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1. woman 2012/02/23 01:29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있는 정보는 우수하고 매우 좋습니다.

  2. 지지자 2011/12/05 11:45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원금을 입금하고 구지 전화해서 알려야되는건 요즘 세대들한테는 별로안좋을것 같습니다. 후원금입금후 문자로남기라던가 이메일이라던가 구지전화안할방법을 마련해주셔야 연말정산시기에 후원금에 도움이 되지않을까싶습니다

  3. TISTORY 2011/10/27 17:30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먼저, 티스토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차 도메인(블로그주소)을 설정하실 때 입력하셨던 DNS 호스트 IP가 11월 4일부터 이용에 제한이 되게 되어 방명록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한이 되기 전, 이용 가능한 DNS 호스트 IP로 반드시 변경해주시기 바라며, 만약 변경하지 않을 시에는 추후 사용하고 계신 2차 도메인으로 블로그에 접속이 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21.254.206.21 / 121.254.192.211 / 211.172.252.15 / 211.172.252.123 IP 사용을 종료하는 것이니 양해 부탁 드리며, 자세한 사항은 아래 안내해드린 공지사항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 2차 도메인 블로그의 DNS 호스트 IP 변경 안내 공지(http://notice.tistory.com/1686)

    감사합니다.

  4. 금민팬 2011/04/10 22:48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민파이팅

  5. 책 로스트 이휘소 2010/12/08 14:54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를 완성하고 사퇴하려고 했습니다.

    책 로스트 이휘소에서 박 대통령은 핵무기가 완성되고 나면 1980년이후에 핵무기를 공개하고 나서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잘한 것은 빼고 국민에게 잘못했던 내용의 사퇴성명서를 쓰라고 당시 국회의원에게 1979년 1월에 말했는데 증인이 2명이 더 있었다고 국회의원이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이 사퇴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죠.

  6. 책 로스트 이휘소(ㅜㅜ) 2010/11/20 11:31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휘소 박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계(이휘소의 한국인 제자였던 강주상이 옳은 점이 있음,책 이휘소평전)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학자 이휘소(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서(편지)를 이휘소에게 보냈고 1977년에 일본에서 어머니에게 친서를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말했으나 분실했고 복사본은 이휘소가 갖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벤자민 리는 경기고 2학년 때 대입검정을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입학.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졸업, 1958년 피츠버그대학 석사,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이학박사를 받고, 28세로 이 대학 정교수가 된다. 이후 뉴욕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시카고대학 이론물리학교수 겸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 연구부장 등을 맡는다.

    그는 특히 1960년대 SU(6) 군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1970년대 쿼크와 참 이론(참 쿼크가 이론적으로 존재하며 참(c) 쿼크의 질량을 계산)으로 명성을 높였으며, 게이지장 이론을 다루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여를 한다. 1972년 발표된 게이지장 이론은 그의 가장 훌륭한 공로로 1979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살람은 이를 거의 완벽한 이론이라고 극찬한다.

    1974년 9월(약 한 달동안) 이휘소는 미 국무부 요청으로 서울대에 AID교육차관 타당성조사차 20년 만에 귀국한다. 이때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초청, 국가안보위협을 상기시키며 그의 귀국을 요청한다. 핵무기개발에 참여하고 싶지 않던 그는 대통령의 제의를 사양하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국의 신세에 고민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개발 집념 1977년 3월 이휘소는 다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귀국을 간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주한미군 1만7천여명이 철수를 시작했다는 급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이휘소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기에 담는다.
    “조국이 공산화되거나 전쟁소용돌이 속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핵개발원리를 제공한다면,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죽는다! 내가 죽어 조국을 살릴 수 있다.…하늘이여! 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

    마침내 이휘소는 친분있는 외과의사를 찾아가 미사일·핵무기 제조원리를 따로 정리·축소해 만든 기밀문서를 내민다. 그의 다리 살 속에 소독된 종이가 넣어졌다. 5월 20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도쿄를 방문, 그날밤 비밀리에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에게 이 문서를 전달한다.

