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진보정당 연구모임(준) 2차 토론회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 혁신

 

 

 

2011년 4월 23일 오후 5시 / 서울 만해NGO센터 대교육장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모임(준)

http://blog.naver.com/new_ages / new_ages@naver.com

< 토론회 순서 >

 

1부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 발제: 허영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 임운택(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2부 새로운 노동자 정당 추진을 위한 토론회

‣ 발제: 금민(사회당 진보혁신정당 추진위원장)

‣ 토론: 김은주(진보신당 부대표), 신현창(GM대우 비정규직 지회장

 

 

 

 

 

< 차례 >

 

[발제1]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 혁신 (허영구)________ 3

[토론] 노동자를 대상화 시키는 진보정치는 그만!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모으자!(김은주)__ 14

[제안]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를 제안한다! _______ 16

[해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 제안 해설문(금민) __ 20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 혁신

 

 

 

허영구(민주노총 전 부위원장)

 

 

 

1.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오늘날 이 땅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100년이 넘는 노동자 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다. 가까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개된 민주노조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이 노동해방을 목표로 추구해 온 산업(별)노조건설과 노동자정치세력화다. 20년 전인 전노협 창립 1주년 심포지엄에서 몇 가지 주제가 발표됐다. “전노협과 민주노조운동”(조영건) 중 전노협 결성 의의를 ‘전노협은 미완의 변혁, 87년 6월 혁명 이후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축적물이며, 70~80년대를 관통한 한국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민주노동운동의 집체물이고,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정통적 계승조직’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사회의 지배구조와 노동통제 정책”(이창호)에서 ‘전노협 결성 이후 국가와 자본의 총체적 탄압이 지속되는 가운데 합법투쟁은 필요하나 개량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지적했다. ‘국가가 노동운동을 체제내적 노동조합주의에 가두기 위해 사용하는 이데올로기 정책을 포함한 개량적 노동정책의 허구성과 계급성을 폭로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것이 곧 노동자 계급의 정치의식 고양’이라고 했다. 이상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국가권력과 자본가 계급을 넘어 민중이 국가의 법, 제도, 정책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자리매김 될 때 의미가 있으며, 이를 위해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각성과 전노협을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족민주운동과 전노협의 과제”(김세균)에서 ‘전체 민주노조의 전국적 투쟁 구심체로 발전해야 할 과제로 전국적 지도력 강화, 공동투쟁 조직화, 전국 수준의 제도개선 투쟁과 일반 민주주의 권리투쟁, 민중연대 투쟁 강화’를 강조했다.

 

현재 진보정당의 대표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 때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산업(별)노조와 민주노총건설, 노동자 정치의식 제고를 주장했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 노동위원장이었던 노회찬은 “넓은 연대, 굳센 단결로 민주노총 건설하자!”는 제목으로 ‘산업(별)노조와 단일 민주노총 건설 방향성을 갖고 산업(별)연합체인 전국 총연합, 민주노총을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전노협 간부였던 심상정은 전노협 건설 배경을 ‘1987년 대투쟁 이후 열린 민주노조의 양적 확대, 공동투쟁의 성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의 전국적 구심으로 목적의식적으로 건설하였으며, 1990년부터 강화된 정부의 폭력적 탄압에 전국적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서’였고 민주노총건설을 위해 ‘대중적 논의, 노동자들의 계급‧정치의식 확대, 산별조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1년 전노협은 이후 업종회의, 전국노련, 전국노운협과 함께 <ILO조약비준과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ILO공대위)>를 발족했고, 1993년 6월 <전국노조대표자회의>, 1994년 11월 <민주노총 준비위>를 거쳐 1995년 11월 11일 역사적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창립했다. 민주노총은 선언, 강령에 이어 20대 기본과제를 제시했는데 세 번째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관련해 ‘첫째,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노동조합법과 선거법을 개정하고 각종 선거에 적극 대응하여 노동자 대표의 정치적 진출을 확대한다. 둘째, 민족민주운동을 비롯한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고 확고한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며 궁극적으로는 전체노동자 대중의 요구와 이해를 진실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건설한다.’고 명시했다.

 

 

2. 96/97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노개투)성과와 정치적 한계

 

1990년 3당 보수 야합에 뿌리를 두었고 1993년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출범한 김영삼 정권은 OECD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하여 1996년 12월 12일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버리고 OECD 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국가신용도를 높이고 한국제품에 대한 국제적 신뢰와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유에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진했다. 이는 미 재무부와 IMF 등이 추진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일환이었고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한국에 불어 닥친 IMF외환위기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OECD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노동시장유연화와 개방화를 추진했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전후 케인즈 자본주의는 자본의 평균이윤율 저하 등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70년대 초부터 통화주의가 발호했고 이는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미국과 남미를 거쳐 세계화하였다. 1990년대에는 아시아지역으로 확대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운동진영은 세계경제정세를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으로 표현된 ‘신보수주의’ 정도로 인식했다. 그래서 1년 후에 닥칠 IMF외환위기, 정확히 말하면 금융자본의 유동성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노동시장유연화는 자본이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 개악을 통해 노동시장유연화를 앞당기고자 ‘노사관계 개혁’으로 포장하고 1996년 5월 9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설치했다. 이는 차기 김대중 정권에 의해 IMF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타협기구인 <노사정위원회>로 대체되었다.

 

민주노총은 초기 노개위에 참가했지만 회의나 토론만으로는 요구가 관철되기 어렵다고 보고 8월에 투쟁본부를 발족한 뒤 파업투쟁 조직에 나섰다. 그리고 노동법 개악이 분명해짐에 따라 10월부터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정방향, 노동법 개정 핵심요구, 노동법 개정 투쟁방침을 정했다. 첫째, 노동법 개정방향은 ①ILO 기준에 따른 자주적 단결권 보장과 노사자치주의 확립, ②국민소득 1만 불 시대에 걸 맞는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고용안정 보장, ③노동조합의 경영참가‧정책참가, 둘째, 노동법 개정 핵심 요구는 ①자주적 단결권 쟁취(노동3권) : 공무원‧교사 노동3권, 복수노조금지조항 삭제, 제3자 개입금지조항 삭제, 공익사업장 직권중재 삭제와 행정관청의 부당 지배‧개입‧간섭조항 삭제, 노동조합 정치활동 금지조항 삭제와 통합선거법 개정, ②개별적 근로관계법 개악저지 : 정리해고 요건 완화, 변형근로제 도입, 근로파견법 도입 저지, 주 40시간 노동제 도입과 정리해고에 대한 제한규정 신설, 근로기준법, 산재보상보험법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확대, 셋째, 노동법 개정 투쟁방침은 ①밑으로부터 노동법 투쟁 결의 : 1조합원 1교육, 대중적 결의, ②민주노총 위상과 조직 강화‧발전, ③정세흐름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11월 총력 투쟁 집중하는 내용으로 노동법 개정 3대 투쟁방침을 정했다. 노동법 개정 내용으로 ‘노동조합 정치활동 금지조항 삭제와 통합선거법 개정’을 요구하였으나 노동법 개정방향과 투쟁방침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제고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치밀하게 총파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OECD 가입 14일 만인 19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을 내세워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다국적기업과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에게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가시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민주노총은 창립한 지 1년 만에 전국적인 총파업에 돌입했다. 김영삼 정권의 정리해고 자유화를 비롯한 노동법 개악에 맞선 전면적인 투쟁이었다. 1997년 2월 말까지 투쟁이 전개됐고 개악노동법은 폐기되어 국회로 되돌아갔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이 폐기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개투 총파업 의의를 ①건국 이후 최초, 최대 규모 정치 총파업, ②노동자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민주주의 쟁취 정치투쟁, ③총자본의 세계화, 신보수주의 공세에 맞선 투쟁으로 세계노동자의 연대와 지지투쟁을 실현했다고 평가하였다. 성과로는 ①날치기 노동법 저지, 법개정‧구속철회 등 정권의 후퇴 이끌어 냄, ②민주노총의 조직력 확대‧강화하고 산별노조 건설 토대 구축, ③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 강화, ④조합원 정치의식 강화, 노동자를 민주주의 투사로 각인시켜 정치세력화 토대 만듦, ⑤노동자 총파업 투쟁이 범국민적 투쟁을 선도하고 투쟁의 확산을 가져옴, ⑥강‧온 겸비한 투쟁전술과 다양한 투쟁형태의 개발과 전술에 있어 풍부한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물론 2007년 1월 22일부터 수요파업으로 전환한 데 따른 노개투 총파업의 역사적 평가는 과제로 남아 있다. 총파업 의의와 성과를 통해 ‘정치 총파업을 통해 조합원 정치의식이 강화’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총파업 총괄 현황을 보면 하루 이상 총파업 531개 노조 404,054명, 총파업 돌입 누적집계 3,422개 노조 3,878,211명, 1일 평균 파업규모 163개 노조 184,498명, 집회 참여 총인원 전국 주요도시 150만명(대규모 집회 일시 30일간), 대국민 선전물 390만부 제작‧배포 등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와 성과였다. 이러한 전국적인 정치총파업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와 향후 과제로 ①조직력과 투쟁력에 있어 결정적인 위력 부족 : 1995년 말 현재 노조조직률 16.5%,165만 명 중 민주노총 50만 명이 23일 간의 총파업, ②노동자 정치역량의 한계 : 여당 우위, 야당 지역정당화와 보수화, ③범국민운동 강화되었으나 민주노총 결합도 취약, 명실상부한 범국민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함, ④조직간 편차 드러났고, 탄압에 대한 대처 부족 : 파업참가 조합원 수는 81.1%였으나 노조 수는 60%, ⑤파업전술과 지도력, 내용 부족 : 파업이 노동자 학교로서의 정치투쟁과 의식고양에 한계, ⑥정치적으로 각성된 열성간부, 조합원들을 단련시킬 사업과 틀 필요하다고 자체 평가했다. 투쟁요구와 목표는 노동법 개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투쟁 계획단계부터 정치총파업으로서의 위상을 정확하게 설정하지는 못했지만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면서 분명하게 정치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나 지도부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 파괴력을 갖는 총파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했다. 정치적 역량 한계와 정치의식제고를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자진보정치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틀이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3. 민주노동당 창당과 원내 진출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민주노총은 96/97 노개투 총파업 과정에서 국내외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특히 그동안 자본과 권력의 왜곡된 이데올로기로 인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왔던 노동자 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졌다.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반국민들의 총파업 지지는 50%를 넘어 80%에 달했다. 민주노총은 노개투 총파업을 통해서 진정한 합법성을 쟁취했다. 민주노총 나름대로 총파업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한 것도 사실이지만 준비한 것보다 성과는 훨씬 더 컸다. 이는 김영삼 정권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새벽에 야당이나 국민 몰래 신한국당 단독으로 날치기를 강행한 것이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이것이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결합한 결과였다. 일반 국민들의 총파업 지지가 단순히 민주노총에 대한 지지만은 아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개투 총파업 성과에 고무되었고 그 해 치러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전국연합 등과 연대해 <국민승리21>을 출범시켰다. 김영삼 정권이 비록 노동운동 약화와 노동시장유연화를 위한 노동법 개악은 실패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자본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은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을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의 운동진영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1997년 11월 IMF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선구도는 결국 IMF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행할 적임자를 뽑는 선거가 되었다. IMF깡디쉬가 한국을 방문해 IMF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제시했을 때 야여 보수 후보들 모두 IMF의 한국경제신탁통치프로그램에 동의했다. 사실 이 때야말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벌여나가야 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은 국민승리21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매우 중요한 시기에 민주노총은 직무대행체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라경제위기와 경제 살리기 경제위기극복 분위기에 밀려 노사정대타협 분위기로 말려들고 말았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적인 노개투 정치파업을 전개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은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니 의미 있는 득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유효표의 1.2%를 얻는데 그쳤다. 총파업에 대한 지지가 곧바로 선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민승리21에 뒤 이은 2000년에 민주노총을 모태로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그 해 16대 총선과 2002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나갔다. 노동자 투쟁만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노동자대표의 의회진출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4년 총선을 전후하여 민주노총의 많은 지도력과 인력들이 민주노동당으로 옮겨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한 전노협과 민주노총건설 과정에서 추구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킴으로써 가시적으로 달성했다. 의회를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세에 대처하지 못하고 후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선자는 IMF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수행했다.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다.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고 민주노총이 참가했다. 신자유주의 정세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기가 꺾인 민주노총의 지도력과 투쟁력은 약화되었다. 민주노총은 그해 2월 6일 김영삼 정권이 OECD가입을 위해 2006년 내내 밀어붙였던 노개위를 통한 노동시장유연화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2월 9일 대의원대회에서 소위 ‘사회적 대타협’안이 부결되었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정부에 합의안 폐기와 재교섭을 요구하는 대신 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파업은 철회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국회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을 통과시켰다. 역사적인 노개투 총파업의 성과는 1년 만에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은 IMF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정책을 강행했다. 금모으기를 비롯한 애국심까지 발동시켜 노동자 민중들이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시켰다. 기업에 대한 해외매각과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1998년 만도기계의 해외자본 매각과 정리해고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벌이자 공장 안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민주노총은 5월 노동절 때 종묘에서 경찰에 맞서 가두투쟁을 벌였으나 위력 있게 저항하지는 못했다. 이어 현대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와 파업이 전개됐다. 1998년 민주노총 2대 이갑용 집행부는 임기 1년 반 만에 사퇴했고 단병호 위원장 체제가 출범했다. 2001년 2월 대우그룹해체와 워크아웃으로 해외매각과 1,754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김대중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권퇴진을 걸고 투쟁했다. 역시 공기업인 발전회사에 대한 해외매각에 반대해 발전노조노동자들의 38일간의 산개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의 IMF구조조정은 외형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신자유주의적인 방식과 삶이 자리 잡았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몰고 온 재벌 2세 정몽준과 민주당에서 극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노무현의 후보단일화로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노무현 정권은 당선자 시절에는 노사간 균형을 잡겠다고 했지만 동북아 금융허브국가 건설과 뒤이어 전방위적인 FTA를 추진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정권임을 명확히 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회 과반의석을 얻었고, 민주노동당 또한 10석으로 제3당으로 등극했다. 국회를 통한 노동자정치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한편 민주노총은 그 이전과 성격을 달리하는 4대 이수호 집행부가 선출되었다. 투쟁과 협상을 병행한다는 명분으로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를 시도했다. 물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지도력 상실과 내부분열을 촉진시켰다. 그러다가 수석부위원장의 뇌물수수혐의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투쟁력 약화와 내부분열이 가속화된 출발점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이 민주노총 내부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주장은 본질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합하면 민주노총 내부갈등이 치유되고 투쟁력이 복원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병의 원인도 모른 채 수술이나 처방을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노동자정치는 노동자 대중이 현장에서 투쟁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을 때 실현된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 없는 노동자정당은 진정한 의미의 노동정치세력화 완성이라 할 수 없다. 2004년 총선을 통해 10명의 노동자 국회의원이 탄생했지만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면서도 투쟁했던 시절에 비해 제도적 개선이나 노동자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못했다. 오히려 더 후퇴하였다. 언론을 통해 민주노총이 담당하던 노동문제에 대한 각종 토론과 이데올로기 선전선동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대신한 대가로 스타정치인이 만들어졌다. 그런 이는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토대 없는 정치적 거품일 뿐이며 개인의 정치적 출세라는 환상으로 심어줄 뿐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당하고 비정규직은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400만 명이나 늘어났다. 양극화와 빈곤은 확대됐다. 노동자들이 분신하고, 길거리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노동자‧농민이 목숨을 잃었다.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정권은 임기 5년 동안 1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구속했다. 이는 6.10민주화 항쟁 이후 5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인 노태우정권 당시 2000명의 구속자를 낸 이래 두 번째로 많은 구속노동자 숫자다. 현재까지는 이명박 정권이 노동자를 가장 적게 구속시켰는데 이는 그가 인권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제대로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 악화와 노동자 삶의 퇴락, 비정규직 확산과 고용불안 증대, 양극화와 빈곤 확대 등 노동자민중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6년 한미FTA와 비정규직악법 저지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들에게 무기력감과 실망감을 안겨줬고 신뢰와 기대를 상실당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한 때 20%대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지금은 5%내에서 고착되고 있다. 이를 2008년 분당으로 돌리려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그나마 2008년 총선에서 5명의 국회의원이라도 당선된 것은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국회의원 비례대표제선거제도 덕분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보수정당과 연대연합에 치중하는 사이 지지와 신뢰를 잃었다.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으로서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포기하고 민주노동당 나아가 보수정당에 기대하면 할수록 투쟁력은 무너질 밖에 없다. 투쟁하지 않는 민주노총에 대해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도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의회주의 노동자정치만으로는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돌파할 수 없다. 현장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자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알바를 포함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불안정고용노동자들의 현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민주노동당 창당과 역시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의회주의 정치는 실패했다. 이 실패는 매우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 있다. 그런데 물리적 통합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다.

 

 

4. 반MB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현 시기 정세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편의상 신자유주의)정세다. MB식 정치와 정책은 특정보수정치권력의 특정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IMF외환위기 이후 일반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확산과 지배는 김대중, 노무현 민주당정권 10년의 정치와 정책을 통해 강화되었다. 노동자 민중들은 4대 부문 구조조정을 내세워 공기업을 비롯해 국가기간산업을 해외에 팔아넘기는 과정에서 노동자를 정해고하고 공권력의 이름으로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경찰력을 동원해 폭력으로 탄압할 때 김대중 정권 퇴진을 주장했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권이 동북아 금융허브와 한미FTA 를 비롯해 자유무역정책을 밀어붙일 때는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쳤다. 민주당 정부 신자유주의 10년 동안 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구속된 것은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었지만 그 외에도 신자유주의 희생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하루 10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극단적 이윤착취에 내몰려 산업재해로 죽어갔고, 청소년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 30명 넘게 자살을 택했다. 잠시라도 빠르게 달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속도전 속에서 속출하는 교통사고사망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 세계 최악의 남녀 임금격차, 비정규직 확대, 청년을 비롯한 실업자 증가, 낮은 최저임금 문제 등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말했다. 그 의미는 국가권력을 잃었을 뿐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부자와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 10년 동안 자본가계급이 얻은 이익만큼 노동자 민중은 삶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최근 MB와 한나라당 3년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추가로 더 많은 것을 얻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보다 자본(가) 그 자체인 정권이기에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반MB와 반한나라당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친민주당과 친국참당이 될 수 없는 정치적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약속만으로 현실을 신뢰할 수 없다. 지난 시기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미래를 예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묻지마식 야권연대에 대해 신뢰를 보낼 수 없다.

 

지난 4월 20일 국회에서 저축은행 부실문제를 따지는 국회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전·현직 재경부장관과 금융감독 당국 책임자들이 모두 출석했다. 그런데 지난 민주당 정권 시기 이헌재 재경부장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현 한나라당 윤증현 재경부장관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공격성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윤증현 장관 역시 노무현 정권 초기 금융감독위원장을 역임했다. 금융정책에 관한한 두 정치세력의 차이는 없다.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로 인한 우리나라 원전 안전성과 전력공급체계에 관한 문제였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 원전인 고리원자력 1호기가 다시 고장을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문제는 그냥 고장이 아니라 건설 당시 계획했던 30년 수명이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다시 10년 연장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간 토목건설이 환경파괴를 가져온다면 후쿠시마에서 보듯이 원전사고는 대재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민주당 정권 역시 환경문제에 대한 무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으로 카이스트 학생 연쇄자살에 따른 사회적 문제였다. 소위 서남표식 경쟁교육방침에 내몰린 학생들의 죽음의 행렬이었다. 오늘날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성과연봉제 등 경쟁방식처럼 대학 내 성적 서열을 통한 등록금 차등제를 통한 교육의 시장화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서남표는 노무현 정권 시기에 미국에서 초빙된 사람이었고 당시 정권의 교육정책과 맥을 같이했다. 계약제·성과연봉제를 비롯한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선진화방안은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의해 기초되고 시행되어 온 정책이다.

