수의 발표문은 이 점에서 한국에서 기본소득론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큰 중요성을 가진다. 그래서 이 글은 논평문의 형태를 다소 벗어나더라도 좀 더 일반적인 수준에서 기본소득과 관련된 이론적ㆍ실천적 쟁점들 및 기본소득 이론 내부의 대립 지점들을 분류하고 유형화할 것이며, 기본소득 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논쟁적 쟁점들에 대한 대강의 윤곽을 드러내고자 한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쟁은 1)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 2) 재원에 관한 논쟁, 3) 경제적ㆍ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쟁, 4) 기본소득 도입 운동의 실현 주체와 전략에 관한 논쟁, 5) 기본소득의 도입과 대안사회로의 이행의 관계에 관한 논쟁 등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점에서의 상이한 입장들은 상이한 기본소득 개념으로 귀결된다. 곽노완 교수는 재원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어떤 기본소득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아울러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며 또 어떤 것들과 결부되어야 하는 지에 논의”의 중심을 둔다. 즉, 기본소득을 주제로 하여 그간 집필된 곽교수의 여러 글들의 주제는 주로 위의 쟁점 2)와 쟁점 5)이다. 제출된 발표문 역시 재원과 이행의 관점에서 기존의 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끝 부분에서 기본소득과 노동자운동의 관계를 다루면서 쟁점 4)의 문제에 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쟁점 1)과 쟁점 3)은 곽교수의 글들에서 비교적 덜 상세하게 다루어지거나 생략된 쟁점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주제에 관해서도 기본소득론 내부에 어떠한 쟁점이 형성될 수 있는지를 간략히 다루고, 곽교수의 발표문에서 주로 다루어진 쟁점들에 대한 논평으로 나아갈 것이다.
1.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
정치철학 및 사회철학의 담론 지평은 단일하지 않다. 또한 특정한 철학적 주제가 학술적으로 논의ㆍ소통되는 매우 특권적인 담론 지평이 있기 마련이다. 분배정의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공리주의, 합리적 선택론, 신사회계약론, 자유지상주의, 신고전파 경제학의 담론 지평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통과 뿌리를 달리하는 이종적인 틀에서 분배의 문제를 다루고자 할 경우에도 주류적 담론 지평과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작업은 대개 담론 지평의 확장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판 빠레이스(1995)의 경우 분배정의론의 주류 담론 지평에서 출발하면서도 맑스주의적 문제의식을 통해 논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방식을 채택한다(1993/1995). 이와 같은 논증 전략은 주류 담론 지평을 출발점으로 할 경우에만 기존의 이론과의 연속성 또는 논쟁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의 현상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분배정의의 관점이 아니라 전통적인 정치철학적 지평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논할 경우에도 발생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논하는 케롤 페이트만(2010)이나 공화주의의 전통에서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페티트(1997)나 레벤토스(2007)의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당화 논의는 민주주의, 주권, 공화국 등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을 우회할 수 없고 이와 같은 개념을 둘러싼 전통적인 논의와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곽노완의 경우, 기본소득은 맑스의 코뮨주의 분배개념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유토피아로서 정당화되고 여기에서 맑스의 이론 틀은 준거적 역할을 한다.
한번쯤 질문해 볼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지적 전통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본소득 논의를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도 수행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이한 기본소득 개념,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적인 기본소득 개념으로 귀착되지 않는가이다. 예컨대 자유지상주의의 틀 안에서의 기본소득을 자유의 실질적 기초로서 정당화하는 것과 민주적ㆍ사회적 공화주의의 틀에서의 기본소득을 시민 자격의 실질적 기초로서 정당화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를 안고 있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요소 이외에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상에서는 당연히 많은 차이를 안고 있을 수 있고 두 입장이 각각 옹호하고 있는 기본소득의 개념, 사회적 구성 원칙으로서의 위상도 다를 것이다. 예컨대 기본소득은 성과에 따른 분배 원칙을 단지 보충하는 정의 원칙인가? 아니면 기본소득은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소득이고 이처럼 보편적인 자격에 입각한 분배의 원칙은 성과에 따른 분배원칙과 동일한 정도의 비중을 가지며 두 원칙은 분배정의의 두 축으로서 양립하는가? 판 빠레이스처럼 실질적 자유로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과 인류, 사회구성원, 시민 등과 같은 보편적 자격으로부터 당연히 수반되는 필수적 권리로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금민 2010)은 기본소득을 정당화한다는 공통점보다 더 큰 사회철학적 차별성을 안고 있을 수 있다. 단지 기본소득을 옹호한다는 점만으로 그와 같은 차이와 대립은 해소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여러 철학적 지적 전통들에 내장된 이론적 긴장 관계가 단지 기본소득을 옹호한다는 점만으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의 확장을 위해서도 이와 같은 정당화 이론의 내적 긴장 관계가 분명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여러 지적 전통으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기본소득을 중심개념으로 하여 방법론적 다원성을 허용하는 메타이론의 구축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도 이론과 이론, 전통과 전통 간의 명확한 차별성의 인식이 먼저 요청된다.