    1977년 6월16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가족과 함께 자가용으로 집을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트럭 몇 대가 그의 차에 따라붙었다. 일리노이주에 가까운 케와네시 근처(고속도로)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유조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이휘소와 가족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차 앞머리가 처참히 부서지고 가족 모두 정신을 잃는다. 가족들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이휘소는 사망하고 만다.

    이휘소가 한국에게 미사일 및 핵 제조원리를 넘겨주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후, 미국의 원자력정책은 급전환한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정부에 ‘인권탄압중지, 긴급조치 즉각해제, 독자적 핵개발추진 즉시중지’ 등을 압박한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자기들은 이미 다 만들어놓고 남의 나라에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패권주의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라고 반발한다. 이런 한미대립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사일·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1978년 8월 26일 한 군사기지에서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이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사정거리 150km, 유효사거리 350km로 북한 전역은 물론 소련과 중국의 일부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 미사일 보유국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핵무기개발은 시간문제였다. 미국은 보다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숨까지 내놓은 이휘소를 생각하면 박 대통령은 더더욱 멈출 수 없었다......

    박정희정부 핵무기개발 추진 결정적 자료 드러나(주간조선 2010년 1월18일(2089호)에서)
    2010년 1월 오원철 경제수석이 1972년 9월 8일 작성한 보고서중 일부가 국가기록원 정보공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2급비밀문서로 분류된 이 문서들에는 ‘핵무기의 종류 및 우리 개발방향’ ‘우라늄탄두와 플루토늄탄두에 대한 장단점 비교’ 등 개괄내용과 함께 ‘우리나라 기술수준에 맞춰 플루토늄탄을 개발한다’는 잠정결론이 담겨져 있다. 이 문서들은 박정희정부 당시 핵무기개발이 추진됐다는 결정적 근거자료이다.

    그러나 오원철 전 수석은 당시 연구진들이 작성한 핵무기 기술개발 관련 핵심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현재 국가기록원에도 남아있지 않아 실종상태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청와대의 대통령 개인금고에 보관중이던 핵무기 관련 보안문서 봉투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담당자였던 오원철 전 수석은 이 문서를 봉인해 최규하 대통령에게 넘겼고, 이것은 나중에 전두환 신군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몇 년전에 개정판을 내고 최근에 2010년판(개정판)을 냈는데 소설(작가의 말이 있음)이 맞죠. 참고로 1026이라는 책이 최근에 출판되었죠.
    이휘소 박사는 1978년에 귀국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우리과학 100년이라는 책과 이휘소 상,중,하(2002년)등등에 나왔죠.(이휘소 하권에 이휘소의 어머니와 저자가 대화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편지 얘기) 1977년 6월당시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등에 이휘소 박사의 사망 기사와 조선일보의 1977년 7월5일자에 후속기사(교통사고 경위가 명확하게 조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질의했으나 모른다고 답변)가 나왔죠.

    고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에서도 최형섭 박사가 이휘소 박사로부터 우리나라로 귀국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정리할 것(대학교수와 페르미연구소의 이론물리 연구부장을?)이 있어서 아직은 귀국할 때가 아니고 기다려 달라고 말했죠.

  7. 이근삼 2010/09/04 18:14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예술배달부 이근삼입니다. 가끔 예술배달부 인터뷰를 합니다. 서면이 대면보다 훨씬 좋습니다. 집중을 할 수가 있지요. 저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면
    http://www.facebook.com/artdelivery

    우문현답, 어리석은 질문(質問)에 현명(賢明)한 대답(對答)을 해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 연신내 근처 만포면옥서 트윗번개로 독대하기 약 한시간 삼십오분 전입니다

    냉면값은 누가내야 어색하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는 알고 묻는 경우가 흔한 명사들끼리의 인터뷰일텐데요. 금민선생이 늘 챙기시는 서민들은 몰라도 많이 모르고 관심도 없지요. 그런 수준에서 나온 질문들입니다.

    질문은 장황하거나 때론 횡설수설하더라도 답변은 가급적 명료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플라톤이 그랬지요? 진리는 명료하다. 물론 불타오르면 넘으셔도 괜찮습니다.