 

금융시장개방과 해외투기자본에 관련한 다른 두 가지 사례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출발했고 이명박 정권이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14명의 노동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정리해고노동자문제는 2006년 노무현 정권이 투기자본 상하이자동차에 공장을 팔아넘기면서 비롯되었다. 결과는 투기자본의 먹튀와 노동자 3000여명 해고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폭력경찰 투입을 통한 노동자 죽이기였다. 노무현 정권 출범해인 2003년 투기자본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팔아넘긴 당사자가 이명박 정권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하고 있다. FTA정책은 대표적인 노무현·이명박 정권의 합작품이다. FTA책임자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 권력의 기초는 바로 국민이나 국회를 무시하고 진행되는 통상독재권력의 특징이다. 지금 한EU FTA 국회비준을 두고 국회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당이 FTA를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책임을 면해 보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 외에도 노무현 정권 시절 진행된 경부고속철도, 새만금공사강행, 미제국주의 이라크 침략동맹 파병, 평택미군기지이전, 혁신도시건설을 빌미로 한 전 국토의 투기장화 등 하나하나 신자유주의 정책의 백미였다. 노무현 정권 때 노동소득분배율이 60%에서 이명박 정권 들어 59%가 되었다고 반MB를 외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늘어난 400만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이명박 정권에서 늘어난 몇 십만 비정규직 노동자만 가리키며 반MB라 소리 지르는 야권연대와 진보는 정말 피곤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퇴진을 외치던 노동운동·진보진영이 고작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MB심판에나 매몰되어 있는 상황을 먼저 반성할 일이다. 현 시기 정세에 대응한 정치투쟁의 핵심은 반신자유주의투쟁이고,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 구체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투쟁은 회피하면서 민주당으로 정권만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외치는 반MB 야권연대는 민주·진보·노동운동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길이다.

 

 

5.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향하여

 

사전적 의미로 정당은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으로 정의한다. 정당은 ‘조직의 목적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해서는 특정의 주의 및 정책의 실현이라고 하는 설과 정권의 획득·유지라고 하는 설이 있는데,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후자의 설’이 있다. 정당의 본질 중 ‘하나는 정당을 다양한 사회적 이익의 정치적 요구를 조직화시켜 이를 정치에 반영시키는 민주정치의 도구로서 보는 설이며, 또 하나는 소수 지배층이 선거를 통해서 유권자를 조종하여 민의(民意)를 조작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지배층의 득표조직(得票組織)에 불과하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러나 정당에 대한 두 가지 설은 현실적으로는 균형을 갖고 있기 보다는 정권을 잡기 위해 다수표를 획득하는 운동조직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해 정당이나 조직 구성원들의 이념과 정책을 실현하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보수정치판에서는 이마저도 무시하기 일쑤다. 2000년 진보진영이 민주노총을 토대로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것은 당장 권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진보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노동자정치의 희망을 담을 그릇을 만든 셈이다. 그 그릇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진보정치의 꿈을 담아야 했다.

 

진정한 노동자정치, 창조적인 진보정치는 고통 받고 있는 다수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상층의 조급한 집권전략과 어설픈 연대전략이 진보정치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정치적 출세주의가 진보정치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선거공학에 몰두해 자신의 기초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씨앗을 뿌리고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 열매를 수확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이념과 노선은 사라지고 정책은 뒤죽박죽이다. 반MB 야권연대를 신성시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무원칙한 연대를 주장한다. 여전히 대기업, 정규직 노조 단결체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좁은 토대 위에 불안정한 권력 쌓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나마 배타적지지 정치방침을 고수하면서 진보정치의 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 무리한 정치일정에 맞춰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진보대통합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판적 지지의 망령인 민주대연합으로 가는 길이다. 비정규직노동자를 비롯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불안정고용노동자들 속에서 새로운 진보정치, 노동자정치의 전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노동자정치를 통해 진보정치를 혁신해야 한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끈질기게 노동자민중과 함께하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토론문]

 

노동자를 대상화 시키는 진보정치는 그만!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모으자!

 

 

 

김은주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

 

 

 

ㅇ. 제1기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의 원인

 

-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무능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

 

- 노동운동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 보다는 정치적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 일상적인 정치투쟁 보다는 의회진출과 활동에 의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투쟁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작동.

 

- 배타적 지지방침은 초기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관심과 성과를 내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으나 현장 조합원의 정치의식 제고에 실패(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 점차 하락), 노동자를 정치의 주체로 세워내기 보다는 하향식 지침에 의거하여 필요할 때 동원하는 수단으로 대상화. 그것이 패권과 만나면서 결국 조직적 방침에 대한 불신과 불만 팽배해지고, 조합원 대중의 진보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는 점점 확대됨.

 

- 비정규법 개악과 한미FTA 관련 투쟁 등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명확히 구별되는 정치활동 부족.

 

- 주체의 책임과 반성도 중요. 노동자 투쟁을 효과적인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노동운동과 정치활동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경향 존재. 노동운동 위기 극복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과제를 상층에 떠넘기면서 스스로 주변화. 분당의 원인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책임 회피.

ㅇ. 현재 조건

 

- 복수의 진보정당 존재. 분당으로 인한 후유증 극복되지 못한 채 그대로 누적되어 있고, 불신과 감정의 골은 더욱 더 심화. 진보신당 내부 이견 첨예. 혁신 없이 보수화로 치닫는 민노당. 반MB연대를 기치로 민노, 진보신당의 양당통합을 강제하는 외부요인 존재.

 

- 노동운동 위기 극복과 혁신의 가능성 불투명. 노동현장은 여전히 무관심과 냉소적, 패배주의적. 제2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동력 부재.

 

- 잘못된 반MB 노선의 일반화 속에서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노선이 무력화 될 위기. 제2의 정치세력화를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기계적 통합으로 위장, 강제하려는 시도.

 

 

ㅇ. 2기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관련하여

 

- 경제 대안과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불안정 노동체제를 해소하고, 정규직 비정규직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영세자업자 및 영세농민과의 계급연대전략을 실현해야 한다는 방향에 동의.

 

-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제적 배제를 겪는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주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입장 타당.

 

- 모두가 혁신 대상인 동시에 주체라는 점 인식. 민주주의 원리 복원, 패권 극복과 신뢰회복 절실. 배타적 지지방침 철회. 아래로부터 정치토론 활성화 시켜야.

 

- 입장과 방향을 정해 놓고 조직하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고 같이 대안을 마련해야.

[제안문]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현!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희망!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를 제안한다!

 

 

2011년 상반기, 민주노총 지도부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목표가 ‘진보정치대통합’이라고 말하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재통합 촉구 운동은 그저 일부 상층에 의한 조직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노조간부와 집행부 주도에 의한 관료적 정치세력화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하는 양당 통합 촉구 운동은 노동자 대중을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 같은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후퇴, 위기, 파행, 왜곡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2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초고’에서 김영훈 위원장은 민주노조운동은 ‘전략적 안목의 부재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밀려 조직적 약화’를 가져왔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정체’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운동의 형태로서 추진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주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 그와 같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운동의 성격은 유감스럽게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가 정치적 주체로 서는 일이고, 이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형성, 곧 정치적 노동자 계급 형성이다. 현 시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주체로서 결집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투쟁에서 산업, 지역, 고용형태, 성별, 국적이 다른 노동자들이 하나로 결집하는 계급적 각성의 과정이다. 비정규직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사회에 대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임금저하, 노동조건 악화, 고용불안, 노동법 개악의 원인을 제공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수탈과 투기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의미한다.

 

노동자 정치투쟁은 정치적 주체 형성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이 정치적 주체로 각성하여 진보정당에 대거 참여하여 당의 대중적 기반을 이루고 진보정치의 중심적 요소가 되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를 보편적 정치세력으로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와 향후의 과제는 무엇인가!

 

지난 시기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 이를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로 규정하자면 제1기의 실패 원인은 우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무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1987년 폭발적인 노동자대중투쟁으로 지평을 연 민주노조운동의 최고점은 1996-97년 노동법 개정투쟁이었고, 그 이후는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을 자초한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략 부재에 있다. 민주노총은 금융자본주의의 수탈적 본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유연노동사회에 맞서는 노동사회 재구성 전략을 준비하지 못했다.

 

또한 민주노총 주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에 의존했는데, 이와 같은 정치방침도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실패 원인 중의 하나이다. 당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는 전체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킬 토론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당위성에 의존하여 바람몰이로 결정된 측면이 있었다. 이런 배타적 지지 방침 속에서 조합원 대중의 진보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커져 갔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실패의 원인에서 민주노동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불안정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로 세워내는데 실패하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고 대중을 결집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결국 낡은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보를 재구성하지 못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었을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포괄적인 사회경제 대안을 중심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를 열어 나가자!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는 신자유주의의 금융적, 지대적, 재정적, 강압적 수탈 체제를 해소하고 거대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금융사회화를 목표로 하는 경제 대안과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불안정 노동체제를 해소하고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골고루 일하고 더 잘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경로와 중장기 전망을 담은 노동사회 재구성 프로그램을 통하여 노동자 정치운동의 기획이 혁신되어야 한다. 또한 의료, 교육, 주거, 보육, 노후에서의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 도입, 현행 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 법정 노동시간 상한제를 통한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과 장시간 과로체제 해소라는 세 과제의 연동적인 추진을 새로운 종류의 노동사회에 이르는 경로로서 설정하고 사회적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정규직 비정규직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영세자업자 및 영세농민과의 계급연대전략을 실현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단계는 주체의 재구성을 통해서만 개시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제적 배제를 겪는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주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민주노총의 혁신을 넘어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성을 요구이다. 새로운 단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비정규직, 돌봄 노동자, 실업자, 청년백수, 알바, 이주노동자 등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냄으로써 노동자 계급 전체를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운동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는 현존하는 진보정당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기보다 기존 진보정당의 울타리 밖에서 출발하여 노동자 대중 기반을 확대하고 장차 ‘새로운 진보정당’의 중심적 구성요소가 되는 경로를 택하는 것이 합목적적이다. 이와 같은 경로 설정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단계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이라는 형태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 추진 운동의 성공은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인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나 대선에서의 민주연립정부를 고려하지 않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제 조건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새로운 노동자 정당’ 추진 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원칙인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계승이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의 적용이며,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 전략이다.

 

 

그래서 우리는‘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를 제안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는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재조직하고 정치적으로 재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돌봄 노동자를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진보정치의 핵심주체이자 역량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총력 매진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는 신자유주의를 뛰어 넘어 노동시간의 획기적인 단축과 완전고용 실현 등 모두가 좀 더 적게 일하고 모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제공되는 새로운 사회로의 목표를 분명히 할 것을 결의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는 기존의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대한 혁신운동이며,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치연합 없이 한 단계 더 고양될 수 있도록 하는 대중운동을 펼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 운동을 통해 장차 ‘새로운 진보정당’이 불안정 노동자를 비롯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배제된 광범위한 피해 대중을 결집한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5월 21일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목표로 구체적인 활동과 실천을 통해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대중과 함께하기 위한 조직화 노력에 전력을 다할 것이며, '새로운 노동자 정당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기점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결의한다.

 

 

2011년 4월 23일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 제안자 일동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 제안 해설문]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를 제안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이제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노동자가

당당히 주체로 나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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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자를 중심에 세우는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하여

민주노조운동 혁신하고 진보정치 재구성하자!

금민(전국노동자회 자문위원장)

 

 

2011년 상반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새삼 화두다. 민주노총은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로드맵을 확정했고 대대적인 조합원 정치선언을 조직하려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비록 제대로 수행된 적이 없지만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의 일상 사업 중의 하나였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하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 배경과 목표, 추진방식으로 판단하건대 우려를 넘어 경악을 감출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민주노총 지도부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목표가‘진보정치대통합’이라고 말한다. 즉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곧 ‘진보양당’의 재통합을 촉구하는 운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로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의의는 기존 진보정당의 통합으로 축소되어 버렸고, 양당 통합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진보정치 발전의 관점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사업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고 오히려 퇴행적이다.

 

둘째, 물론 이와 같은 재통합 촉구 운동 과정은 일정 규모의 민주노총 조합원이 통합진보정당에 가입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이와 같은 효과를 낳는다고 해도 그것은 노동자가 주체가 된 진정한 의미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그저 일부 상층에 의한 조직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노조간부와 집행부 주도에 의한 관료적 정치세력화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노동자들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지 못하고 당 재정과 투표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관료적 정치세력화는 이미 실패로 판명되었음에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같은 방식의 정치세력화를 반복하려 하고 있다.

 

셋째, 이른바 민주연립정부 등과 관련하여 통합진보정당의 상이 여전히 모호한 시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하는 양당 통합 촉구 운동은 자칫 잘못하면 노동자 대중을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 같은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와 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서는 현 시기의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대안정당의 상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노동자 대중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내야 함에도 그와 같은 책임과 임무는 방기하면서 ‘묻지 마 통합’만 촉구하는 것은 은폐된 형태의 반노동자적 계급연합 정치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지속적인 장기 전략이 아니라 단기적인 정세대응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세가 긴박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정작 놓쳐서는 안 될 진리는 그와 같은 긴박한 정세가 없으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불필요한가라는 질문 속에 담겨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운동의 항상적인 과제이다. 그래서 도대체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지금까지 왜 실패해 왔으며 지금처럼 절박한 정세 앞에서야 새삼스럽게 오래된 과제를 꺼내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가라고 되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1996-97년 노동법 개정 투쟁 이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한 민주노조운동의 후퇴, 위기, 파행, 왜곡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왜 실패해 왔으며, 그러한 실패와 민주노조운동의 파행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파행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물론이고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앞으로도 어두울 것이다. ‘제2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초고’에서 김영훈 위원장은 민주노조운동은 ‘전략적 안목의 부재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밀려 조직적 약화’를 가져왔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정체’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운동의 형태로서 추진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주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 그와 같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운동의 성격은 유감스럽게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가 민주노총 주도의 ‘묻지마 통합’ 운동일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제대로 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지금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이며 어떤 경로를 거쳐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개념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로 축소될 수 없다. 한국노총처럼 정치노선 없이 집권당에 의존하여 야합하는 방식을 노동자 정치세력화라 말할 수 없다. 정당 정치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에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단순히 정당의 노동자 대중기반을 넓히는 일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 보수정당의 노동자 대중기반의 확대를 노동자 정체세력화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가 정치적 주체로 서는 일이고, 이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형성, 곧 정치적 노동자 계급 형성이다.

 

둘째, 단순한 경제적 계급을 넘어선 정치적인 계급 형성이라는 점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정치적 목표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왜 이와 같은 정치적 계급형성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한 질문이 아니라 반드시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목표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대중이 현 시기의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주체로서 결집하는 일이다.

 

셋째, 그와 같은 과정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투쟁에서 산업, 지역, 고용형태, 성별, 국적이 다른 노동자들이 하나로 결집하는 계급적 각성의 과정이다. 이와 같은 투쟁은 비정규직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사회에 대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임금저하, 노동조건 악화, 고용불안, 노동법 개악의 원인을 제공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수탈과 투기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의미한다.

 

넷째, 노동자 정치투쟁은 정치적 주체 형성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배타적 지지에만 의존하는 관료적인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자각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현 시기에 요구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개념은 배타적 지지에 의존하는 정치세력화를 넘어서서 노동자 대중이 정치적 주체로 각성하여 진보정당에 대거 참여하여 당의 대중적 기반을 이루고 진보정치의 중심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다섯째, 그러한 투쟁이 신자유주의 극복의 대안과 결합할 때 비로소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를 보편적 정치세력으로 형성할 수 있다. 보편적 정치세력은 현 시기의 사회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겸비한 세력을 말한다.

 

이와 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개념은 당대적인 요구이다. 바로 이 당대적 성격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실패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현 시기에 요구되는 과제를 분명히 할 때 더 분명해질 것이다. 우선,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무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1987년 폭발적인 노동자대중투쟁으로 지평을 연 민주노조운동의 최고점은 1996-97년 노동법 개정투쟁이었고, 그 이후는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을 자초한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략 부재에 있다. 민주노총은 금융자본주의의 수탈적 본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유연노동사회에 맞서는 노동사회 재구성 전략을 준비하지 못했다. 기획의 부재 못지않게 전략의 부재도 민주노조운동을 내리막길로 몰아넣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신자유주의 쓰나미에 정치적으로 공동 대응하지 못했고 단위사업장 울타리 내에서의 임금투쟁과 고용안정 투쟁에만 머물렀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이와 같은 수세적 전략은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화하는 자본의 이윤극대화에 기여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인정하는 노사타협주의를 체질화시켰다. 이처럼 민주노조운동이 신자유주의의 노동자 계급 분할 지배전략에 놀아나게 되면서 정규직노동자 운동도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다. 현장 조합원들은 개별화 되었고, 결국 노동조합은 일상 활동이 실종되고 무기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정규직노동자 운동은 약화되었고, 그 결과 자본의 비정규직 확대와 억압, 착취, 탄압에 대응하거나 연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응하는 기획과 전략의 부재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체 형성에서도 민주노총은 올바른 조직화 관점을 세우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불안정 노동자의 확산을 막지도 못했지만 불안정 노동자 대중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의 미조직 비정규 사업은 전체 사업에서 늘 주변적이었고, 산별 건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체로 형성하는 정치적 계급형성 의제가 아니라 정규직 노조의 조직형태 전환으로서만 사고되었으며,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는 틀인 지역별 노조의 건설은 지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둘째, 민주노총 주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에 의존했는데, 이와 같은 정치방침도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실패 원인 중의 하나이다. 특히 민주노조운동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배타적 지지는 수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자 대중의 보수정당 지지를 차단하는 효과도 부분적으로 가져올 수 있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대중적 주체의 적극적인 형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분명히 역효과를 낳는 방침이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는 전체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킬 토론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대의원대회에서 당위성에 의존하여 바람몰이로 결정된 측면이 있었다. 그 이후라도 민주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고 노동자 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진보정치를 활성화시켰어야 했지만 배타적 지지 방침 속에서 조합원 대중의 진보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커져 갔고, 이와 같은 고착 상태를 타개하는 일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배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몫이 되어 버렸다.

 

셋째,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실패의 원인에서 민주노동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세력화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지지 기반을 넓히는 일에 시야를 돌렸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불안정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로 세워내는 일과는 무관했다. 결과적으로 진보정치의 노동자 주체 형성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운동의 최고점은 2004년 원내진출이었고, 그 이후는 내리막길이라 할 수 있다. 내리막길로 돌아선 원인은 자유주의 개혁 세력과의 준별에 성공하지 못한 점이고,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고 대중을 결집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비정규 악법과 한미 FTA 등에서 민주노동당은 여당의 날치기에 모든 책임을 돌렸을 뿐, 결국 낡은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보를 재구성하지 못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었을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은 실패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는 결코 제1기의 연장일 수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단계는 새로운 성격을 가지며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는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정치적, 정책적, 조직적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구체적인 경제 분석, 사회 분석, 계급 분석에 의해서만 이와 같은 수단이 획득되고 새로운 전망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는 제1기의 실패 원인을 교훈삼아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포괄적인 사회경제 대안을 중심으로 기획을 재구성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금융적, 지대적, 재정적, 강압적 수탈 체제를 해소하고 거대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금융사회화를 목표로 하는 경제 대안과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불안정 노동체제를 해소하고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골고루 일하고 더 잘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경로와 중장기 전망을 담은 노동사회 재구성 프로그램을 통하여 노동자 정치운동의 기획이 혁신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운동은 사회적 필요노동의 재분배를 통한 노동사회 재구성의 상, 모든 비시장적인 활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노동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모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상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의료, 교육, 주거, 보육, 노후에서의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 도입, 현행 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 법정 노동시간 상한제를 통한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과 장시간 과로체제 해소라는 세 과제의 연동적인 추진을 새로운 종류의 노동사회에 이르는 경로로서 설정하고 사회적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정규직 비정규직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영세자업자 및 영세농민과의 계급연대전략을 실현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단계는 주체의 재구성을 통해서만 개시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제적 배제를 겪는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주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인 민주노총의 틀 속에서만 진보정치를 추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민주노총의 혁신을 넘어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단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비정규직, 돌봄 노동자, 실업자, 청년백수, 알바, 이주노동자 등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냄으로써 노동자 계급 전체를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도 진정한 산업별 노조건설과 계급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의 중심 과제는 기획과 주체의 재구성을 통해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재형성하는 일이어야 한다.