2. 재원에 관한 논쟁
이는 실천적으로는 가장 큰 논쟁거리이다. 일단 기본소득에는 알래스카 모델처럼 자연자원을 재원으로 하는 분배 모델이 있으며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재분배 모델이 있을 수 있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재분배 모델로서의 기본소득만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재정에 대한 혁명적 개혁이 필수적 전제조건이 된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재원을 형성하기 위하여 조세제도는 과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여러 가지 모델들이 제안될 수 있다. 그리고 각 모델들은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뜻할 수 있다. 판 빠레이스는 천부능력과 고소득 직업에 고율 과세하는 노동소득세를 재원으로 제시하는 반면에 강남훈/곽노완 모델은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강조하며 이와 함께 프랭크만(Frankman 2006)과 판 빠레이스(Van Parijs 2006)을 따라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달러패권의 종식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주조차익을 지구적 기본소득 재원으로 할 것도 주장한다. 이와 같은 상이한 모델들은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상이한 사회적 저항을 초래할 것이며 기본소득 도입 이후로부터 대안적 사회로 나아가는 상이한 전략, 대안사회에 대한 상이한 상을 전제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기본소득의 재원에 대한 모델은 당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의 시정과 관련되어야 하며, 신자유주의 수탈경제의 문제점을 시정하는 기본소득이라면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로 재원이 조성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해체되어 가는 사회에서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비롯한 자본과세가 아니라 중산층의 노동소득에 고율 과세하는 방식은 신자유주의적 수탈의 해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양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경제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사회연대전략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된 노동자들을 단일한 노동자계급으로 형성하는 전략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부터 외면 받는 전략이었던 이유는 그들도 연 3000시간을 일해야 그 정도 임금을 받으며, 이는 시간당 임금으로 보면 주 35시간 일하는 독일 노동자의 절반에 못 미치는 임금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금융적, 지대적, 재정조세적 수탈의 시대, 대량 해고와 자본중심적 노동유연화의 시대에 기본소득의 재원은 수탈경제의 해소로부터 조성되어야 하고, 이렇게 조성된 기본소득은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원하는 사람은 모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주당 30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총노동량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 재원조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곽교수는 인구 90% 이상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모델이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를 주장한다. 물론 이는 중요한 논거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재원문제에서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를 지지하게끔 하는 보다 더 중요한 논거는 다른 곳에서 찾아진다.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이 시대의 문제가 과연 무엇이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나온다. 즉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인 고용불안정이 소득불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노동시간단축 효과를 통해 사회적 총노동의 재분배를 촉진할 것이며, 기본소득의 재원을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로 조달하는 방식은 신자유주의적 수탈경제를 종식시키고 대안적 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할 것이라는 점으로부터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모델이 지지받을 수 있다.
3.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쟁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본소득의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의는 기본소득과 대안사회의 관계에 관한 논의, 노동사회로부터 활동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논의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의 경제적 사회적 효과와 관련된 좁은 범위의 논의도 기본소득 논쟁에서 독자적인 쟁점 사항이 될 수 있고, 실천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2010년 한국에서 기본소득 도입은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매우 초보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강남훈(2010) 교수와 안현효(2010) 교수의 글이 여기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좀 더 풍부한 연구로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내수성장론, 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 고진로 성장론 등은 좀 더 치밀한 현실분석을 통해 대안적 발전노선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4. 기본소득 도입 운동의 실현 주체와 전략에 관한 논쟁
곽노완 교수는 글에서 한편으로 “탈산업사회에서 불안정한 노동과 소득에 시달리면서 초과착취당하고 수탈(Expropriation)당하는 모든 사람들 곧 프레카리아트(Precariat)”를 기본소득 운동의 중심적 주체로 설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투기불로소득 중과세에 의한 재원조성 모델은 인구의 90%에게 혜택을 돌리기 때문에 “인구 90%는 이 기본소득모델의 잠재적인 지지자이자 한국기본소득운동의 잠재적인 주체”라고 말한다.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는 기본소득은 “다양한 운동을 가로지르는 연대의 지렛대”, “다양한 운동주체의 형성의 지렛대”, “대안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경제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진보적 주체를 비약적으로 확장하는 운동”으로 파악된다. 곽노완 교수는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운동을 “유력한 주체형성전략이자 진보역량을 극대화시키는 연대전략”으로 이해한다.