 

기획의 재구성은 인식과 사고방식의 전환을 뜻하며, 이는 반드시 주체 재구성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세력화의 관건이 되는 문제는 비정규직, 청년실업세대, 돌봄 노동자 등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일이다. 그런데 이는 기존의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의 각성과 재탄생을 요구한다. 따라서 기획과 주체의 재구성은 조직의 재구성, 정치의 재구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첫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는 민주노총의 혁신과 낡은 진보정치의 혁신을 통해서만 개시될 수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1기가 실패했음에도 제2기의 시작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에서 찾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에 대하여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하기 이전에 오히려 진보정치의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혁신과 재구성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분화 과정이었다는 객관적인 관점에 설 필요가 있다. 만약 이와 같은 분화가 새로운 노동자 진보정치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긍정적인 분화 과정일 수 있다.

 

둘째, 배타적 지지와 같은 수세적 방식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세우고 조직화의 중심에 세워 전체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형성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운동은 민주노총 주도로 이루어질 수 없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중심은 정규직 노동자라는 점, 게다가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의 개념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통합 운동이고 조합원의 예비당원 가입운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단계를 민주노총이 주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셋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는 현존하는 진보정당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기보다 기존 진보정당의 울타리 밖에서 출발하여 노동자 대중 기반을 확대하고 장차 ‘새로운 진보정당’의 중심적 구성요소가 되는 경로를 택하는 것이 합목적적이다. 이와 같은 경로 설정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단계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이라는 형태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가 노동자 정당 추진운동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장 강화만으로는 이미 무너진 현장을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의 활성화는 현장에 가두어진 채 수행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의 통합과 재구성 국면이라는 현재의 정세에서 독자적인 대중정치운동의 전개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다섯째,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 운동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계급적 기초이며 신자유주의의 광범위한 피해 대중을 조직화함으로써 ‘새로운 진보정당’이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강제한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 추진 운동의 성공은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인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나 대선에서의 민주연립정부를 고려하지 않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제 조건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새로운 노동자 정당’ 추진 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의 원칙인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계승이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의 적용이며,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 전략이다.

 

이와 같은 합당한 이유에서 우리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를 열어 갈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는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돌봄 노동자를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를 정치 주체로 세워 전체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고 정치적으로 재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모두가 좀 더 적게 일하고 모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제공되고 모두가 더 잘 살게 되는 새로운 사회를 목표로 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는 기존의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대한 혁신운동이며,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치연합 없이 한 단계 더 고양될 수 있도록 하는 대중운동이다.

 

우리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 운동을 통해 장차 ‘새로운 진보정당’이 불안정 노동자를 비롯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배제된 광범위한 피해 대중을 결집한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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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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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 동영상 http://t.co/ywTGSJC


[사회당 브리핑] 금민 상임고문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2기 열자”
  글쓴이 : 대변인     날짜 : 11-04-13 13:49     조회 : 541     트랙백 주소


금민 사회당 상임고문은 12일(화)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진보정치대통합,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의 조직적 주요 방침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민주노동운동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금민 상임고문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가 정치적 주체로 서는 일,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형성, 곧 정치적 노동자계급의 형성”이라며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포괄적인 사회대안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제적 배제를 겪는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재형성하는 일에 중심 과제를 두고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2011년 4월 13일
사회당 대변인실

* 사진 설명: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진보정치대통합,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 발제문 >

노동자 정치세력화 -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I.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개념

-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가 정치적 주체로 서는 일,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형성, 곧 정치적 노동자계급형성이다.

- 따라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단지 정당정치의 노동자 대중기반을 넓히는 일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개념은 무엇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세력화인가의 문제, 즉 정치세력화의 목표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목표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현 시기의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주체로서 노동자 대중이 결집하는 일이다.

-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식은 1) 노조를 정치세력화의 중심으로 하여 정당들에 대하여 사안에 따라서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형태가 있을 수 있고, 2) 노동자 정당이나 진보정당에 대한 노조의 배타적 지지의 형태, 3) 노동자 정당이나 진보정당에 노동자 대중이 대거 참여하여 정당의 가장 넓은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는 형태가 있을 수 있다. 1)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 말할 수 없다. 반면에 3)의 경우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대중적 수준에서 이루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정치적, 정책적, 조직적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어떤 수단이 적절한가는 구체적인 경제분석, 사회분석, 계급분석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II.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1기의 실패 원인

-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는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양 날개를 통해 이루어졌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을 통해 탄생하였으며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았다.

- 민주노조운동의 최고점은 96-97년 노개투 총파업의 승리였고, 최고점 이후는 내리막길이다. 민주노총의 내리막길은 그 원인을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략 부재에 돌려질 수 있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사회계급인 '불안정 노동자'(Precariats)를 확산하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불안정 노동자' 대중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사회 재구성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사업은 전체 사업에서 늘 주변적이었을 뿐이다.

- 민주노동당 운동의 최고점은 2004년 원내진출이고 그 이후는 내리막길이라 할 수 있다. 내리막길로 돌아선 원인은 역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경제적 대안 제시에 실패하고 사안별 반대에만 머문 점,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준별에 성공하지 못한 점이라 볼 수 있다.

- 민주노총-민주노동당 양 날개로 이루어진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1기는 1) (전망의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2) (조직화의 관점에서 볼 때) 광범위하게 형성된 '불안정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2006년 하반기 이후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실패했다.


III.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의 성격과 주요 과제

-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1기가 실패했음에도 제2기의 시작이 지연되고 있는 원인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에서 찾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볼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은 분열이 아니라 진보정치 혁신과 재구성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분화 과정이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시기가 개막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이 혁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는 제1기의 실패를 교훈삼아 1)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포괄적인 사회대안을 중심으로, 2)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제적 배제를 겪는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3)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재형성하는 일에 중심 과제를 두어야 한다.

-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진보적 대안의 필수적인 구성 부분은 1) 신자유주의의 금융적, 지대적, 강압적, 재정적 수탈 체제를 해소할 경제대안, 2) 비정규직,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불안정 노동체제를 해소하고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 골고루 일하고 더 잘 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동사회 재구성 프로그램이다.

- 노동자 정치운동은 사회적 필요노동의 재분배를 통한 노동사회 재구성의 상을 분명히 제시하고 사회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모든 비시장적인 활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노동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모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사회는 이룰 수 없는 공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금융수탈체제만 해소된다면 언제나 가능하다는 점을 선전해야 한다. 노동사회재구성은 1) 의료, 교육, 주거, 보육, 노후에서의 기본복지와 기본소득 도입, 2) 이를 통해 장시간과로노동체계의 해소와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 3) 현행 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의 세 과제가 연동적으로 추진될 경우에 현실적으로 달성가능한 목표이다.

- 조직화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비정규직, 청년실업세대, 돌봄 노동자 등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일이며, 이는 기존의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각성을 전제로 한다. 비정규직 확산의 시대에 민주노총의 대응은 무기력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새로운 정치 주체로 세워내지도 못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단계는 신자유주의가 생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재형성해야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치적 주체 세우는 일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단계의 주요 과제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의 노동자 대중기반이 확대되고 이해관계의 정치에서의 계급적 관점도 확보될 것이다.

-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기는 제1기로부터 독자정치세력화의 과제를 계승해야 한다. 따라서 독자적인 진보정당,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진보적 대안정당을 통해 정치세력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통합진보정당은 반드시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어야 하며, 이러한 근본 성격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인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물론이고 대통령 선거에서의 민주연립정부도 불가하다.

[민주연립정부를 가능하게 할 의제동맹은 허구적이다. 보편복지가 전 사회적 화두이고 시대정신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복지를 위한 증세론은 정치동맹을 형성할 진영형성적 의제가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보완하는 완충적 복지를 위한 증세인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위한 GDP 대비 40-50% 조세부담률까지의 과감한 증세인가의 결절점은 진영을 나눌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 증세동맹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온건증세론과 강경증세론이라는 차이점밖에 부각되지 않겠지만, 20조 증세론과 260조 증세론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대안을 내장하고 있다. 그리고 대안의 차별성은 진영의 차별성으로 귀착된다.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의 관점에서 증세 문제를 접근한다면, 1)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위한 GDP 대비40-50% 조세부담률, 2)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고 극복하기 위한 고율의 금융과세, 5% 이상의 고율 토지세,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등의 증세방식만이 대안이 된다. 생태주의 정당의 관점에서 유럽 수준의 탄소세 부과도 중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증세론, 방법적으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제와 수탈해소를 겨냥하고 있으며 규모에서는 대대적인 증세론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 민주연립정부를 목표로 대선에 임해서는 안 됨을 말해준다. 정치적 독자성과 사회대안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대선논의, 곧 민주연립정부론은 통합논의에서 사전에 차단되어야 한다.]

-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기의 조직적인 주요 방침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민주노조운동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진보통합정당의 근본정체성, 당대성, 대안적 성격


I. 진보통합정당의 근본목표와 근본정체성

사회당은 근본목표와 근본정체성에 있어서 통합정당이 1) 자본주의 극복, 2) 20세기형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 3)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 4) 생태사회 건설, 5)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실현을 통하여 위 1)-4) 원칙에 입각한 한반도 통일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정당, 탈자본주의, 새로운 사회주의, 실질적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정당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와 같은 가치지향의 명확성은 통합정당건설에 합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II. 진보통합정당의 당대성과 대안적 성격

정당의 강령은 근본목표와 근본정체성뿐만 아니라 정당이 해결하고자 하는 당대의 과제와 대안도 표현한다. 진보통합정당 건설이 당대의 정치과제로부터 제출된 문제인 한에서, 당대성은 근본적인 가치지향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당대성 문제에 대해 합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대규정에 대하여 토론하고 대안, 정치적 관철방식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1. 당대성은 어디에?

시대와 정치운동의 관계는 문제와 대안의 관계이다. 시대는 풀어야 할 문제이고, 정치운동은 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서 정치운동의 출발점은 항상 시대규정이다. 이 시대는 1)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에 의한 사회경제적 위기의 시대, 2) 전 지구적 규모의 생태적 위기의 시대, 3)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 4) 평화 위기의 시대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의 형해화, 생태위기, 평화위기는 단지 가공의 위기, 담론상의 위기, 관념 속의 위기가 아니라 실제의 위기이며 진보정당이 시대의 물꼬를 돌리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파국은 곧 닥쳐올 것이다. 따라서 진보통합정당은 이와 같은 네 가지 위기에 대한 해법, 네 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정당이어야 한다. 통합정당은 1)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정당, 2) 사대강 파괴, 저탄소녹색성장의 원자력 중심주의를 종식하는 반토건/탈핵정당, 3) 87년 체제를 넘어서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운동 정당, 4)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평화운동정당이어야 한다.

2. 진보대안을 실현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1)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

신자유주의는 1) 노동유연화를 통한 착취 강화, 곧 비정규직의 확산과 노동시장으로부터 다수 대중의 배제, 2) 금융자본주의를 통한 수탈 확대를 근본특징으로 한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유연노동체제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안과 금융자본에 의한 수탈체제 해소를 위한 금융대안이 필요하다. 통합정당은 반수탈강령, 노동사회재구성 강령을 추진하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어야 한다.

통합정당은 금융적, 지대적, 강압적, 재정적 수탈 체제를 없앰으로써 신자유주를 극복할 대안경제 수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주요은행의 국유화, 연기금을 통한 거대자본 통제, 재벌해체 등의 지배구조 개혁, 사회적 자주관리, 증권화와 파생상품화에 대한 통제와 고율 과세, 신용카드영업의 국영화 등 신용사회 개혁 등의 조치, 고율의 금융과세 및 토제세 등 조세재정개혁안 등 경제개혁 의제와 한미FTA폐기 등의 대외경제 의제를 정치투쟁의 장에서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아울러 비정규직과 실업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사회에 대해서도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하는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의 재분배를 통한 노동사회 재구성의 상을 분명히 제시하고 사회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모든 비시장적인 활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노동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모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상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수탈체제만 해소된다면 언제나 가능하다. 노동사회재구성은 1) 의료, 교육, 주거, 보육, 노후에서의 기본복지와 기본소득 도입, 2) 이를 통해 장시간과로노동체계의 해소와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 3) 현행 최저임금의 두배 인상의 세 과제가 연동적으로 추진될 경우에만 달성될 수 있다.

2) 새로운 민주주의운동정당, 반토건/탈핵정당, 평화운동정당

혁신과 통합을 통해 건설될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운동 정당, 생태주의 정당, 평화정당이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민주주의 형해화의 근본원인이다.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통한 '새로운 나라', 곧 '사회연대국가' 또는 '사회적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명확한 반토건정당, 명확한 탈핵정당으로 통합정당은 국토의 생태적 복원과 재생에너지 및 탈중앙집권적인 에너지 공급방식의 도입을 통한 탈핵 프로세스를 제출해야 한다. 평화운동정당으로서 통합정당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의 수립을 위하여 군사지정학적 우위를 보유한 미중이나 한국 정부의 반평화적 태도뿐만 아니라 북한의 선군세습독재의 반평화적 작용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III. 당대성의 실현은 어떻게?

1. 출발에 앞서 민주연립정부론을 버리자!

통합진보정당이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의 성격을 분명히 할 때,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물론이고 대통령 선거에서의 민주연립정부도 불가하다. 민주연립정부를 가능하게 할 의제동맹은 허구적이다. 보편복지가 전 사회적 화두이고 시대정신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복지를 위한 증세론은 정치동맹을 형성할 진영형성적 의제가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보완하는 완충적 복지를 위한 증세인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위한 GDP 대비 40-50% 조세부담률까지의 과감한 증세인가의 결절점은 진영을 나눌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 증세동맹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온건증세론과 강경증세론이라는 차이점밖에 부각되지 않겠지만, 20조 증세론과 260조 증세론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대안을 내장하고 있다. 그리고 대안의 차별성은 진영의 차별성으로 귀착된다.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의 관점에서 증세 문제를 접근한다면, 1)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위한 GDP 대비40-50% 조세부담률, 2)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고 극복하기 위한 고율의 금융과세, 5% 이상의 고율 토지세,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등의 증세방식만이 대안이 된다. 생태주의 정당의 관점에서 유럽 수준의 탄소세 부과도 중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증세론, 방법적으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제와 수탈해소를 겨냥하고 있으며 규모에서는 대대적인 증세론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 민주연립정부를 목표로 대선에 임해서는 안 됨을 말해준다. 정치적 독자성과 사회대안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대선논의, 곧 민주연립정부론은 통합논의에서 사전에 차단되어야 한다.

2. 새로운 지지기반 획득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기 위해서 통합진보정당은 800만 비정규직, 100만 청년실업자, 400만 가량의 빈곤자영업자, 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여성 등의 사회적 주체가 형성하는 광범위한 반신자유주의 사회동맹의 정치세력화에 앞장 서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의 측면에서 통합정당은 신자유주의가 생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노동자)를 정치 주체로 세우고, 이를 근본으로 하여 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을 정치사회적으로 재형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정당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회적 계급으로서 프레카리아트를 중심으로 하며, 정치적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재형성을 목표로 할 때 진보정당은 새로운 지지기반을 획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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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25일 진행된 "진보의 한반도 평화비전" 토론회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gMvVt1s104U

발제문 (사회당 상임고문).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사회당의 기본입장

1. 상황 인식: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위기

1) 북핵개발과 53년 정전협정체제의 정지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에서 분단과 전쟁 위기를 관리해 오던 정전협정체제는 위기관리기능을 상실했다. 한반도 역내 문제일 수 없는 핵개발의 특성 때문에 6자회담이 정전협정체제를 대체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위기관리기구로 등장하였다. 6자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한반도 역내문제가 아니라 6개국이 합의하는 광범위한 동북아 평화체제의 일환으로서만 수립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의 지연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가 기본입장임을 늘 천명해 왔지만 핵개발을 평화협정, 북미정상화로 나아가는 지렛대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6자회담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북미정상화를 맞바꾸는 데 실패하였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은 지연되고 있다.

3) 신 냉전의 군사지정학

MB정부는 '햇빛정책'을 부정했고 호전주의를 택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로 동북아는 한미일 삼각동맹과 북중이 대립하는 신 냉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미군사훈련이 대규모화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를 벗어나 중미 관계를 염두에 둔 무력시위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그 밖에 한일관계에서도 한일군사협정 체결이 추진되는 등 한미일 삼각동맹은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대결적 군사지정학을 형성해 가고 있다. 연평도 포격 이후 신 냉전은 동북아 군사지정학의 기본 양상이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미일의 합의에 의해 형성된 대결적 군사지정학은 중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비핵화보다 북한체제의 안정을 당면 시기의 전략목표를 설정하게 만든다. 대결적 군사지정학의 고착화시기에 북한의 전략은 선군세습체제의 안정화이다. 신 냉전의 또 다른 한 축으로서 북한은 당장의 대결국면에서 중국의 지지를 얻어내고 세습을 공고히 하는 일에 전략목표를 설정한 것 같다. 연평도 국면에서 보여 주었듯 중국은 6자회담이 조속한 개최를 원했지만 한미일에 의해 거부되었고, 이는 신 냉전을 해소함에 중국이 가장 많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신 냉전은 북한 포위라기보다 중국에 대한 무력시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4) 중미의 경제지정학

미국경제위기 이후 중미의 경제지정학은 안정적인 관계가 아니다. 과거 일본이 하던 역할을 중국이 대신하여 달러 리사이클링이 이루어지던 브래튼우즈2는 금융위기와 함께 위기 속으로 치닫았다. 미국의 달러화 증발 정책과 중미 간의 환율 전쟁은 2010년 중미간의 경제지정학을 규정한다. 이와 같은 경제지정학은 천안함 이후의 대결격화의 군사지정학으로 표현된다. 동북아 신 냉전이 장기국면인가 아니면 잠정적 현상인가는 중미간의 경제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될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관계가 재전형화되어 대외경제관계에서의 위기가 해소된다 하더라도 한번 형성된 군사지정학은 설령 주변화될지라도 경제지정학에 대한 상대적인 독자성을 가지며 장기 존속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5) 평화주도 국가의 부재

동북아 신 냉전이 장기간 동북아에서 국가간체제로 성립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은 결빙기에 지나지 않는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동북아 6개국 중에서 평화주도 국가가 없다는 점은 심각한 우려 사항 중의 하나이다. 중국은 신 냉전체제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은 신 냉전 형성의 초기에만 타당한 가정이다. 중국 역시 신 냉전이 체제화되면 얼마든지 북한식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북한의 전략은 선군세습의 안정을 통해, 즉 대결을 통해 상대를 협상에 끌어내고 평화와 안전보장을 획득하겠다는 전략이기 때문에 신 냉전의 형성을 억제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미미하다. MB정부 이래로 동북아에서 미중일과 북을 평화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국가적 요소가 사라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사회의 평화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2. 목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1) 6자회담을 통하여 동북아 평화체제 수립

6자회담은 북핵 해법을 둘러싼 다자간 회담이지만, 북핵 해법 자체가 이미 동북아 평화체제를 통해서만 달성 가능한 문제가 되었다. 6자회담은 핵보유국이 중미러 3개국이 비핵국가인 남북일에 대하여 핵사용 및 전쟁 포기, 비핵화 보장 등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소위 '3+3체제'의 형성이 동북아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2)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북핵의 폐기는 비핵화 문제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체제의 종식과 남북 및 북미의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6자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과정이 되어야 한다.

3)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협정 체결

6자회담과 별도로 남북관계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며, 6자회담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대하다. 남북은 상호간 독립적인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하하며 조속히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인도적인 지원과 교류는 그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야 한다.

3. 전략: 적극적 평화주의운동

1) MB정부의 군사대결노선,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에 대한 반대운동

대규모 군사훈련, 한일군사협정 등의 문제에 대한 반대운동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매우 높은 편이다.

3) 남북관계 개선 및 평화주도 외교 촉구운동

MB정부의 호전적인 대북정책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비판논리를 다층화하고 좀 더 확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향적인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주변 4대국에 대한 평화외교 없이 북핵문제나 평화체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국과 미일 양국에 대하여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MB정부는 이와 같은 평화주도 외교를 정반대로 틀었다. MB정부의 외교노선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3) 선군세습국면에서 북한의 무력사용과 호전적인 수사학에 대한 확고한 비판

선군세습체제의 안정화가 신 냉전 정세에 구속된 중국의 지원에 힘입어 이루어지는 것은 북한이 신 냉전 시기에 취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인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수립에 긍정요소는 아니다. 이는 신 냉전을 체제요소로 강화하고 말 가능성이 있고 선군세습정치는 반평화적이 된다. 한국의 평화운동은 북한의 무력사용에 대하여 언제나 분명한 어조로 반대할 수 있어야 하며, 호전적인 수사학에 대해서도 그 반평화성을 가감 없이 문제 삼아야 한다. '서울 불바다' 발언 몇 번이면 연평도 포격에 버금갈 정도로 한국 내부의 냉전세력을 부양한다.

4) 적극적 평화운동세력의 사회적 형성

위와 같은 정치적 개입은 전 방위적 평화노력을 경주할 수 있는 적극적 평화운동세력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5) 평화국가 만들기

파병규제법 제정, 헌법상 영토조항 재론, 사회복무제 도입 등 한국을 평화국가로 만들기 위한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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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 _ 사회당 상임고문

'새로운 진보정당'이 진보운동의 화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성격, 강령, 주요 의제, 정치노선, 조직형태 등 내용상의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연석회의에서의 논의는 기성 진보정당 통합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각주:1]. 내용의 문제는 기성정당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 같은 몇 개의 쟁점만을 중심으로, 그것도 토론의 형태가 아니라 정치 협상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고 정치란 구체적인 시공간에 구속된 행위이겠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이 수립될 때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오늘 '새로운 진보정당, 길을 열다' 토론회는 이와 같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기획되었다. 발제문 중의 하나인 이 글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담아야 할 내용을 간략하게 주로 주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I. '새로운 진보정당'의 성격

시대와 정치운동의 관계는 문제와 대안의 관계이다. 시대는 풀어야 할 문제이고, 정치운동은 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서 정치운동의 출발점은 항상 시대규정이다. 그리고 급진적 정치운동은 당대를 위기로 규정하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확신에 뿌리를 둔다. 이 시대는 1)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에 의한 사회경제적 위기의 시대, 2) 전 지구적 규모의 생태적 위기의 시대, 3)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 4) 평화 위기의 시대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이와 같은 네 가지 위기에 대한 해법, 네 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정당, 저탄소녹색성장의 원자력 중심주의를 종식하는 생태운동정당, 87년 체제를 넘어서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운동 정당, 통일운동정당을 넘어서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평화운동정당이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네 개의 위기는 불연속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연속성을 가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연속성의 측면에서 위기들은 중첩되거나 연동되어 있으며 해결 방식에 있어서도 인과적 연쇄로 묶여 있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사회경제적 위기는 민주주의의 형해화의 원인이며 생태위기와 평화위기를 격발시킨다. 87년 민주주의의 후퇴는 97년 신자유주의 체제가 야기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위축에 원인을 둔다. 따라서 해법은 민주연립정부에 의한 민주회복이 아니라 97년 신자유주의 체제의 종식이다. 평화위기를 야기하는 군사지정학적 요인들도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경제지정학적 요인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의 수립에도 97년 신자유주의 체제의 종식은 새로운 조건을 부여할 것이다. 4대강 죽이기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파괴에 근본원인을 둔 생태위기 역시 신자유주의에 의해 격발된다. 97년 신자유주의 체제의 종식은 나머지 세 개의 위기를 완화하거나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전제를 창출한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네 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정당이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하게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어야 함을 뜻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 생태주의 정당, 실질적 민주주의 정당, 평화정당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네 가지 규정 중에서 근본규정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지 못하고서 그것은 생태주의 정당, 실질적 민주주의 정당, 평화정당이 될 수 없다.

II. 기획의 재구성

1. 복지동맹, 증세동맹,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

위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근본적 성격을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근본규정에서 살펴보면 보편복지동맹을 통합정당의 준거로 보는 주장은 어떻게 판단될까? 일단 보편복지가 전 사회적 화두이고 시대정신이라는 점을 인정하자. 그런데 증세 없는 보편복지는 허구이고 복지동맹은 증세동맹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복지논쟁과 관련된 첫 번째 준별점이다. 박근혜표 복지나 유시민표 복지는 첫째 준별점을 통과하지 못한다. 한편 민주당의 친환경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3무1반을 위한 재원은 16조 4천억원으로 추계되고 복지재원 조달의 목표는 대략 20조로 제시된다. 부분적 영역에 국한된 이 정도의 보편복지 원리 도입을 과연 '보편복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20조 증세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완충역할을 하는 복지도입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보완하는 완충적 복지를 위한 증세인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위한 GDP 대비 40-50% 조세부담률까지의 과감한 증세인가의 결절점을 낳는다. 보편복지동맹은 증세동맹이어야 하지만 모든 증세론이 다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증세동맹이라는 개념도 정치적 준별점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20조 증세론과 260조 증세론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대안을 내장하고 있을 것임에도 증세동맹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온건증세론과 강경증세론이라는 차이점밖에 부각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어떤 방식의 증세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차별성도 함께 묻혀 버린다는 점이다. 즉 누구에게 어떻게 증세할 것인가?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의 관점에서 증세 문제를 접근한다면, 1)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위한 GDP 대비40-50% 조세부담률, 2)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고 극복하기 위한 고율의 금융과세, 5% 이상의 고율 토지세,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등의 증세방식만이 대안이 된다. 생태주의 정당의 관점에서 유럽 수준의 탄소세 부과도 중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증세론, 방법적으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제와 수탈해소를 겨냥하고 있으며 규모에서 대대적인 증세론은 증세동맹 안에서 다른 동맹세력을 찾기 힘들다. 두 번째 결절점이 시사하는 정치적 함의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의 정치노선은 반신자유주의 정치동맹이지 증세동맹의 틀 안에 가둬질 수 없다는 점을 뜻한다. 내용상의 차별성을 무화시키는 증세동맹의 틀은 정치세력 통합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은 800만 비정규직, 100만 청년실업자, 400만 가량의 빈곤자영업자, 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여성 등의 사회적 주체가 형성하는 광범위한 반신자유주의 사회동맹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이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은 신자유주의가 생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노동자)를 정치 주체로 세우고, 이를 근본으로 하여 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을 정치사회적으로 재형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정당이어야 한다.

2. '새로운 진보정당'의 강령과 주요 의제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라면 당연히 신자유주의 극복을 강령사항으로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1) 노동유연화를 통한 착취 강화, 곧 비정규직의 확산과 노동시장으로부터 다수 대중의 배제, 2) 금융자본주의를 통한 수탈 확대를 근본특징으로 한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유연노동체제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안과 금융자본에 의한 수탈체제 해소를 위한 금융대안이 필요하다.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은 금융적, 지대적, 강압적, 재정적 수탈 체제를 없앰으로써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경제 수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주요은행의 국유화, 연기금을 통한 대재벌 통제 등의 지배구조 개혁, 사회적 자주관리, 증권화와 파생상품화에 대한 통제와 고율 과세, 신용카드영업의 국영화 등 신용사회 개혁 등의 조치, 고율의 금융과세 및 토제세 등 조세재정개혁안 등 경제개혁 의제와 한미FTA폐기 등의 대외경제 의제를 정치투쟁의 장에서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아울러 비정규직과 실업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사회에 대해서도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하는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의 재분배를 통한 노동사회 재구성의 상을 분명히 제시하고 사회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활동의 관점에서 모든 비시장적인 활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노동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모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상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수탈체제만 해소된다면 언제나 가능하다. 노동사회재구성은 1) 의료, 교육, 주거, 보육, 노후에서의 기본복지와 기본소득 도입, 2) 이를 통해 장시간과로노동체계의 해소와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 3) 현행 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의 세 과제가 연동적으로 추진될 경우에만 달성될 수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반수탈강령, 노동사회재구성 강령을 추진하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일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운동 정당, 생태주의 정당, 평화정당이다. 민주주의 위기의 근본원인이 신자유주의 경제에 있기에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으로서의 '새로운 진보정당'만이 진정한 민주주의 정당의 조건을 충족한다. 앞서 말했듯이,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전면적 복지를 통한 '새로운 나라', 곧 '사회연대국가' 또는 '사회적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생태주의 정당으로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명확한 반토건정당, 명확한 탈핵정당이어야 할 것이고, 평화정당으로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의 수립을 위하여 군사지정학적 우위를 보유한 미중이나 한국 정부의 반평화적 태도뿐만 아니라 북한의 선군세습독재의 반평화적 작용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강령사항과 주요의제는 심화의 대상이 될 수 있어도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의 당대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목표를 둘러싼 근본 정체성의 문제와 무관하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의 형해화, 생태위기, 평화위기는 단지 가공의 위기, 담론상의 위기, 관념 속의 위기가 아니라 실제의 위기이며 '새로운 진보정당'이 시대의 물꼬를 돌리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파국은 곧 임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III. 주체의 재구성

'새로운 진보정당'은 프레카리아트를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당이고, 곧 비정규직 청년세대 빈곤자영업자 빈곤여성이 주체가 되는 당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회적 계급으로서 프레카리아트를 중심으로 하며, 정치적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재형성을 목표로 한다. 이와 같은 주체 재구성 전략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실제적 중심사업이 되어야 하며, 당원배가운동 및 당조직 건설 운동 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주체 재구성은 비정규직 투쟁현장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정당운동의 두 축인 지역과 부문의 종횡적인 결합을 통해 구체적인 전략이 수립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체 재구성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낡은 진보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준거이다. 정규직 대공장 조직노동자 일부에 의존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진보정당'은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통한 노동자계급 재형성 전략을 사회적 수준에서, 그리고 당조직적인 차원에서 공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 점에서 지역의 공간 거점이나 기획 거점 등을 통한 사회운동과의 연합 속에서 정당운동 형태는 노조운동보다 장점을 가질 수 있다. 현재의 민주노총 대표성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는 97년 체제 이후의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처지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민주노총 지지의 실물적인 가치는 재정 문제 이상이 아니고 그것도 현재 이 땅의 프레카리아트가 미조직 상태라는 사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주체의 재구성 문제에서 낡은 진보와 준별하지 못한다면 진보 전체에 미래가 없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는 낡은 진보는 이미 역사적 순환을 다했기 때문이다.

IV. 조직의 재구성

'새로운 진보정당'은 동심원형 정당이 되어야 한다. 대표단을 포함한 당지도부, 시도당과 부문위원회, 지역당협, 핵심당원이 당원대중과 소통하는 동심원을 형성해야 한다. 당원대중의 정치적 활성화가 '새로운 진보정당'의 성공의 관건이다. 명망가와 참모를 중심으로 하는 타원형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제도적 개혁에는 분권적 의사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고의결기구의 상임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하다. 상임위원회는 동심원형 정당의 당원소통에 기여한다. 그 외에 원내지도부에 대한 당지도부 지배의 제도적 보장, 정당의 두뇌기능이 당무의 일상적 집행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연구소와 정책위원회의 장을 당연직 대표단으로 하여 내부화 하는 개혁, 상설적인 당원교육기관의 존치 등이 필요하다. 현재 진보삼당 중에서 진보신당이 당비를 내는 당원 비율이 제일 높다. 하지만 당원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저조하고 지역과 부문의 중견활동가의 위상이 확보되지 못하는 이유는 동심원형 정당이 채 수립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V. 독자정치 전략과 연합정치 전술

위에서 제시한 내용과 목표를 가진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된다면, 당연히 대선에 대해서 독자정치전술을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정치적 독자성은 당연하게도 대선을 통해서 드러난다. 대선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민주연립정부론과 분명히 준별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마찬가지로 진보대통합이 민주연립정부로 가는 트로이의 목마라면,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세력은 당연히 분리정립해야 한다. 그 이외의 선거에서 연합정치는 대의기구가 결정한 분명한 원칙에 입각하여 추진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새로운 진보정당'은 자신의 강령사항의 최대 관철을 연합정치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VI. 끝맺으며

'새로운 진보정당'은 기획, 주체, 조직을 재구성함으로써 낡은 진보와 스스로를 준별한다. 연석회의를 통해서 추진되는 진보대통합이 이와 같은 준별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혁신을 통한 대통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은 혁신주도세력 간의 합의에 의하여 추진될 수밖에 없고, 진보대통합이 민주연립정부로 가는 트로이의 목마라면,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은 시간을 늦출 수 없는 문제가 된다. 파국이 다가오는 시대에 시간이 없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세력은 낡은 진보의 재편성이라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개혁파의 헤게모니 하에서 낡은 진보의 해소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결말이 어떻게 나든 낡은 진보는 순환을 다했다. 이제 진보는 좌파의 정치적 상상력 속에서, 이 시대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지지대중과 함께 거듭 태어나야 한다.


  1. 물론 연석회의는 복지토론회를 조직한 바 있고 평화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토론회는 정책간담회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상의 차별성이 정치노선상의 차별성을 의미하는 지점을 둘러싼 심도 깊은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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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금민 2011/03/25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 진보정당 길을열다'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발제문입니다. 전체 토론자들의 발표문은 아래글 '새로운 진보정당 길을열다 토론회 자료집'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 replica watches 2012/05/14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 모임’(준)의 취지문


 지난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은 포고령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 계획과 내실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정치 행위가 제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진보 정치 세력에게 시간은 무거운 싸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보의 가치를 내실 있게 담는 과제는 시간의 흐름을 도외시 하며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는 혁신을 위한 노력을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절박함에서 우리는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 모임을 만들고자 합니 다. 물론 그 절박함은 시간과의 무거운 싸움 때문에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넘어서는 대안을 진보 정치 세력이 빨리 제출하지 않을 경우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양극화와 삶의 해체가 지속되어 내일의 불안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때 진보 정치 세력이 낡은 사고와 행동에 머문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굴복한다면 진보 자체가 사라지는 어두운 내일을 맞이할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 모임은 기존의 정당 질서 밖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내용적인 측면, 즉 강령과 주요 의제, 조직형태와 정치전략 등을 토론하여 다듬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현실적으로는 기존 정당의 통합과 변형이라는 형태를 띠겠지만, 내용은 혁신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크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연석회의 같은 공식 기구에서만 논의해서는 안 될 일이고,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금 연석회의 등에서의 논의는 혁신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제한적이거나 예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 모임은 기존의 정당 질서의 밖에서 그리고 이를 가로질러 미래의 내용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이러할 때, 우리 논의의 출발점이자 방향은 우리 시대의 위기를 낳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출하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기반이 될 불안정 노동자, 비정규직과 청년 세대를 조직하고 정치세력화 할 수 있는지 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과 지향의 기반이 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논의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 인류보편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과 연대, 인권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우리 활동의 준거로 삼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은 지옥의 문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하지만그의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모든 의혹을 버려야 하고, 모든 소심함을 버려야 마땅하리라.” 바로 이런 정신으로, 하지만 시간의 절박함 속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 모임(준)은 첫 번째 토론회를 기획하며 뜻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손을 내밉니다.

  - 목차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 모임’(준)의 취지 3
사회자 및 토론자 소개 6
금민 |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하여 7
김상봉 |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 16
이재영 | 진보정치운동의 진로에 대한 의견 23
허영구 |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 31

 - 사회자 및 토론자 소개
 - 사회
홍세화 | 월간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 <한겨레> 기획위원.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생각의 좌표』등 저술.

  - 토론
금민 | 사회당 상임고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전 사회당 대표. 사회당 강령 기초.『사회적 공화주의』저술.

김상봉 | 전남대 철학과 교수.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이사장. 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 진보신당 강령 기초.『다음 국가를 말하다』(공저) 등 저술.

 이재영 |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전 <레디앙> 기획위원.
『촛불이 민주주의다』(공저) 저술 

 허영구 |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진보정치를 위하여』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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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ulette 2011/05/13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왼쪽부터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 장상 민주당 후보, 이상규 민주노동당 후보, 공성경 창조한국당 후보, 천호선 국민참여당 후보, 금민 후보, 안웅현 통일당 후보]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kwacks79@hanmail.net)


 

1. 들어가기

 

2009년 2월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를 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된 이래,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진보학계와 진보사회운동‧정치진영 내에서 커다란 논쟁주제로 부상했다. 사회운동과 정치진영에서는 사회당이 얼마 전 기본소득을 부속강령으로 수용하였으며, 교수노조도 최근에 3대 정책의 하나로 기본소득을 채택했다. 아마도 2009년은 기본소득운동이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닻을 내리기 시작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2010년 들어서는 다함께가 이행기강령에 기본소득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기본소득충남네트워크, 기본소득울산네트워크(준) 등이 결성되는 등 각 지방으로 기본소득네트워크가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또한 사람연대‧민주노동자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기본소득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진보신당·민주노동당에서도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심화되고 있다. 또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를 창설한 벨기에의 판 빠레이스(Van Parijs)와 브라질의 기본소득제도를 법제화한 수플리시(Suplicy) 상원의원, 독일 좌파당의 블라슈케(Blaschke) 및 국내의 민주노총, 사회당,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에서 다수의 기본소득 운동가들과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기본소득국제심포지엄이 2010년 1월 27-8일 양일간 서울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어 일간지와 인터넷 언론을 통해 기본소득이 공론화될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국제학술대회는 위에 열거한 단체뿐만 아니라, 민주노동자연대, 전국사무연대노조, 교수노조, 전국장애인운동연합,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사회대안포럼, 진보평론, 아카데미아코뮤닉스, 사회과학아카데미, 수유+너머N, 다중지성의 정원, 연구공간 L 등 사회운동 및 진보적 학술단체와 여러 대학의 연구소들의 공동주최로 개최되었고 이틀간에 걸쳐 약 700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최근에는 역동적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도 기본소득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토지세 등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모델을 제시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와는 달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단일한 고율의 소득세율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는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어떤 기본소득인가’로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은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여러 진보적인 사회운동 및 정치진영을 가로지르며 지구공동체에서 지방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연대의 폭을 넓혀가고 있으며 진보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이 닻을 내린지 채 1년여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작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이 진보적인 활동가들과 연구자들로부터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진보적 활동가들이나 연구자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또는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더라도 아직 잘 모르는 상태이므로 판단을 보류하거나, 취지는 좋지만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운동의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진보진영에서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논거는 대체로 3가지 차원의 오해에서 제기된다.


첫째의 차원은, 기본소득 자체를 체계적으로 오해하는 경우이다. 그 중에는 기본소득이 마이너스소득세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인 기획일 뿐만 아니라 의료‧교육‧보육‧주택‧돌봄서비스 등 현물복지를 모두 현금으로 대체하는 현금지상주의라는 주장 등이 있다. 하지만 뒤에서 살펴볼 것처럼 마이너스소득세는 기본소득과 정반대편에 서 있는 복지모델이고, 보편적인 현물복지를 모두 현금복지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기본소득 옹호자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은 선입견에 치우친 단견이라 할 수 있다. 


둘째의 차원은, 자신이 이해하고 반대하는 특정 기본소득론이 기본소득(운동)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다양한 지향의 기본소득(운동) 전체를 반대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기본소득은 최저임금제‧정규직제도‧파업권의 폐지 등 노동유연화를 전제하며 노동보다는 다른 활동을 보다 우위에 놓는 반노동적 기획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에 해가 된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사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노동보다는 다른 활동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판 빠레이스 등 기본소득의 주창자들 중 일부가 노동을 유연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소득이 도입되고 기업의 협동조합화 내지 사회화 등을 통해 기존의 자본-임노동 관계가 사실상 거의 사라지며 노동자들이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시점 이후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자기가 주인인 기업에 대항해 파업을 하거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점에서 판 빠레이스의 주장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정당한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화나 기업의 사회화를 지향하지 않으며 자본-임노동 관계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노동유연화가 전제된 기본소득을 주창한 베르너(Werner) 등은 부분적으로 반노동적 기본소득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기본소득운동은 압도적으로 베르너 등의 반노동‧친자본적 흐름과는 반대되는 진보진영에서 추동되고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 전체가 반노동적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억지이다. 이 중에는 호워드(Howard), 담(Dahm), 라이트(Eric O. Wright), 키핑(Kipping), 블라슈케, 와이더퀴스트(Widerquist), 라이터(Reitter), 스탠딩(Standing) 등 노동운동을 강화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설 기획으로서의 급진적인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셋째의 차원은, 한국의 기본소득운동 및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제시한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의 차별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를 자신이 이해하며 반대하는 특정 기본소득모델로 환원하여 비판하는 경우이다. 앞서 말한 한국의 기본소득모델과 운동은 노동소득세 증세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자본주의적 불로소득(이자‧배당‧지대) 및 투기소득(증권양도차익‧부동산양도차익) 등에 대한 과세를 대폭 강화하거나 신설하여 재원을 확보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인구의 90%와 정규직의 압도적 대다수에게도 추가로 내는 세금보다 기본소득으로 받게 될 금액이 크며, 나아가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증권가격과 부동산가격을 하락시킴으로써 사회적 총자본을 전체사회성원의 소유로 전환할 계기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본소득모델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다. 곧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면서도 노동자뿐만 아니라 압도적 대다수의 사회성원들에게도 이득이 되며 따라서 기본소득운동의 잠재적 주체를 최대로 확장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조건을 최대한 확대하고자 하는 모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운동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한국의 기본소득 모델이 반노동적 기획이라고 오해하며 그러한 오해에 기초하여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을 비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오해에 기인하지 않는 비판도 있을 수 있으며 그 중에 기본소득모델과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비판도 있다. 그러한 비판은 기존 한국의 기본소득모델 및 운동의 자기혁신을 위한 소중한 원천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비판들을 감안하여, 기존 기본소득 논의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존 모델에서 불분명하거나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논제를 분명히 하는 것과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상생가능성과 비전을 제출하는 것은, 기존의 논의를 한 차원 심화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과제일 것이다.   