한 가지 보충할 사항은 기본소득 도입운동과 정규직 노동자운동의 관계가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수혜가 돌아간다는 이해관계의 측면에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보다 풍부한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기본소득 도입이 가지는 노동시간단축 효과와 노동자의 노동시간주권 회복정치의 차원을 결합하여 사회적 총노동의 재분배를 촉진할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의 유의미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일단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뜻한다. 이는 물론 노동사회로부터 활동사회로의 이행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의 종식을 말할 조건이 성숙하지 않는 한에서 한 사회가 노동하기를 멈춘다면 사회 자체가 해체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린 아이도 알고 있다”(맑스,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노동사회 종식의 조건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와 같은 필연성이 당장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자유의 왕국의 조건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과도기에서 필요한 일은 사회적 총노동의 재분배이며 노동시간의 단축, 노동자의 시간주권의 회복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의 인정이라는 계기를 통해 노동 외부에서 노동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기본소득은 노동사회 내부에 영향을 미치며 노동사회 재구성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노동시간단축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는 단지 작용과 효과에 대한 추론 이상을 넘어서서 하나의 단일한 노동사회재구성 전략의 두 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과 최저임금제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조명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활동 범주의 인정을 통해 매개적으로 노동사회 재구성에 개입한다면, 최저임금제는 노동의 직접적인 사회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더라도 최저임금제가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5. 기본소득의 도입과 대안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논쟁 및 대안사회에서 기본소득의 의의에 관한 논쟁
기본소득 모델 중에는 베르너와 같은 자유주의 모델도 있으며 좌파케인스주의 입장에서 제출된 미드(Meade)의 아가토토피아 모델도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경제를 지향하는 모델도 있다. 그러한 모델들은 기본소득을 사회주의(코뮨주의의 제1국면)로의 이행전략으로 보는 모델과 코뮨주의로 직행하는 이행전략으로 보는 모델로 나누어진다. 전자의 경우에도 탈노동패러다임이냐 전통적인 노동중심패러다임이냐로 나눌 수 있고, 생산수단의 사회화 전략을 포함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주의 노선인가로 나눌 수 있다. 기본소득을 코뮨주의 직행론의 이행전략으로 본 입장에는 초기의 판 빠레이스가 속하는데, 그러한 입장은 판 빨에스 특유의 분배중심론적 관점과 연관된다. 곽노완 교수의 입장은 판 빠레이스의 초기 입장에 대비하여 생산수단 사회화의 문제를 중시하며, 후기 입장에 대비하여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더 치밀하게 따질 것을 주장하며, 라이트나 캘리니코스 등의 사회주의 이행전략으로서의 기본소득론에 대하여 대안사회의 상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좀 더 분명한 소유원리와 분배원리를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곽노완 교수의 사회화 전략은 금융기관의 사회화와 연기금을 통한 매입을 통하여 생산수단을 점차적으로 사회화해가는 방식이다.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에 의한 재원 조성은 이 과정에서 자산가치하락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며 매입을 통한 사회화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른 한편, 곽노완 교수는 노동성과와 무관한 동등한 기본소득이 가처분GDP의 50%, 노동성과에 따른 소득이 5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분배모델을 코뮨주의에서의 분배모델로 제시한다. 곽노완 교수는 이와 같은 비중 분할을 통해 유고의 연성예산제약과 같은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곽노완 교수의 코뮨주의 분배모델은 후기의 판 빠레이스가 코뮨주의로의 이행을 포기하고 최적 자본주의로 돌아선 이유가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있다고 보고 지속가능한 코뮨주의 경제원리를 탐색하려는 시도 속에서 등장한다.
50% 대 50%로의 가처분GDP의 분할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동등한 자격에 입각한 분배와 성과에 따른 분배라는 두 개의 분배원리가 대등하게 작동하는 사회를 코뮨주의로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곽노완 교수는 자격에 입각한 동등분배 원리를 맑스에 따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고 정의하는데, 이 부분은 좀 더 따져볼 문제인 것 같다. 필요에 따른 분배란 개별적 필요의 차이에 의하여 충분히 많거나 적을 수 있는 것인데, 기본소득은 장애인 기본소득 등과 같은 추가 기본소득을 인정하더라도 언제나 보편적 자격에 따른 동등분배원리가 기본 요소이다. 기본소득은 개별적 필요에 따라 알아서 나누어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보편적 필요를 보편적 자격에 합당한 필요로 이해할 때, 하나의 특정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하고 전 측면에서 사회에 참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분배만이 보편적 자격에 합당한 필요에 따른 분배로 나타날 것이다. 즉 우리는 보편적 자격에 합당한 보편적 필요의 범주를 도입하여 필요에 따른 분배론이 가지는 유토피아적 성격을 현실화할 수 있다. 굳이 맑스의 어법에 따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자격의 개념 속에 보편적 필요의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 좀 더 기본소득의 핵심적 내포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지난 5월 28일 광주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111호에서 열린, 5ㆍ18 기념 재단 주관 [5ㆍ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중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토론회에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의 발표에 대한 논평문 전문입니다.
'토론-강연-발표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하여 (1) | 2011/03/25 |
|---|---|
| '새로운 진보정당 길을열다' 토론회 자료집 (1) | 2011/03/24 |
| 여러 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전 (0) | 2010/05/31 |
| 기본소득, 이론과 실천에서의 쟁점 (0) | 2010/05/31 |
| 의료민영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0) | 2010/03/22 |
| 신자유주의 수탈경제를 극복할 사회대안을 통한 진보대연합 (0) | 2010/03/08 |
트랙백 주소 : http://geummin.net/trackback/81
-
Subject : 여러 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전
Tracked from 금민닷넷 2010/05/31 11:06 삭제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kwacks79@hanmail.net) 1. 들어가기 2009년 2월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를 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된 이래,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진보학계와 진보사회운동‧정치진영 내에서 커다란 논쟁주제로 부상했다. 사회운동과 정치진영에서는 사회당이 얼마 전 기본소득을 부속강령..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