 

2. 기본소득 vs. 기본보장‧기초생활보장

 

서유럽 특히 독일에서 2006년 이래 기본소득 담론의 대중적 확산은 독일의 보수당인 집권 기독교민주당 일각에서조차 기본소득과 유사한 ‘연대시민급여’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나미비아의 오미타라 지역에서 기본소득이 실험적으로 실행된 바 있다. 특히 조만간 실험적 차원을 넘어서서 전국적인 차원에서 브라질 및 몽골에서 기본소득을 실행된다. 이제 곧 기본소득은 담론이나 실험에 그치지 않고 지구의 일부분에서는 전국적인 현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논의와 운동은 전지구적 차원에서도 더욱 비약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전지구적 경제공황과 실업의 급증은, 진보적인 새로운 대안적 경제패러다임으로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또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현재 기본소득 논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라는 차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차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원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시공간에 중첩되어 있다. 이는 기본소득 논의를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배경을 이룬다.

먼저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라는 차원도 ‘보수인가 아닌가’라는 차원과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경계선도 나라별로 다르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 담론이 현재 진보진영 내부의 논의로 국한되어 있으며 따라서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는 ‘기본소득을 수용하는 진보인가 아니면 기본소득을 유보하거나 거부하는 진보인가’라는 경계선으로 갈라진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 논의가 활성화된 서유럽과 남미, 남아공과 나미비아 등에서 기본소득 여부를 가르는 경계는 보수·기독교·자유주의·녹색·보라·전통좌파·신좌파 각각의 내부를 가로지르는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보수 내지 자유주의의 기본소득모델과 좌파의 기본소득모델은 다르다. 보수의 기본소득모델은 자본주의의 구원을 목표로 하며, 좌파의 기본소득모델은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획기적으로 변형시키는 대안경제체제를 목표로 하는 ‘트로이의 목마’라 할 수 있다. 정치적 목표에 따라 여러 가지 기본소득으로 차별화되는 셈이다. 곧 현재 지구적으로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라는 차원과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차원이 동시적으로 겹쳐 있는 상황이다.


판 빠레이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별로 무조건적으로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지급하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은 임노동자를 포함하여 외국인, 어린이, 청소녀(년), 주부, 실업자, 노령자, 장애인, 사회운동가, 자본가, 정치가 등 전체사회성원을 뜻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는 신청절차나 심사과정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급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누구나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쾌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 명쾌한 주장은 몇 가지 근본적인 논점을 내포한다. 왜 그것을 도입해야 하는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가, 그것이 도입되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큰가 아니면 부정적인 효과가 큰가, 왜 부자나 자본가들에게도 주어야 하는가, 기본소득을 통해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보는가, 과연 이를 실현할 주체는 누구인가 등은 대표적인 논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라는 차원과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차원이 겹쳐지면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점은 더욱 더 복잡해진다. 곧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변형할 대안경제체제의 밑거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겹쳐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변혁할 밑거름이 되려면 어떻게 재원을 조달해야 하며 어떤 다른 것들과 결부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선 경제체제는 또 전통적인 사회주의 모델인가 아닌가라는 점도 동시에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논점을 담고 있는 기본소득담론에서, 이글은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며 또 어떤 것들과 결부되어야 하는 지에 논의를 한정해서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진보 내부의 논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 내부에서도 기본소득을 거부하는 논의가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대표적인 입장은, 기본소득보다 기본보장(Grundsicherung)이 오히려 진보적이며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비숍(Bischoff) 등의 주장을 들 수 있다. 기본보장은 최소생계비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성인 내지 가족에게 그 차액을 정부가 지급해주는 제도로, 기존의 노동과 연계된 사회복지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기본보장의 수혜대상자는 최소생계비 미만의 소득을 올리거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이며, 따라서 기본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소득 및 재산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기본보장은 가족단위로 받게 된다. 기본보장은 과거에 노동을 했다는 전제하에 받게 되는 실업급여와 달리, 부분적으로 과거 노동에 상관없이 받게 되는 소득이라는 점에서는 기존의 노동과 연계된 사회복지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넘어서고 있다. 이는 대체로 독일어권의 좌파당 당권파‧사민당 좌파‧녹색당 당권파가 지지하는 정책이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백커(Bäcker), 탈로스(Tálos) 등 케인스주의 좌파와 비숍, 로트(Roth) 등 고전적 맑스주의자들 중 다수가 옹호하는 대안이다. 1988년부터 프랑스에서 시행되고 있는 최소통합소득(RMI-revenu minimum d'insertion)은 독일어권의 전통적 좌파들이 주장하는 기본보장에 비해 노동의무가 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거의 유사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이와 유사한 정책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기본보장 내지 프랑스의 최소통합소득이 기본소득과 다른 점은, 소득과 재산심사를 받는다는 점, 가족단위로 받는다는 점, 노동의지 및 노동의무를 어느 정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Vanderborght/Van Parijs, 2005: 13, Blaschke, 2008: 1-2 및 5-8). 기본보장의 옹호자들은 기본소득에 대해 유난히 비판적이다. 그들의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논거는 1. 지나치게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기본소득이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다수를 얻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Bischoff, 2007: 100; Roth, 2006: 70 - Blaschke, 2006: 315에서 재인용), 2. 기본소득보다는 최저임금제의 강화와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등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임노동중심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좌파의 우선적 과제라는 점(Bischoff, 2007: 95-100), 3. 기본소득은 임금축소를 조장하는 콤비임금의 일종이라는 점(Roth, 2006 - Blaschke, 2006: 304에서 재인용), 4.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사상이고, 신자유주의의 발명품이라는 점(Blaschke, 2008: 3에서 재인용) 등이다.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 사상이라는 기본보장 옹호자들의 주장은, 현대 기본소득의 체계를 정립한 판 빠레이스 스스로 기본소득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제출한다는 점에서 근거가 없는 억지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곽노완, 2009: 19). 뿐만 아니라 기본보장의 옹호자들은 신자유주의들이 주장한 마이너스소득세를 기본소득과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밀턴 프리드만(Friedman) 등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마이너스소득세는 강화된 소득 및 재산심사를 전제로 하며 가족단위로 지급된다는 면에서(Vanderborght/Van Parijs, 2005: 52-53) 기본소득보다는 오히려 기본보장에 가까운 복지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 사상이라는 기본보장 옹호자들의 주장은 적반하장인 셈이다. 그리고 기본보장의 논자들은 블라슈케(Blaschke)의 비판대로, 1. 관료적인 소득 및 재산심사를 강화하고자 하며 따라서 신청자들을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며(Blaschke, 2008: 1, 6-7), 2. 노동해방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임노동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따라서 사실상 시장과 자본을 보완하는 데 머물며(Blaschke, 2008; 5-6, Blaschke, 2006: 312-314), 3. 기본보장의 대가로 사후적이긴 하지만 노동의무를 어느 정도 강요함으로써 강제노동을 사실상 인정한다(Blaschke, 2008: 2). 또 기본보장은 현재보다 소득 및 재산심사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현재보다 많은 인력과 시간 및 비용을 낭비하게 된다는 점도 기본보장이 갖는 결정적인 단점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곽노완, 2008a: 161). 


그리고 기본소득이 상식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실현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라는 기본보장 옹호자들의 주장은 현실에 의해서 반박되었다. 조만간 몽골과 브라질 전역에서 실시될 기본소득은 아직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기본보장보다 현실적 근거를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기본보장론자인 비숍(Bischoff)의 국가 독일에서조차 2006년부터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도는 기본보장에 대한 지지도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고 따라서 실현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현재의 제도와 가까운 대안이라고 해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보다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으며, 더 많은 사회성원들에게 수혜가 돌아가는 근본적인 대안이 오히려 실현가능성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케인스주의 좌파와 상당수 전통좌파가 공유하는 기본보장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진보의 전망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에도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에는 이상의 기본보장과 유사한 제도로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있다.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09년 1인 가구 기준 월 49만 845원에 달하는 최소생계비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에 대해서 그 차액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최소생계비 자체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문제점뿐만 아니라(기본보장모델에 비해 1/3수준임), 앞서 지적했듯이 일정소득 이상을 올리는 부양가족이 있을 경우 수급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광범한 사각지대를 조장하며(허선, 2009: 28) 따라서 기본보장보다도 오히려 퇴행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곧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본보장모델이 갖는 문제점뿐만 아니라 거기에 더해 보다 광범한 사각지대를 낳는 문제점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 퇴행적인 제도인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설계한 연구자들조차 이의 다양한 문제점들과  그러한 문제점들이 사실상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이영환, 2009: 7-9; 허선, 2009: 15-33). 그리고 그 중 일부 연구자들조차 기본소득제도를 전향적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만큼(이태수, 2009: 44), 국민기초생활보장에 대한 논의는 기본소득논의에 의해 내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어떤 기본소득인가’이다.    

 
  
3. 좌파의 두 가지 기본소득 :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 vs. 코뮌주의로의 이행전략

 

이제 ‘어떤 기본소득인’라는 문제를 살펴보자. 완전한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입장들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와 유사한 급진자유주의 입장에서 자본가인 베르너가 주장하는 모델이 있으며, 좌파케인스주의 입장에서 제출된 미드(Meade)의 아가토토피아 모델도 있고,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대안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모델도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경제체제의 밑거름을 추구하는 진보 내지 좌파의 기본소득모델도 단일하지 않고 크게 보아 두 입장으로 차별화된다.

첫째로, 라이트(Wright) 등 기본소득을 사회주의(내지 코뮌주의 제1국면)로의 이행전략으로 보는 다소 전통적인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들도 차별적으로 세분화된다. 라이트와 캘리니코스(Callinicos)처럼 노동중심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생산수단의 전면적 사회화를 추구하는 입장, 노동중심주의와 탈노동패러다임을 절충적으로 결합하여 수용하는 키핑(Kipping)이나 블라슈케(Blaschke)의 입장, 호워드(Howard)처럼 시장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입장 등으로 갈라진다. 


둘째로, 초기의 판 빠레이스처럼 기본소득을 사회주의를 거치지 않고 코뮌주의(고차 국면)로 직행하는 전략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며, 분배의 문제나 소득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초기의 판 빠레이스는 스스로를 맑스주의의 재생 내지 코뮌주의자로 자리매김한다(1993: 156이하).   


먼저 사회주의적인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논의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여러 가지 차이를 갖지만 크게 보아 기본소득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이자 사회주의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공유한다. 라이트에 따르면, 사회주의로의 이행 기준은 1. 자본에 비해 노동의 힘을 강화하는 것, 2. 노동력의 탈상품화, 3.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적 권력의 강화 등 3가지이다. 그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수준의 후한 기본소득은 이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므로 사회주의적인 개혁이라고 한다. 후한 기본소득이 노동의 힘을 강화하는 이유는, 개별노동자들의 교섭력을 강화하며 일종의 파업기금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한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자가 더 이상 임금인상의 무기인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노동조합이 약화된다는 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임금인상뿐만 아니라 조직화, 노동조건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후한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기능이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Wright, 2005: 3-4). 그리고 기본소득이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확대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후한 기본소득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임노동 시장 외부를 통해서도 자신의 필요품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앞의 글: 2 및 4). 또한 후한 기본소득이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적 권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이유는, 예술·돌봄활동·정치활동·지역사회운동을 촉진하며 이윤이나 국가의 기술관료적인 합리성을 벗어나 집단들이 스스로 필요를 위한 경제활동을 자기조직할 가능성을 제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앞의 글: 4-5). 이처럼 기본소득은 사회주의로의 세 가지 이행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사회주의적인 개혁이라는 것이다(앞의 곳).


이러한 라이트의 견해는 독일 좌파당 소속 연방의원이 키핑에 의해서도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다(Kipping, 2006: 5-6). 뿐만 아니라 키핑은 좌파의 기본소득 구상을 밝히면서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덧붙여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는 ‘추가적인 35% 소득세+사치품에 대한 조세+주요 에너지세’로 재원을 마련하여 외국인을 포함한 16세 이상의 모든 거주자에게 월 950유로(원화로 약 17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는 정책을 옹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소득 모델은 최저임금제 강화 및 노동시간 단축, 연금·건강·요양·실업 보험 유지, 장애인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 등과 결부되어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부유한 3분의 1에게는 손해가 될 것이지만 나머지 3분의 2에게는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다수의 지지를 고려한 모델이다(Kipping, 2008: 3-4). 독일 기본소득네트워크의 발기인인 좌파당의 블라슈케에게서 보이듯이 이러한 모델은 에리히 프롬(Fromm) 등의 전통적인 노동중심패러다임과 하트(Hardt)와 네그리의 탈노동패러다임을 절충적으로 통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Blaschke, 2008: 4).
시장사회주의 입장에서 호워드도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을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자유의 왕국을 향한 일보이다. 그런데 이 자유의 왕국은 그 기초로서 필연성의 왕국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진정한 노동과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는 사회주의의 장기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Howard, 2002: 9) 그런데 호워드는 라이트나 키핑보다 명시적으로 노동중심패러다임을 거부하면서 기본소득 및 노동에 대한 권리를 동시에 주장한다(Howard, 2005: 133-134). 특히 그는, 기본소득은 게으른 사람들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노동중심주의적인 좌파의 비판을 반비판하고 있다. 그는, 맑스는 교환가치는 노동의 결과이지만 부 또는 사용가치의 창출은 노동뿐만 아니라 자연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보았음을 밝히면서 그러한 비판을 반비판한다(Howard, 2005: 126). 나아가 기본소득을 자본주의에서 도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에서도 지속되고 확장되어야 할 개혁으로 본다(앞의 글: 10). 그는 사회주의에서는 자본주의적인 불로소득이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는 이자, 배당, 지대 및 유산과 같은 불로소득을 종식시키는 기획으로서 사유재산의 철폐를 지향한 『공산당선언』의 취지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Howard, 2005: 128). 곧 그에게 기본소득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는 기본소득이 사회주의나 맑스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Howard, 2005: 122). 


이들이 기본소득을 사회주의(내지 코뮌주의 제1국면)로의 이행전략 내지 사회주의의 한 부분으로 보는 데 반해, 코뮌주의자인 초기 판 빠레이스는 1986년의 논문 「코뮌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에서 사회주의를 불필요한 것으로 본다. 네그리와 가라타니 고진이 사회주의에서는 코뮌주의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데 반해, 판 빠레이스의 경우 사회주의에서 코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하지만 불필요하다고 보는 점에서 약간이 차이가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노동자집단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며 모든 사회적 생산물을 전유하는 체제이다. 이에 반해 코뮌주의는 각자의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고 각 개인의 몫이 노동기여와 무관하게 분배되는 체제이다. 여기서 그는 우리가 왜 사회주의를 필요로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곧 왜 코뮌주의로 직행하지 않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코뮌주의의 가능성은 1) 생산력의 발전에 기인하며, 2) 이러한 발전은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에서 곧 생산수단에 대한 집단적인 소유권보다는 사적 소유권에 의해서 더 잘 제공된다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맑스처럼 코뮌주의를 위해 이타주의의 발전이나 인간 본성이 변화를 전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Van der Veen & Van Parijs, 2006a: 3-5).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계획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생산방식보다 노동을 더 빠른 속도로 절감함으로써 노동생산력의 발전을 더 빨리 촉진한다는 맑스의 가정은 맞지 않다고 반박한다. 곧 사회주의적인 계획이 자본주의적인 이윤극대화 방식보다 노동생산력을 더 빨리 발전시키는 기술을 채택할 것이라는 가정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근본적인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노동생산력은 자본주의 안에서 보다 급속히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앞의 글: 7-8). 그리고 이 핵심적인 변화를 보편적인 보장소득 곧 기본소득에서 찾는다(앞의 글: 10이하).  


그에 따르면, 노동소득에 더하여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매력적이지 않은 노동에 대한 노동력공급이 급감하여 급속히 기계화되고 각자가 보다 원하는 노동을 하게 시간당 노동생산력이 급증한다(앞의 글: 13 및 21). 그러면 생산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노동시간을 급속히 축소시키며 자유시간을 확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수준 대비 기본소득의 비중을 꾸준히 증가시킴으로써 사회주의를 거치지 않고도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맑스의 코뮌주의 경제체제로 직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앞의 곳). 2006년도에 다시 출간된 1986년의 이 논문에서 판 빠레이스는 맑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다른 한편 맑스의 코뮌주의체제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며 실현가능한 역사적 필연성이라고 새롭게 논증했다(앞의 글: 21). 여기서 그에게 기본소득은 코뮌주의로 직행하는 이행전략이자 코뮌주의(1995년 이후 판 빠레이스는 코뮌주의보다는, ‘기본소득과 지분배당경제 내지 협동조합경제를 전제로 하는 최적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의 지배적인 경제원리이기도 한 셈이다.


그는 이렇듯 코뮌주의 내지 ‘최적자본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이행전략이자 코뮌주의내지 ‘최적자본주의’의 지배적인 경제원리인 기본소득이 착취문제에 대해서도 사회주의 이상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는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의 경제원리보다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로머(Roemer)의 착취 개념을 확장하여 생산수단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초한 타인의 노동 수익에 대한 부당한 전유뿐만 아니라 천부재능, 성, 나이, 건강 등의 차이에 근거한 노동수익의 차익에 대해서도 적용한다(Van Parijs, 1993: 89-109; 1995: 183). 이렇게 착취 개념을 확장하면,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개인의 신체와 능력에 포함되어 양도불가능한 자산도 착취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이런 양도불가능한 자산에 근거한 착취는 사회주의적 집단소유에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반해, 이처럼 우연적인 우월성을 갖는 신체와 능력에 기초한 노동수익의 차익을 환수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면 기본소득은 사회주의 이상으로 착취를 더 잘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고용지대(employment rents)는 바로 이처럼 양도불가능한 우연적인 우월한 신체와 능력 및 일자리에 결부된 노동수익의 차익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하지만 고용지대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고용지대를 포함한 임금에 대해 적정 세율로 과세하는 것을 제안한다(앞의 책: 123-125). 물론 양도가능한 자연자원이나 생산수단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초한 착취와 증여·상속 등으로 인한 외적 자산 및 자연자원으로부터의 수익도 상당 부분 환수되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귀속되어야 한다(앞의 책: 101). 이러한 조건하에서 착취에 기반한 초과수익은 점차 줄어들고 기본소득의 상대적 비중이 늘어나면, 이는 사회주의보다 착취에 더 잘 대응하는 체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판 빠레이스의 주장은 기본소득을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으로 간주하는 라이트나 호워드 등의 논의와 달리 코뮌주의 직행전략으로 보는 가장 체계적인 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 대 코뮌주의로의 이행전략으로 이분화된 기본소득모델들은 나름의 문제점을 갖는다. 우선 사회주의 이행전략으로서의 기본소득론은 이행 이후의 사회주의모델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채 막연한 ”목적지” 간주하거나(Wright, 2005: 1-2), 아니면 기본소득을 단지 정의와 도덕적 우월성의 차원에서만 근거지울 뿐 경제적 우월성은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Kipping, Blaschke, Howard).


이에 반해 판 빠레이스는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을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와 분리된 것으로 볼 뿐만 아니라 모순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가 실질적 자유와 결부될 가능성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처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의 자주관리 및 기업창설의 자유 등 실질적 자유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공유될 때만, 생산수단의 일부분을 생산자들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실질적 자유의 가능성이 주어진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유고의 자주관리에서 나타났던 연성예산제약의 문제를 방지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장치로는 기업별 생산 및 투자수익 중 일정비율(예를 들어 50%)을 사회전체 차원에서 필요에 따른 분배의 재원으로 귀속시키고, 나머지 비율(예를 들어 50%)을 기업별 노동소득으로 귀속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도입하면 생산 및 투자수익이 제로 이하인 경우 해당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소득은 자동 소멸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 노동자들은 사회전체성원에게 돌아가는 필요에 따른 분배 몫을 사회로부터 지급받는다. 어쨌든 이 경우 방만한 연성예산제약의 문제는 상당정도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곽노완, 2006b: 80).


판 빠레이스의 궁극적 기본소득모델이 갖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난점은 기본소득의 상대적 비중을 극대화하려는 그의 코뮌주의모델이 지속불가능한 유토피아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그가 이상적으로 보아 수용했던 맑스의 코뮌주의 경제원리는 ‘필요에 따른 분배’ 곧 기본소득이 가처분국민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리였다. 이는 예를 들면 가처분국민소득에서 기본소득이 90%를 차지하고, 노동소득은 5%, 자본 및 자산소득이 5%를 차지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각 개인의 노동유인 및 노동력 공급은 극소화될 것이고 이는 사회전체적으로 생산수준의 정체뿐만 아니라 절대적이 축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기본소득의 상대적 비중은 크게 확대되었지만, 절대적 규모는 갈수록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는 게으른 사람들과 이기적인 사람들이 소수의 헌신적인 노동자를 과잉착취하는 체제가 될 것이며 종국에는 대다수 사회성원들이 탈출하고 싶어 하는 절대적 빈곤을 재생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유로 이는 지속불가능한 체제라 할 수 있다(곽노완, 2007c: 197-198). 더구나 1995년 이후 고용지대와 관한 그의 입론은 고율의 노동소득세로 귀결된다. 그리고 스스로 이는 기본소득의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라고 자신한다(Van Parijs, 1995: 90). 이는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서유럽의 가처분GDP 중에서 명목상 ‘노동소득:자본소득’의 비율이 ‘7:3’ 수준으로 노동소득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소득 비중은 한국의 ‘6:4’나 미국의 ‘6.5:1’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에 누락된 자본주의적 부동산‧금융 투기소득을 감안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부동산‧금융 투기소득은 대체로 최종적으로는 노동소득의 누출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비율은 정확히 측정할 순 없지만 서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처분GDP의 30% 수준을 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기본소득의 또 다른 재원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판 빠레이스는 이에 대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나친 고율의 노동소득세를 통해 기본소득 재원의 상당부분을 마련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노동유인이 급격히 감퇴하여 사회전체의 생산력이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신이 주창한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기본소득’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자기모순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코뮌주의는 판 빠레이스 자신이 요청한 조건들에 위배된다. 그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극대화한 코뮌주의는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보다 우월해야 한다(Van der Veen/Van Parijs, 2006a: 3). 그리고 이는 이타적인 인간의 대대적인 양성이라는 무리한 전제조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앞의 글: 4-5). 물론 판 빠레이스도 자기 주장의 이러한 모순을 점차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앞에서 보았듯이 후기로 갈수록 그른 이러한 자신의 코뮌주의론에 유보조건을 달거나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 결과 그는 애초의 급진적인 코뮌주의론에서 후퇴하여 ‘코뮌주의 + 지분배당 자본주의 내지 협동조합적 자본주의’를 절충한 ‘최적자본주의’를 주장하거나(Van Parijs, 1995: 206), 부분적인 기본소득에서 시작하여 여러 단계를 거쳐 전면적인 기본소득으로 나갈 것을 주장하는 온건주의로 급선회하는 절충성을 보이기도 한다(Vanderborght/Van Parijs, 2005: 124이하).  


더구나 1995년 이후 고용지대와 관한 그의 입론은 고율의 노동소득세로 귀결된다. 그리고 스스로 이는 기본소득의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라고 자신한다(Van Parijs, 1995: 90). 이는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서유럽의 가처분GDP 중에서 명목상 ‘노동소득:자본소득’의 비율이 ‘7:3’ 수준으로 노동소득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소득 비중은 한국의 ‘6:4’나 미국의 ‘6.5:1’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에 누락된 자본주의적 부동산‧금융 투기소득을 감안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부동산‧금융 투기소득은 대체로 최종적으로는 노동소득의 누출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비율은 정확히 측정할 순 없지만 서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처분GDP의 30% 수준을 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기본소득의 또 다른 재원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판 빠레이스는 이에 대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나친 고율의 노동소득세를 통해 기본소득 재원의 상당부분을 마련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노동유인이 급격히 감퇴하여 사회전체의 생산력이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신이 주창한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기본소득’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자기모순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4. 21세기 대안사회 분배원리의 재구성

 

이처럼 21세기 대안사회에 대한 비전의 차이는 현재의 기본소득모델들 간에 차이를 낳는 강력한 요인이다. 나아가 대안사회에 대한 비전의 모호함은 현재의 기본소득모델의 내용과 위상을 흔드는 배경이 된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대안사회의 경제원리 특히 기본소득과 밀접히 연관된 분배원리를 기본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맑스의 두 국면으로 분리된 코뮌주의 경제원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의 지배적인 경제원리인 ‘노동성과(Arbeitsleistung)에 따른 분배’(MEW 19: 21)는 다소간 ‘필요에 따른 분배’에 의해 보충되긴 하지만, 21세기 자본주의를 넘어서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현재까지 서유럽 자본주의국가들은 아직 기본소득을 실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처분GDP의 40-50% 수준에 이를 만큼 상당한 수준의 ‘필요에 따른 분배’를 실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필요에 따른 분배’의 차원에서 현대 자본주의국가 중 일부는 이미 맑스의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보다 앞서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보다 고차적인 코뮌주의 국면의 경제원리로 맑스가 제시한 “각자 능력에 따라,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MEW 19: 21)는 지속불가능한 유토피아라는 점이다. 맑스의 원리는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각자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경제원리를 뜻한다. 그런데 앞서 판 빠레이스를 검토하면서 보았듯이 이는 게으르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의 천국이자 헌신적인 사람들의 지옥으로 귀결될 수 있는 원리이다. 왜냐하면 각자 노동과 상관없이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면 능력껏 일할 사람은 헌신적인 일부의 사람들로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노동자를 감소시켜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수준의 축소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맑스의 두 개의 국면에 따라 분리된 코뮌주의 경제원리들은 시대적으로 낡았거나 아니면 지속가능성이 낮은 유토피아라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그 원리들은 변형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라 21세기 코뮌주의의 상도 새롭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대안은 시공간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 및 ‘필요에 따른 분배’를 통합하여, ‘노동성과+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단일한 코뮌주의의 분배원리로 변형하는 것이다. 곧 사회전체의 가처분GDP 중 50% 수준은 노동성과에 따라 기업별·개인별로 분배하고, 나머지 50% 수준은 사회전체성원들에게 필요에 따른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원리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자본소득·자산소득·투기소득을 코뮌주의적인 기본소득이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은 두 가지 점에서 판 빠레이스의 기본소득과 다르다. 첫째로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의 재원은 사후적인 조세가 아니라, 사전적인 사회전체의 실질적인 가처분GDP의 일정비율이다. 이는 생산수단을 사회전체성원의 공유로 전환시키며 생산에서 추가되는 전체 부가가치를 사회전체성원의 재산(예를 들어 사회연대기금이라 하자)으로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되면 세수관리를 위한 행정비용이 판 빠레이스의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절약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이처럼 자본에 대한 사적소유의 폐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은 판 빠레이스의 기본소득과 달리 자본주의적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전혀 허용하지 않으며 이를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전환시킨다. 이처럼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로의 전환을 전제하는 ‘50%의 노동소득+50%의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은 ‘노동성과+필요에 따른 분배’의 구체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 코뮌주의가 시공간적으로 두 개의 국면으로 분리된 경제원리들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경제원리에 기초한 단일한 생산양식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처럼 새로운 21세기 코뮌주의 경제원리가 기존 자본주의에 비해 경제적으로 우월한가 또는 지속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부분 나라의 가처분GDP 통계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60-70% 수준이며 자본·자산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0-40%에 이른다. 그러나 GDP 통계의 한계로 인해 임대료 등 상당수 자산소득은 포착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GDP 통계는 증권양도차익 및 부동산양도차익 등 자본주의적 투기소득은 전혀 포착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상 노동소득 중 상당부분은 부자들과 금융투기자본의 불로소득이나 투기소득으로 수탈된다. 따라서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지만 현대자본주의 국가의 가처분GDP 중에서 노동소득은 실질적으로 40% 이하에 달하고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은 실질적으로 6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노동유인과 생산유인을 극대화하는 체제가 아니라, 투기소득을 포함한 불로소득을 극대화하며 노동유인과 생산유인은 오히려 약화시키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체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적인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의 대부분을 ‘필요에 따른 분배’인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킨 21세기 코뮌주의의 분배원리는 <그림 1>의 세 번째에서처럼 대략 ‘50%의 노동소득+50%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 구성된다(구체적인 비중은 사회성원들의 결정에 따라 다소 가변적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제시된 21세기 코뮌주의의 분배원리는 자본주의의 분배원리보다 실질적인 노동소득의 비율을 상승시킴으로써 노동유인 및 생산유인을 오히려 촉진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뿐만 아니라 불로소득과 투기소득 대부분을 폐기하여 사회전체성원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성원들이 투기에 낭비하는 막대한 시간을 자유로운 향유의 시간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나아가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은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증가시켜 사회의 소비능력과 더불어 생산을 크게 확장함으로써 자본주의보다 더 빠르고 질적인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제시된 21세기 코뮌주의 분배원리는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지속가능하다.  


그리고 생산수단이 사회전체성원의 공유로 전환됨으로써 자본과 더불어 임노동은 폐지되고 노동자들은 노동자 겸 공동경영자로 전환된다. 그리고 사회전체성원은 각각의 노동자집단에게 생산 및 경영을 위임하는 대신 가처분GDP의 일정비율인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을 받는 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회성원들은 기존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연대기금으로부터 집단적으로 자유롭게 투자자금을 활용하고, 역시 가처분GDP의 일정비율을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으로 귀속시키며 나머지 일정비율은 자신들의 노동소득으로 지급받게 된다. 따라서 방만한 투자 및 기업활동으로 추가적인 부가가치가 생산되지 않는다면 노동소득은 0이 되므로 유고의 자주관리와 달리 방만한 연성예산제약문제는 크게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본이 없더라도 능력·소질·아이디어 등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로운 생산 및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노동 및 생산 유인이 자본주의보다 월등히 확장될 것이다.

 <그림 1> 분배원리: 자본주의, 이행기, 21세기 코뮌주의

노동소득

40%

노동소득

40%

노동소득

50%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60%

불로‧투기소득30%

코뮌주의적 기본소득

50%

기본소득

30%

기존

자본주의 분배원리

이행기의

해방적 기본소득

21세기

코뮌주의 분배원리

 

 

나아가 이글에서 제시된 21세기 코뮌주의 분배원리 및 경제원리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판 빠레이스의 코뮌주의 내지 ‘최적자본주의’보다도 경제적으로 우월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판 빠레이스의 최종목표점인 코뮌주의 내지 ‘최적자본주의’는 맑스의 코뮌주의 고차국면과 유사하게 생산수준의 절대적인 정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판 빠레이스의 코뮌주의모델은 사실상 점진적인 진화주의적 코뮌주의 이행전략으로서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에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사실상 유지시키고 노동소득에 대해서 고율로 과세함으로써 생산유인 및 생산의 수준이 이 글에서 제시된 모델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50%의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복지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 게는 보다 많은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현물 보조 및 그들의 이동권 등은 오히려 현재의 자본주의적 사회복지수준보다 월등히 강화되어야 하며, 기타 교육·의료·생태환경·맑은물·통신‧무상급식‧보행자전용길‧맑은공기‧대중교통 등은 사회전체성원들이 무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물기본소득 내지 코뮌재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방공동체 차원에서 이러한 현물기본소득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방공동체는 성원들의 다양한 현물적 필요를 보다 용이하게 알 수 있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곽노완, 2010: 95-96). 판 빠레이스도 지적했듯이, 기본소득은 이러한 추가적 사회복지 및 현물복지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령별‧장애에 따른 현금기본소득과 더불어 이러한 추가적 사회복지를 현물기본소득의 형태로 확대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Van Parijs, 1995: 42-45).


그런데 여기서 제시된 21세기 코뮌주의의 분배원리와 경제원리는 사적소유의 사회전체성원의 공유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실행될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시공간적 제약 속에서 활용 가능한 이행의 경제적 조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5. 21세기 코뮌주의로의 경제적 이행전략
   = 해방적 기본소득+연기금 및 금융자본을 활용한 주식회사의 공유화

 

사실상 사회전체성원의 공동소유인 연기금 및 금융자본을 활용하여 대부분의 상장·비상장 주식회사를 사회전체성원의 공유로 전환한다면 21세기 코뮌주의로의 이행은 경제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한국을 포함한 21세기 자본주의 국가에 이미 충분히 주어져 있다. 한국에는 이미 250조원 수준의 사회적 공동소유인 연기금이 적립되어 있으며, 기업들이 사실상 전체사회성원의 공동소유인 은행 등 금융자본으로부터 자기자본의 평균 100%수준에 달하는 부채를 갖다 쓰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인 역량만 뒷받침된다면, 당장에라도 대다수 생산수단을 전체사회성원의 공동소유로 전환할 수 있는 21세기 코뮌주의의 시초축적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지구적 차원에서 현실사회주의의 끔직한 과오와 실책 그리고 특히 6‧25전쟁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의 레드콤플렉스는 이러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압도적으로 제압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에서의 해방적인 세제개혁을 통해 21세기 코뮌주의의 비전을 앞당길 수 있는 중간 경로의 가능성도 유망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그리고 토지 내지 생태환경에 대한 조세를 강화하여 추가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안에서 조세개혁을 통해서 실현가능한 최대치의 급진적 기획일 것이다. 이러한 해방적 기본소득이라면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약화시키고 공동소득에 대한 사회전체성원의 코뮌주의적 권리의식을 촉진하며 녹색 및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와의 연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초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제출한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었다(강남훈·곽노완, 2009: 65-82). 이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그림 1>의 중간부분에 해당한다.


이러한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이 ‘21세기 코뮌주의로’의 이행전략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요소로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자본주의적인 투기적 증권양도차익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최대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식 등 증권가격의 하락을 촉발하여, 연기금 및 금융자본을 활용해 주식회사의 전사회적 공동소유로의 전환을 쉽게 해 줄 것이다. 둘째로, 이자소득·배당소득·토지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여 상당한 재원을 조달하자는 제안이 제시되어 있다. 이는 자본주의적인 이윤을 사회적으로 환수하여 자본의 독점과 지배를 약화시키며 자본주의적 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전체성원의 권리를 확장하는 기제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코뮌재인 생태환경을 소모하고 파괴하는 데 대해 환경세를 신설하여 자본주의적인 생태환경파괴를 억제하고자 하였다. 넷째로, 토지세 신설을 통해 지가를 낮추고 토지사회화의 유리한 조건을 촉진할 방안을 제시했다. 다섯째로, 기본소득에  무상교육·무상의료 제도를 결부시킴으로써 코뮌재의 확장과 이에 대한 사회전체성원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사회전체성원의 사실상 공동소유인 연기금과 금융자본을 활용해 모든 주식회사를 사회전체성원의 공유로 전환함으로써 자본주의적인 이윤과 투기소득(이자+배당+지대+증권양도차익+부동산양도차익)을 코뮌주의적인 기본소득으로 전환할 방안을 열어놓았다(강남훈·곽노완, 2009: 82-83). 이는 자본주의의 폐기 및 21세기 코뮌주의 시초축적의 경제적 계기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서 제시된 원리와 세부방안 중에 수정‧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해 보다 높은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물기본소득으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만을 고려했는데, 무상보육‧돌봄노동서비스‧공공임대주택‧맑은공기‧무상급식‧보행자 전용길과 광장‧보다 많은 공원 등이 추가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 무상급식‧보행자 전용길과 광장을 포함해 많은 것들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당장 실현가능한 현물기본소득일 것이다. 또한 노동소득에 대한 증세를 가능한 한 억제하였고,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은 가능한 한 중과세 하여 재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이 원칙을 보다 강력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곧 노동소득의 경우 특별한 고소득이 아니라면, 증세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 총액으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않는 노동소득증세로 인해 임노동자들이 기본소득도입에 대해 심리적으로 거부감이나 부담을 갖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생각지 못했던 재원의 원천을 그간에 새로이 발굴하기도 했다. 통화증가량 중 일정비율이나 통화창조차익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미 마이런 프랭크만(Frankman)은 세계단일통화체제를 구축하고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 단일통화창조수익을 전지구적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Frankman, 2006: 60; Van Parijs, 2006: 46). 일단 현재처럼 화폐주조권이 각국 중앙은행에 귀속하는 한, 이러한 방안은 국가별로 추가적인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으로부터 통화창조권을 회수한다면 후버나 더글라스 등이 주장했듯이 그 재원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고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스스로 변혁될 필요가 있다.         

 


6. 기본소득운동의 주체와 노동운동

 

기본소득은 결과적으로 부자와 자본가의 소득을 노동자계급 및 사회의 경제적 약자에게 이전하는 제도이다. 특히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설계한 기본소득은 2인 가족을 기준으로  연간 실소득이 1억원 이하인 경우 이득을 보는 모델이다(강남훈·곽노완, 2009: 69). 이는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상위 10%의 소득이 나머지 90%에게 이전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구의 90%는 이 기본소득모델의 잠재적인 지지자이자 한국기본소득운동의 잠재적인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맑스가 『자본』에서 착취(Ausbeutung, Exploitation)당하는 임노동자계급으로 정의한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MEW 23: 642)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 탈산업사회에서 불안정한 노동과 소득에 시달리면서 초과착취당하거나 수탈(Expropriation)당하는 모든 사람들 곧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21세기 들어 전지구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해방적 기본소득운동의 평등한 주체들이다.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은 실업과 빈곤에 대한 근원적인 대안일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노동+생태+여성+실업자+장애인+인권+의료+대안교육+도시빈민+영세자영업자+농민+대학생+청소녀(년)+노령자 운동의 주체를 비약적으로 활성화시키며 이들 다양한 운동을 가로지르는 연대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운동주체의 형성과 연대를 위한 지렛대가 될 기본소득운동은 대안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경제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진보적 주체를 비약적으로 확장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운동은 유력한 주체형성전략이자 진보역량을 극대화시키는 연대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해방적인 기본소득이 현실화되면 경제적 권리만 신장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무소득 노령층, 가정주부, 장애인, 청소녀(년), 대학생, 실업자, 사회운동가,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 등 독자적인 경제적 소득이 없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자들조차 보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게 된다. 이는 그 자체로 우리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를 바꿀 것이다. 임노동자들은 연장근로를 하지 않아도 더 많은 현금소득과 더 많은 현물소득을 얻게 될 것이므로 세계최장시간 노동하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해방적 기본소득의 시공간은, 우리가 자본의 사슬을 벗어나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며 보다 원하는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는 다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배가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MEW 4: 482),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MEW 23: 92), “연합지성(associirter Verstand)”(MEGA II.4.2: 331)의 사회,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이 근본 원칙”(MEW 23: 618)이 되는 사회, 곧 코뮌주의를 욕망할 수 있는 능력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해방적인 기본소득이 21세기 코뮌주의로의 이행전략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제시한 한국의 기본소득 모델은 자본주의적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에서 최대한의 재원을 환수하며 노동소득 증세는 가능한 한 억제한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압도적인 대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모델이다. 이는 기본소득 재원의 압도적인 부분을 고용지대를 통해 마련하고자 한 판 빠레이스의 모델이나, 노동소득을 포함한 모든 소득에 대해 일괄적으로 추가적인 35%의 증세를 하겠다는 독일 좌파당 연방연구회 기본소득위원회의 모델처럼 상당비율의 정규직에게 손해가 되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는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이 자본주의적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의 압도적인 재원을 발견해 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또 다시 이러한 발견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구체적 상과 명료한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히려 급진적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사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 대안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에서 한국의 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계급은 잃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97-98년 IMF위기 이후 급격히 질시의 대상으로 뒤바뀐 정규직 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은, 초과착취당하며 수탈당하는 21세기 진보운동의 새로운 주체인 프레카리아트와 거대한 희망을 나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96-97년의 노동자대투쟁 때보다 훨씬 더 평등하고 매력적인 연대의 파트너로 새롭게 부상할 것이다. 해방적인 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지름길이다.
     

이 글은 지난 5월 28일 광주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111호에서 열린, 5ㆍ18 기념 재단 주관 [5ㆍ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중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토론회에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의 발표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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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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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8일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이 글의 일차적인 목적은 곽노완 교수의 발표문 「여러 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전」에 대한 논평이다. 곽노완 교수의 글은 기본소득 논의가 "기본소득인가 아닌가"의 지평으로부터 "어떤 기본소득인가"의 지평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곽교수는 먼저 "기본소득인가 아닌가"의 논쟁이 마이너스소득세 등 결코 기본소득으로 볼 수 없는 제도들을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오해하는 가운데 선별적 복지의 확대가 더 나은 대안이라는 입장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곽교수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논쟁을 "어떤 기본소득인가"의 문제 지평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기본소득에 대한 불필요한 반대를 잠재우고 기본소득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운동은 기본소득에 관한 외국 논의의 소개 단계, 민주노총 프로젝트를 통한 독자적인 모델 제출 단계, 개별적인 요구정책을 통한 정치사회적 확산 단계를 넘어 이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관심을 더욱 확산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의 이론적ㆍ실천적 내부로 논쟁의 중심이 이동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곽교수의 발표문은 이 점에서 한국에서 기본소득론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큰 중요성을 가진다. 그래서 이 글은 논평문의 형태를 다소 벗어나더라도 좀 더 일반적인 수준에서 기본소득과 관련된 이론적ㆍ실천적 쟁점들 및 기본소득 이론 내부의 대립 지점들을 분류하고 유형화할 것이며, 기본소득 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논쟁적 쟁점들에 대한 대강의 윤곽을 드러내고자 한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쟁은 1)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 2) 재원에 관한 논쟁, 3) 경제적ㆍ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쟁, 4) 기본소득 도입 운동의 실현 주체와 전략에 관한 논쟁, 5) 기본소득의 도입과 대안사회로의 이행의 관계에 관한 논쟁 등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점에서의 상이한 입장들은 상이한 기본소득 개념으로 귀결된다. 곽노완 교수는 재원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어떤 기본소득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아울러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며 또 어떤 것들과 결부되어야 하는 지에 논의”의 중심을 둔다. 즉, 기본소득을 주제로 하여 그간 집필된 곽교수의 여러 글들의 주제는 주로 위의 쟁점 2)와 쟁점 5)이다. 제출된 발표문 역시 재원과 이행의 관점에서 기존의 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끝 부분에서 기본소득과 노동자운동의 관계를 다루면서 쟁점 4)의 문제에 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쟁점 1)과 쟁점 3)은 곽교수의 글들에서 비교적 덜 상세하게 다루어지거나 생략된 쟁점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주제에 관해서도 기본소득론 내부에 어떠한 쟁점이 형성될 수 있는지를 간략히 다루고, 곽교수의 발표문에서 주로 다루어진 쟁점들에 대한 논평으로 나아갈 것이다.

 

1.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

 

정치철학 및 사회철학의 담론 지평은 단일하지 않다. 또한 특정한 철학적 주제가 학술적으로 논의ㆍ소통되는 매우 특권적인 담론 지평이 있기 마련이다. 분배정의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공리주의, 합리적 선택론, 신사회계약론, 자유지상주의, 신고전파 경제학의 담론 지평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통과 뿌리를 달리하는 이종적인 틀에서 분배의 문제를 다루고자 할 경우에도 주류적 담론 지평과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작업은 대개 담론 지평의 확장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판 빠레이스(1995)의 경우 분배정의론의 주류 담론 지평에서 출발하면서도 맑스주의적 문제의식을 통해 논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방식을 채택한다(1993/1995). 이와 같은 논증 전략은 주류 담론 지평을 출발점으로 할 경우에만 기존의 이론과의 연속성 또는 논쟁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의 현상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분배정의의 관점이 아니라 전통적인 정치철학적 지평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논할 경우에도 발생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논하는 케롤 페이트만(2010)이나 공화주의의 전통에서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페티트(1997)나 레벤토스(2007)의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당화 논의는 민주주의, 주권, 공화국 등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을 우회할 수 없고 이와 같은 개념을 둘러싼 전통적인 논의와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곽노완의 경우, 기본소득은 맑스의 코뮨주의 분배개념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유토피아로서 정당화되고 여기에서 맑스의 이론 틀은 준거적 역할을 한다.

 

한번쯤 질문해 볼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지적 전통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본소득 논의를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도 수행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이한 기본소득 개념,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적인 기본소득 개념으로 귀착되지 않는가이다. 예컨대 자유지상주의의 틀 안에서의 기본소득을 자유의 실질적 기초로서 정당화하는 것과 민주적ㆍ사회적 공화주의의 틀에서의 기본소득을 시민 자격의 실질적 기초로서 정당화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를 안고 있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요소 이외에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상에서는 당연히 많은 차이를 안고 있을 수 있고 두 입장이 각각 옹호하고 있는 기본소득의 개념, 사회적 구성 원칙으로서의 위상도 다를 것이다. 예컨대 기본소득은 성과에 따른 분배 원칙을 단지 보충하는 정의 원칙인가? 아니면 기본소득은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소득이고 이처럼 보편적인 자격에 입각한 분배의 원칙은 성과에 따른 분배원칙과 동일한 정도의 비중을 가지며 두 원칙은 분배정의의 두 축으로서 양립하는가? 판 빠레이스처럼 실질적 자유로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과 인류, 사회구성원, 시민 등과 같은 보편적 자격으로부터 당연히 수반되는 필수적 권리로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금민 2010)은 기본소득을 정당화한다는 공통점보다 더 큰 사회철학적 차별성을 안고 있을 수 있다. 단지 기본소득을 옹호한다는 점만으로 그와 같은 차이와 대립은 해소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여러 철학적 지적 전통들에 내장된 이론적 긴장 관계가 단지 기본소득을 옹호한다는 점만으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의 확장을 위해서도 이와 같은 정당화 이론의 내적 긴장 관계가 분명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여러 지적 전통으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기본소득을 중심개념으로 하여 방법론적 다원성을 허용하는 메타이론의 구축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도 이론과 이론, 전통과 전통 간의 명확한 차별성의 인식이 먼저 요청된다.

 

2. 재원에 관한 논쟁

 

이는 실천적으로는 가장 큰 논쟁거리이다. 일단 기본소득에는 알래스카 모델처럼 자연자원을 재원으로 하는 분배 모델이 있으며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재분배 모델이 있을 수 있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재분배 모델로서의 기본소득만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재정에 대한 혁명적 개혁이 필수적 전제조건이 된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재원을 형성하기 위하여 조세제도는 과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여러 가지 모델들이 제안될 수 있다. 그리고 각 모델들은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뜻할 수 있다. 판 빠레이스는 천부능력과 고소득 직업에 고율 과세하는 노동소득세를 재원으로 제시하는 반면에 강남훈/곽노완 모델은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강조하며 이와 함께 프랭크만(Frankman 2006)과 판 빠레이스(Van Parijs 2006)을 따라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달러패권의 종식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주조차익을 지구적 기본소득 재원으로 할 것도 주장한다. 이와 같은 상이한 모델들은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상이한 사회적 저항을 초래할 것이며 기본소득 도입 이후로부터 대안적 사회로 나아가는 상이한 전략, 대안사회에 대한 상이한 상을 전제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기본소득의 재원에 대한 모델은 당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의 시정과 관련되어야 하며, 신자유주의 수탈경제의 문제점을 시정하는 기본소득이라면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로 재원이 조성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해체되어 가는 사회에서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비롯한 자본과세가 아니라 중산층의 노동소득에 고율 과세하는 방식은 신자유주의적 수탈의 해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양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경제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사회연대전략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된 노동자들을 단일한 노동자계급으로 형성하는 전략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부터 외면 받는 전략이었던 이유는 그들도 연 3000시간을 일해야 그 정도 임금을 받으며, 이는 시간당 임금으로 보면 주 35시간 일하는 독일 노동자의 절반에 못 미치는 임금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금융적, 지대적, 재정조세적 수탈의 시대, 대량 해고와 자본중심적 노동유연화의 시대에 기본소득의 재원은 수탈경제의 해소로부터 조성되어야 하고, 이렇게 조성된 기본소득은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원하는 사람은 모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주당 30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총노동량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 재원조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곽교수는 인구 90% 이상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모델이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를 주장한다. 물론 이는 중요한 논거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재원문제에서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를 지지하게끔 하는 보다 더 중요한 논거는 다른 곳에서 찾아진다.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이 시대의 문제가 과연 무엇이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나온다. 즉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인 고용불안정이 소득불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노동시간단축 효과를 통해 사회적 총노동의 재분배를 촉진할 것이며, 기본소득의 재원을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로 조달하는 방식은 신자유주의적 수탈경제를 종식시키고 대안적 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할 것이라는 점으로부터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모델이 지지받을 수 있다.

 

3.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쟁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본소득의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의는 기본소득과 대안사회의 관계에 관한 논의, 노동사회로부터 활동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논의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의 경제적 사회적 효과와 관련된 좁은 범위의 논의도 기본소득 논쟁에서 독자적인 쟁점 사항이 될 수 있고, 실천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2010년 한국에서 기본소득 도입은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매우 초보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강남훈(2010) 교수와 안현효(2010) 교수의 글이 여기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좀 더 풍부한 연구로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내수성장론, 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 고진로 성장론 등은 좀 더 치밀한 현실분석을 통해 대안적 발전노선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4. 기본소득 도입 운동의 실현 주체와 전략에 관한 논쟁

 

곽노완 교수는 글에서 한편으로 “탈산업사회에서 불안정한 노동과 소득에 시달리면서 초과착취당하고 수탈(Expropriation)당하는 모든 사람들 곧 프레카리아트(Precariat)”를 기본소득 운동의 중심적 주체로 설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투기불로소득 중과세에 의한 재원조성 모델은 인구의 90%에게 혜택을 돌리기 때문에 “인구 90%는 이 기본소득모델의 잠재적인 지지자이자 한국기본소득운동의 잠재적인 주체”라고 말한다.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는 기본소득은 “다양한 운동을 가로지르는 연대의 지렛대”, “다양한 운동주체의 형성의 지렛대”, “대안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경제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진보적 주체를 비약적으로 확장하는 운동”으로 파악된다. 곽노완 교수는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운동을 “유력한 주체형성전략이자 진보역량을 극대화시키는 연대전략”으로 이해한다.

 

한 가지 보충할 사항은 기본소득 도입운동과 정규직 노동자운동의 관계가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수혜가 돌아간다는 이해관계의 측면에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보다 풍부한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기본소득 도입이 가지는 노동시간단축 효과와 노동자의 노동시간주권 회복정치의 차원을 결합하여 사회적 총노동의 재분배를 촉진할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의 유의미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일단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뜻한다. 이는 물론 노동사회로부터 활동사회로의 이행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의 종식을 말할 조건이 성숙하지 않는 한에서 한 사회가 노동하기를 멈춘다면 사회 자체가 해체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린 아이도 알고 있다”(맑스,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노동사회 종식의 조건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와 같은 필연성이 당장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자유의 왕국의 조건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과도기에서 필요한 일은 사회적 총노동의 재분배이며 노동시간의 단축, 노동자의 시간주권의 회복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의 인정이라는 계기를 통해 노동 외부에서 노동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기본소득은 노동사회 내부에 영향을 미치며 노동사회 재구성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노동시간단축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는 단지 작용과 효과에 대한 추론 이상을 넘어서서 하나의 단일한 노동사회재구성 전략의 두 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과 최저임금제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조명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활동 범주의 인정을 통해 매개적으로 노동사회 재구성에 개입한다면, 최저임금제는 노동의 직접적인 사회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더라도 최저임금제가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5. 기본소득의 도입과 대안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논쟁 및 대안사회에서 기본소득의 의의에 관한 논쟁

 

기본소득 모델 중에는 베르너와 같은 자유주의 모델도 있으며 좌파케인스주의 입장에서 제출된 미드(Meade)의 아가토토피아 모델도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경제를 지향하는 모델도 있다. 그러한 모델들은 기본소득을 사회주의(코뮨주의의 제1국면)로의 이행전략으로 보는 모델과 코뮨주의로 직행하는 이행전략으로 보는 모델로 나누어진다. 전자의 경우에도 탈노동패러다임이냐 전통적인 노동중심패러다임이냐로 나눌 수 있고, 생산수단의 사회화 전략을 포함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주의 노선인가로 나눌 수 있다. 기본소득을 코뮨주의 직행론의 이행전략으로 본 입장에는 초기의 판 빠레이스가 속하는데, 그러한 입장은 판 빨에스 특유의 분배중심론적 관점과 연관된다. 곽노완 교수의 입장은 판 빠레이스의 초기 입장에 대비하여 생산수단 사회화의 문제를 중시하며, 후기 입장에 대비하여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더 치밀하게 따질 것을 주장하며, 라이트나 캘리니코스 등의 사회주의 이행전략으로서의 기본소득론에 대하여 대안사회의 상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좀 더 분명한 소유원리와 분배원리를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곽노완 교수의 사회화 전략은 금융기관의 사회화와 연기금을 통한 매입을 통하여 생산수단을 점차적으로 사회화해가는 방식이다. 투기불로소득 고율과세에 의한 재원 조성은 이 과정에서 자산가치하락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며 매입을 통한 사회화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른 한편, 곽노완 교수는 노동성과와 무관한 동등한 기본소득이 가처분GDP의 50%, 노동성과에 따른 소득이 5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분배모델을 코뮨주의에서의 분배모델로 제시한다. 곽노완 교수는 이와 같은 비중 분할을 통해 유고의 연성예산제약과 같은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곽노완 교수의 코뮨주의 분배모델은 후기의 판 빠레이스가 코뮨주의로의 이행을 포기하고 최적 자본주의로 돌아선 이유가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있다고 보고 지속가능한 코뮨주의 경제원리를 탐색하려는 시도 속에서 등장한다.

 

50% 대 50%로의 가처분GDP의 분할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동등한 자격에 입각한 분배와 성과에 따른 분배라는 두 개의 분배원리가 대등하게 작동하는 사회를 코뮨주의로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곽노완 교수는 자격에 입각한 동등분배 원리를 맑스에 따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고 정의하는데, 이 부분은 좀 더 따져볼 문제인 것 같다. 필요에 따른 분배란 개별적 필요의 차이에 의하여 충분히 많거나 적을 수 있는 것인데, 기본소득은 장애인 기본소득 등과 같은 추가 기본소득을 인정하더라도 언제나 보편적 자격에 따른 동등분배원리가 기본 요소이다. 기본소득은 개별적 필요에 따라 알아서 나누어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보편적 필요를 보편적 자격에 합당한 필요로 이해할 때, 하나의 특정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하고 전 측면에서 사회에 참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분배만이 보편적 자격에 합당한 필요에 따른 분배로 나타날 것이다. 즉 우리는 보편적 자격에 합당한 보편적 필요의 범주를 도입하여 필요에 따른 분배론이 가지는 유토피아적 성격을 현실화할 수 있다. 굳이 맑스의 어법에 따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자격의 개념 속에 보편적 필요의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 좀 더 기본소득의 핵심적 내포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지난 5월 28일 광주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111호에서 열린, 5ㆍ18 기념 재단 주관 [5ㆍ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중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토론회에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의 발표에 대한 논평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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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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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여러 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전

    Tracked from 금민닷넷 2010/05/31 11:06  삭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kwacks79@hanmail.net) 1. 들어가기 2009년 2월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를 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된 이래,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진보학계와 진보사회운동‧정치진영 내에서 커다란 논쟁주제로 부상했다. 사회운동과 정치진영에서는 사회당이 얼마 전 기본소득을 부속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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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
*행동하는의사회 웹진 기고


의료서비스의 민영화(Privatization)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심지어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을 90%까지 제고해야 하며 난치병의 경우는 100%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영리병원은 절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들의 주장과 민주주의의 문제의 연관에 대하여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의 문제는 복지의 문제일 뿐이고, 민주주의의 문제는 아니다.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은 복지와 민주주의는 그야 당연히 깊은 관계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복지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에 반하여, 이 글의 주장은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야말로 민주주의, 곧 정치적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사회연대의 복지관과 보편적 복지의 이념
 
복지와 민주주의의 직접적 연관성을 부인하는 생각 속에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복지의 가치가 축소되도록 만들었던 낡은 관념, 즉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관, 영국의 구빈법 이래로의 전통적인 복지관이 은폐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원리이며, 곧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근거한 평등한 참정권의 문제이지만, 이에 반하여 복지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리이며, 따라서 보편적인 자격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와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복지가 각각 '평등의 원리'와 '연대의 원리', '보편적 자격'의 문제와 '특수한 처지'의 문제로서 상호 구별되며, 비록 상호 보완적이지만 그 원리에 있어서 결코 동일하지 않은 영역으로 파악되는 한에서,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수급자의 '특수한 처지'가 아니라 민주주의, 곧 국민주권의 원리처럼 오직 국민 또는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근거한 복지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로서 복지를 파악하는 관점조차 사회적 연대의 수준과 대상을 가장 높고 넓게 잡을 때조차 보편적 복지의 이념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기초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보편적 복지론과 사회연대의 복지론, 양자는 원리상 차별적이다. 이와 같은 차별성은 복지 재원을 얼마만큼 마련할 것인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 그 이전에 존재하는 차별성일 것이다.
 
우리가 복지를 빈곤이나 질병, 실업 등과 같은 개별적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이와 같은 ‘연대의 복지관’은 시장이 잘 기능하고 사회적 부의 생산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며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된다면 공공적 복지 영역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다지 상충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은 일차적으로 시장의 문제가 될 것이며, 복지제도는 원리상 잔여화(residualized) 된다. 복지가 필수불가결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제도가 잔여화 되어도 되는 것인가의 문제를 통하여 사회 연대의 복지관과 보편적 복지 이념의 원리적인 차별성이 잘 드러난다. 사회 연대의 복지 이념은 시혜성과 선별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복지나 공공서비스를 시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권리로서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든다. 반면에, 보편적 복지관에 입각할 경우, 복지는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이 되며 무조건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국가정당성의 조건이 된다. 곧 보편적 복지관은 복지를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으로 파악한다.
 
보편적 복지관에 따르자면, 비록 선거 절차와 같은 민주주의의 형식적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의 성격과 질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공공 서비스는 상업화(commercialization)되어 복지국가가 잔여화한 상태, 곧 복지가 시민으로서의 지위 때문에 주어지는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수혜 요건을 갖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혜가 된 상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기만이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제한된 정부와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의 맞쌍과 등치되며, 선거 실시 여부로 축소, 환원될 뿐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시민권의 문제, 곧 사회권을 경유한 국민 자격의 포괄적인 수준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달리 말하자면, 보편적 복지야말로 더 많은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으로만 한정하는 낡은 민주주의 관념을 넘어선 대안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시대적 요청
 
물론 우리가 복지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각각의 복지관이 어떤 원리에 근거했는가라는 문제 수준으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왜, 어떤 이유로 해서, 그와 같은 복지 이념이 필요하며, 그것은 과연 시대적 요청에 부합되는가를 아울러 따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지난 12년간 한국 사회가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 사회양극화의 시대를 거쳐 왔으며, 작년 이래로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를 경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시대, 시장으로부터의 낙오자가 쌓여 가는 시대에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이 시대에 적합한 요청, 시대적 요청이 된다. 물론 사회 연대의 복지관에 입각하더라도, 연대의 대상이 넓어지고 필요한 연대성의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경제위기의 시대를 통하여 사회 연대의 복지관이 그 요구에 있어서 보편적 복지관으로 발전 전개될 객관적 계기가 주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연대의 복지 이념이 강한 연대성의 주장으로만 머물며 복지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의 상동성(相同性)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사회연대적 복지론과 시장주의적 복지론의 싸움은 얼마만큼의 복지가 필요한가에 대한 양의 문제를 둘러싼 싸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의료민영화는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
 
다시 이 글의 문제 제기가 시작된 곳, 의료민영화로 돌아가서 논의를 전개해 보자. 의료민영화(Privatization)는 공공서비스인 의료를 재정체계와 서비스 공급체계의 양면에서 영리화(commercialization)하는 것이다. 이때 복지 제도의 민영화 또는 사영화는 소유관계의 측면만이 아니라 민간위탁(contracting out)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아울러 의료의 경우 민영화 보다 재정체계와 공급체계의 영리화가 한국에서의 논란의 핵심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명박 정부는 후보 시에 공약을 통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완화 또는 폐지’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재정체계를 민간의료보험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했으나 국민 여론이 좋지 않아 포기했으며, 2008년 11월의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질병정보를 금융위원회가 열람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역시 비판적 여론으로 포기한 바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6월 한나라당 단독국회를 통해 해당 조항이 포함된 채 처리될 공산도 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영리화 정책은 이 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 의료기관 경영지원사업(MSO)을 활성화하는 법안 등이 그것이다. 주식회사 형태의 영리병원의 본격적 허용도 중단된 것이 아니라 11월까지 준비 중인 상태이다.
 
의료공급체계의 영리화의 문제점은 지금까지의 비영리 법인형태가 영리 법인으로 바뀔 경우, 의료로 번 돈이 의료서비스 질의 향상에 재투자되는 대신에 배당으로 분배되어 흘러 나간다는 것, 즉 다른 돈벌이 수단과 다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재정체계의 경우에는 이 보다 좀 더 심각하고 직접적인 문제점을 낳는다. 즉 의료서비스가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이 아니라 보험계약자라는 시장적 지위에 의해서 공여되게 된다는 문제점이다. 영리화는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과 정반대의 사회를 지향한다. 의료 서비스가 더 이상 시민권과 연관된 공공재가 아니라 시장재, 더욱이 아무런 공공적 제약이 없는 시장재로 바뀌는 것이다.
 
사태가 이와 같이 전개되면, 공공 서비스와 적극적 시민권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게 되며, 시민성은 송두리채 상업화된다. 시민 자격은 시장행위자 자격으로 축소되고 양자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오직 선거와 같은 절차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지점에서 절박하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은 바로 다음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면 과연 1987년의 성과물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권마저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까? 사회권의 보장이 시장의 문제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도 기타 자유권은 여전히 지켜질 수 있다는 관념이 얼마나 순진한가는 이명박 정부가 취하고 있는 '법과 질서' 정책이 얼마만큼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하지 않은가! 경제위기의 시대에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이념의 부정은 단순히 사회적 권리에 대한 부정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저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회적 권리의 부정은 정치적 자유권의 부정을 포함하게 되고, 자유권에 대한 포괄적인 침해를 통해서만 '법과 질서'가 유지된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권리의 부정, 곧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위기와 해법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는 이중적이다. 경제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도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복지제도의 축소, 잔여화, 영리화 현상이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권의 침해 현상도 나타난다.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와 같은 이중적 위기에서 사태 전체를 뒤집을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무엇일까?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이념이 그것일 수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그것은 사회권을 주권의 일환으로 파악함으로써 가장 넓은 의미의 국민주권 개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자유권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시민권의 침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는 경제의 전환, 곧 새로운 경제성장 방식의 수립에 대한 요구와 일맥상통 한다. 복지에 기초한 성장,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성장은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경제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경제운영 방식을 요구한다. 
 
의료민영화, 그것은 단순히 복지축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이다. 대안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성의 강화가 아니다. 대안은 사회적 재편을 통해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병든 자에 대한 휴머니즘, 따뜻한 연대를 넘어서서 복지를 민주주의 원리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한다. 어떠한 사회구성원도 오직 그 역시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자격에만 근거하여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회만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쓴이 : 금민(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 제17대 대통령 후보, 현재 '아카데미아 코뮤닉스'와 '사회대안포럼'의 운영위원장으로 대안이론의 연구, 교육, 홍보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적 공화주의](박종철 출판사, 200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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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2010년 2월 25일 열린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PDF 파일로도 발제문 전문을 첨부했습니다. 

금민 (사회당)


I. 들어가며

2010년 지자체 선거를 맞아 정치세력 간의 연대연합과 통합에 관한 논의가 많아졌다. 일부는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연대연합 논의에 이의를 제기하며 일부는 2010년 선거의 전환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에서는 중요 사안의 연대나 2010년과 그 이후의 일정한 시공간에서의 프로그램 연합이 현실적 목표로 제시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정치세력 간의 통합이 선거논의와 맞물려서 진행된다. 연대와 연합을 우선하는 논의도 있는가 하면 통합을 전제로 하는 연대연합론도 있다. 민주당은 국민참여당에 대하여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에 대하여 조직적 통합을 연대와 연합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한편에서는 1987년 이래로 한국에서 일종의 '유사 정당체제'를 형성해 왔던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입각한 민주대연합이 추진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역시 1987년 이래로 민주 대 반민주의 '기본 정당체제'와 나란히 일종의 '보조 정당체제'로 작동해 왔던 '노동자ㆍ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시대 규정과 중심 과제의 설정을 달리하는 여러 진보정치세력 간의 조직적 통합을 촉구하는 정당성 근거로 등장한다.

이러한 여러 갈래의 논의 중에서 정작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연대나 연합 또는 통합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문제이다. 무엇을 중심으로 연대ㆍ연합하며 어떤 내용으로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 곧 구체적인 시대 규정에 입각한 구체적인 핵심 과제에 대한 해법의 공통성, 즉 연합에 참여하는 여러 정치세력이 동의하는 공통적인 대안의 문제는 연합논의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무조건 통합하고 보자는 주장은 정치적 연대의 현실적 가능성마저 줄인다. 하지만, 선거연합을 위한 합리적 방안들이 논의의 모든 것이 될 때 과연 무엇을 위한 연합인가는 영영 불분명해질 것이다. 아래에서는 연대ㆍ연합ㆍ통합의 문제에서 정치세력 간의 공통적 대안에 관한 논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우선 여러 갈래 논의들의 결절점들을 따져 볼 것이다. 그러한 결절점들은 연대ㆍ연합ㆍ통합을 위한 공통적 대안의 윤곽과 위상을 좀 더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II. 첫 번째 결절점 - 민주대연합, 그런데 어떤 민주주의?

먼저 두 가지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 두 문제는 각기 다른 수준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민주대연합 또는 민주주의 연합정치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다. 두 번째 문제에 있어서 이해방식의 차이는 민주대연합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내용 문제에서 차이를 낳을 것이다.

이 시대는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이고, 이명박 정부에 의해 이 위기는 심화된다. 이와 같은 현실 진단에는 진보정치세력뿐만 아니라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재 진행 중인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에서 정치세력들의 의견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위기의 성격을 달리 규정한다면,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 투쟁의 핵심 과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II-1.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 이명박 정부는 독재 정부인가?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독재 정부인가?

많은 사람이 이명박을 독재자라 말하며 반독재 투쟁과 비슷한 반MB연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명박은 독재자가 아니다. 독재자가 아니라고 말할 때의 의미는 이명박 정부가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며,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권으로서의 인권의 후퇴도 잠정조치적이지 제도 수준에서 관철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1987년의 전환은 불가역적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또한 독재자이다. 그리고 이때 독재자라는 의미는 1987년 민주항쟁을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의미와는 좀 다른 뜻이다. 그것은 지대적 수탈과 조세재정적 수탈의 집행자이고 금융적 수탈의 보호자라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는 광범위한 사영화 및 영리화 조치를 통해 공공의 것을 수탈하는 수탈자라는 뜻에서 독재적이다. 독재 개념이 가진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야기되는 오해를 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부'라고 부르는 대신에 '수탈 정부'라고 불러야 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수탈체제의 관철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서 작동한다. 4대강 문제도 단순히 생태환경파괴의 문제만이 아니며 수탈의 문제이기도 하며, 세종시 문제도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탈의 문제이다. 토건업체에 이윤을 보장하거나 원형지를 헐값에 공급하는 지대적 수탈방식뿐만 아니라 재정상의 문제를 복지재정 축소로 해결하려는 재정적인 수탈방식과 이로 인해 국가나 개발공사 등이 입게 되는 손실을 조세나 공적자금 투입으로 해결하려는 조세적인 수탈방식은 두 문제 모두에서 촘촘히 얽혀 있다. 4대강 문제를 생태환경문제의 시야에서만 대응할 때, 또는 세종시 문제를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로만 한정시킬 때,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수탈을 문제 삼지 않는 협소한 대응은 가치근본주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에 의한 수탈체제의 전면화는 현실적 국익을 위한 이성적 결단으로 둔갑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탈을 통해 시민의 사회적 권리는 축소되고 시민 또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은 보통선거권과 같은 형식적 동등성에 한정되어 버린다.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보편적 조건으로서 모두의 보편적 복지는 파괴된다. 공공의 것에 대한 파괴자라는 점에서 이명박은 독재자이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문제로부터 유리되어 단지 절차의 문제로 형해화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확립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다소 시대착오적이지만 매우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해서 위기의 세계적 수준, 위기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시대란 사회국가와 사회공공성 파괴의 시대이고, 공공적 복지체계가 시장화되고 잔여화되는 시대이며, 그 결과 그 이전에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접근 가능했던 공공서비스가 시장에서 구입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뀐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는 서유럽에서도 90년대에 이미 진행된 일이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부이다. 이명박 정부를 통해 1997년 이후 진행되어 온 민주주의 위기는 심화된다. 하지만, 이미 민주주의 위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곧 1997년 체제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물려받았고, 현재 진행 중인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시대착오적인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통해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1987년 민주주의의 성과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1987년 민주주의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에서도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으로만 도입된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의 부재가 낳은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 예산제도의 문제, 기소 임의주의의 문제, 헌법재판제도의 문제 등 1987년 민주주의는 수많은 문제에서 미완성적 성격을 가진다. 이명박 정부는 이와 같은 미완성적 성격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3,000쪽 수사 기록 미공개의 문제가 용산참사의 핵심이 아니고 서민 배제의 재개발 정책의 문제, 곧 지대적 수탈체제의 문제가 핵심이듯이 인권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신자유주의적 수탈체제의 전면화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또한, 이와 같은 수단의 사용은 1987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그 미완성적 성격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최근에 일어난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 수색 사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태의 핵심에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악법이 놓여 있다. 이는 1987년 민주주의의 미완성적 성격과 관련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분쇄하려는 정치적 의도와도 관련된다. 근본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은 '독재 정권'에 의한 1987년 이전으로의 퇴행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일반적인 증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운동의 과제가 단순히 이명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 없음을 뜻한다. 1987년 전환으로 성취한 모든 성과가 일정하게 후퇴하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를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지시키고 평등 선거권을 박탈하는 반민주주의라고 규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의 해법도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는 '민주회복'일 수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방향은 1987년 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극복의 문제와 불가분의 연관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현재의 시기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반민주주의도 아닌 시대, 곧 신자유주의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일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관철이며 이명박 정부야말로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필연적인 정치적 귀결이다. 단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달리 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인 사영화, 부자 감세, 복지 삭감을 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착시현상이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착시현상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현재 진행 중인 민주주의의 위기의 성격을 이명박 정부에 의한 1987년 민주주의 후퇴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반MB연대의 목표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우회한다면, 그러한 반MB연대는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연합일 수 없다. 오직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연합만이 진정한 민주대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신자유주의로 초래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극복의 대안은 무엇일까?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 서민중심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이고, 곧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다. 단언하여, 복지야말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복지의 개념일 것이다. 그것은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평등 원리 위에서 작동하는 복지, 즉 모두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복지이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겠다.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현재 논의되는 연합정치의 주된 문제인 민주대연합이 가지는 유사 정당체제적 측면인 것 같다.

II-2. 유사 정당체제로서의 민주대연합의 장기 지연과 '민주주의 대안연대'의 실종

'반MB연대'야말로 적어도 수의 민주주의에서는 가장 넓은 범위의 대중결집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가능성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반MB연대'는 잠재적 최대를 포괄하지만, 적극적 최대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이는 '부정적으로 구성된 연대'(negatively framed solidarity)의 한계 때문이다. 적극적 최대, 곧 현실적 최대를 구성할 수 있는 연대는 '민주주의 대안연대'이고, 이는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의 성격에 대한 공통된 인식, 위기의 극복 방식과 핵심과제 선정에 대한 합의, 위기 극복 이후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이 시대가 요청하는 '민주주의 대안연대'는 신자유주의로 초래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사회적 대안을 분명히 내세우는 정치연대, 곧 '긍정적으로 구성된 연대'(positively framed solidarity)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 연대'는 신자유주의 극복의 대안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동일한 문제를 반대 방향에서 살펴보자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운동은 언제나 민주주의 운동이다. 그러한 운동이 이를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그것은 민주주의 운동의 새로운 내용이며,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에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운동은 없다.

위기의 극복과 전환을 위해 요청되는 것은 긍정적 대안연대이다. 부정적 저항연대는 2008년의 촛불과 같은 유형의 저항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역사에서 한번 일어난 사례는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지 않는다. 1997년 이후 소위 민주화세력의 집권이 만들어낸 착시 현상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문제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문제로,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문제로 한정되었다. 이와 같은 분리는 2008년까지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은 '반(反)신자유주의 저항연대'의 구성을 시도했을 뿐,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연대'를 구성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10년간의 '민주화세력' 집권기의 착시 현상은 사라졌지만, 그 기간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대안연대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답보성은 후과를 남기고 있다. 연합정치 논의는 반MB냐 반신자유주의냐의 문제로, 즉 저항연대의 방향에 관한 문제로 앙상하게 축소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시기 동안의 연합정치 논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결합하여 사고하지 못하는 한계 못지않게 저항연대에서 대안연대로의 발전의 문제도 과제로서 짊어지고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환의 문제는 가치연합 이상의 대안연합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반MB대안연대의 총괄 대안을 '빈 기표'로 이해하는 태도는 주어진 과제에 비추어 매우 부적절하다. 대안은 '빈 기표'가 아니며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이어야 한다. 수렴을 거쳐 합의해 가야 할 사항은 이와 같은 전체적인 방향이 아니고 그저 극복의 구체적 수단에 관한 것일 뿐이다. 대안 자체가 '빈 기표'라면 그것을 우리는 대안연대라 부를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보면, 지방선거가 100일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민주주의 대안연대'를 구성하는 일은 난망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6월의 실제적인 개표결과와 무관하게 내용상으로는 이미 진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정당들의 태도를 보자면,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부 심판을 위한 민주대연합을 당면 과제로 보는 듯하며 일종의 전술적 연합으로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5당의 선거연합을 추진한다. 물론 당의 통합을 전제로 하는 진보대연합을 또 다른 축으로 설정한다. 이는 이중성이라기보다 민주노동당의 객관적 처지의 반영이다. 이를 이중성으로 비난하는 것은 객관적 처지를 무시하는 비난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구사하는 연합정치의 두 축은 분명히 민주노동당 운동의 객관적 한계를 각각 고유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진보대연합의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살펴볼 것이다. 진보신당 역시 5+4테이블에 참여한다. 진보신당은 지방선거연합을 단순한 ‘반MB연대’가 아닌 ‘반MB대안(가치)연대’로 이해하며 ‘진보대연합’은 이를 위한 필수요건으로 파악한다. 연합정치의 두 축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진보신당도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이지만 '반MB대안(가치)연대'를 형성하겠다는 목표는 '민주주의 대안연대'에 한 걸음 다가선 기획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에서 시간은 배제할 수 없는 요소이고, 이명박 정부 2년간 이루지 못한 일을 급박한 선거연합의 틀 안에서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명분을 위한 수사처럼 들린다. 게다가 구체적인 대안연대인지, 막연한 가치연대인지도 분명치 않다. 물론 두 번째 후자의 구축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가 요청하는 연대의 상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막연한 가치연대에 입각한 감성정치에 대중이 공명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 수익이 진보신당이나 진보정치세력에 돌아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아마도 가치연대는 국민참여당에 최대 수익을 보장할 것이다. 어쩌면 선거연합 논의 자체가 후보구도의 특성상 민주당 대 국민참여당+α의 구도로 짜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연합정치의 두 축을 설정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대안연대는 시대적 요청이다. 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 것인가를 우회하고, 또는 이를 빈 기표로 남기고서 그와 같은 대안연대가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점과 지방선거 100일 전이라는 시간적 상황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각으로 생긴 비용은 어차피 지불할 수밖에 없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늦었다 아니다가 아니라 어째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사회대안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채 민주대연합의 틀이 작동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웃을 필요도 없고, 울 필요도 없지만, 이해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놓여 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치지형은 1987년 체제에서 기본 정당체제와 유사한 작용을 했고, 지금도 다른 지형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위기 속에 장기 지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로 민주당은 기반을 잃었지만, 이명박 집권으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상징 지형이자 20년 이상의 역사블록으로 복원되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장기 지연이 가능할까? 그 답 역시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하며 이를 통하여 80년대적 과제인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대표성을 지금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은 19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바로 그 순간부터 당대성(當代性)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을 모두 민주노동당 운동의 한계에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구체적인 사회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인 좌파 대안정당의 미형성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여전히 기본정당체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회대안의 부재 속에 진행되는 민주대연합 논의가 위력을 떨치는 이유는 진보정치세력 전체의 미숙성과 한계 때문이다.

III. 두 번째 결절점: 진보대연합, 그런데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대연합을 둘러싼 논의는 통합론과 연대연합론으로 갈라진다. 민주노동당은 통합을 전제로 연대연합을 제의하며, 진보신당은 연대의 심화를 통해 통합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당의 입장은 진보의 다양성의 인정을 연대연합의 출발점으로 보는 점에서 진보신당과 비슷하다. 이와 같은 차이는 단순히 경로의 문제만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의 당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의미한다. 사회당의 관점에서 진보의 혁신과 재구성을 통한 통합 및 정치연합 구성을 근거전략으로 삼고, 현 상태에서의 연대연합은 혁신과 재구성으로 나아가는 경로로서 의미를 가진다. 연합정치에 대한 사회당의 태도와 비슷한 관점은 진보신당의 태도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진보대통합론은 민주노총의 추진하는 통합론과 궤를 같이한다. 노동자 민중의 정당은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다양성은 단일한 정당 안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결국은 분당이라는 결과를 낳은 패권주의는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이명박 정부를 통해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정당체제로서 장기 지연하듯이 노동자 민중의 독자정치세력화도 기본적 정당체제에 병렬적인 보조적 정당체제로서 장기 지연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진보단일정당론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와 같은 지연현상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발전의 지연 현상이지 과거를 복원할 힘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의 발전 방향은 80년대의 노동자 민중의 독자정치세력화를 넘어서는 의제를 설정하고 현대의 신자유주의 수탈경제를 극복할 사회대안을 중심으로 연대연합하고 다양성에 기초하여 발전적인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양한 것으로부터 하나됨"(E Pluribus Unum)은 "하나에 앞선 다양한 것"(plures ante Unum)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다양한 것이 있어서 비로소 하나도 있다." 

IV. 세 번째 결절점: 진보의 재구성, 그런데 그러한 재구성을 위한 공통의 대안은?

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ㆍ연합ㆍ통합에 진보신당이나 사노준, 그리고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현재 조성된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동당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어떤 대안이냐는 문제. 사노준은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서 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의 독자정치세력화로 목표를 재설정한 듯하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아직 빈 기표이지만,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내용 이전에 지향의 문제일 것이다. 후자의 문제라면 사회당은 이미 2002년에 사회주의 선언을 한 바 있고 전자의 문제라면 빈 기표를 내걸고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는 정치를 구성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진보신당은 ‘복지동맹’, ‘생태복지연합’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대안의 형태로 제시되지 않았다. 사회당은 민주주의 위기와 세계경제 위기의 시대에 신자유주의 수탈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아울러 지방선거 승리와 ‘진보재구성’을 위한 ‘대안연합’으로 ‘기본소득연합’을 희망한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의 수준에서도 6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20만 원 정도의 조건 없는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진보정치세력의 공통강령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상급식이 그러했듯이 동등한 자격에 입각한 공통적인 급여이고, 바로 그와 같은 단순성은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회당은 금융적, 지대적, 조세재정적 수탈을 극복하는 체계적인 대안이 필요하며 투기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와 토지세로 재원을 조성하는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이와 같은 대안의 중요한 일부라고 본다. 하지만, 사회당의 입장과 주장은 이렇다는 것이다. 사회당은 다른 진보정치세력이 제출하는 구체적인 대안과 함께 우리의 대안을 함께 논의하고 합의해갈 용의가 있다. 이를 통해 진보정치의 좌파 대안정치로의 재탄생에 일조할 의지가 있다. 연대ㆍ연합ㆍ통합은 오직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논의해야만 미래 지향적일 수 있다.

"정치는 과거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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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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