    1. 이름이 특별합니다. 금민. 금씨의 대표적 조상이 누굽니까? 이름 민은 누가 지어주었고 그 뜻이 뮙니까?

    2. 시시하디 시시한 질문들입니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부모님은요? 자식은 몇입니까? 형제는요. 자라는 곳은 은평구 무슨 동이라고 기억합니다.

    3. 몇 학번인가요? 태생은 62년생인가로 봤는데요. 대학에 들어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졌습니까?

    4. 단도직입적 질문입니다. 당신은 사회주의자입니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자는 빨갱이로 통합니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며 폭력과 전복을 추구한다고 인식되지요. 그들 또한 독재를 지향한다고 귀에 인이 박혀있습니다. 북한과 접선한 적이 있습니까?

    5. 북한의 김일성 또는 북한 사회주의자들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주목하고 있긴 한가요? 당신이 생각하는 북한체제를 정의내려주십시오.

    6. 대선후보로 나섰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고 사회당원인 선배가 이야기했고 이번 은평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습니다. 득표로 봐선 모두 참담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물론 득표가 상태를 결정짓는 잣대가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박노자 선생처럼 100명에게 음악을 가르친다고 모두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요. 중요한 것은 음악을 즐길 기회를 말하는 거겠지요. 씨앗을 뿌린다는 것쯤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7. 이은 말씀입니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불만족했다면 스스로에게 그렇습니까? 유권자에게 그렇습니까? 아니면 제도에게 그렇습니까? 스포츠를 비유해서 그렇지만 우승은 최고 덕목입니다. 꼴찌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패배자들에 속한다고 배웠고 죽을 때까지 자식에겐 물려줄 수 없을 겁니다. 기분이 우울하다면 분명 패배자라고 의식하는 겁니다.

    8. 사회당하면 사람들의 굳건한 의식이 왠 듣보잡 또는 여전히 한줌도 안되는 좀 특이한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난 사회당 사람이요 하는 순간 재들은 또 뭐냐? 젊은 게 좋긴 한가봐. 너희들 세상을 좀 알고 현실정치를 알면 다를 거다. 나이 좀 먹고 철 좀 더 들어라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이에 어디쯤 있는건가요? 그들을 평가한다면.

    9. 등산객, 가게, 빵집, 밥집, 휴대폰 대리점, 미용실, 학원, 수위실, 학교, 버스, 지하철, 편의점, 어린이집, 공원이 일상입니다. 이런 일상에 금민의 계획은 어떻게 실시간으로 스며들고 있나요? 늘 모이는 수많은 동호회, 회식, 운동모임, 작고 큰 행사들, 공연, 강연들에 대해서도요.

    10. 사회당 홈페이지를 들여다 봤고 조직원들의 프로필 사진들을 봤습니다. 왠지 남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련되고 고급한 느낌이 그건 왜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문제라면 그 의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유아원, 유치원 때부터 기른 관습일텐데 말이지요. 우리는 신세계 백화점에 들어 선 순간 뭔가 고급스럽고 세련되고 값어치로 넘치며 심지어 주눅이 듭니다. 반면 다 쓰러져가는 철거촌에 그나마 영업하는 음식점은 멀리하고 싶지요. 벌레 한 마리라도 집안에 들어와 날아다니면 아주 기겁을 하는 식이지요. 그들도 생명이고 나도 생명인데 말이죠.

    11. 은평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서 선거운동기간에는 멋졌습니다. 다른 후보들보다 포스터, 이미지, 디자인 모두 멋졌고 그 옷을 한 벌 사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여전히 상품구매의 의식으로 말이지요. 색깔도 괜찮았고 주장도 그런 거 한 벌 정도 적당한 가격이면 가볍게 입을 만한 티셔츠랄까요. 분명 다른 후보들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가령 이재오 후보는 조금 비싸지만 꼭 한 번 정도는 반드시 사야하는 정장이라면 연대한 장상 후보는 왠지 기성복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싸지도 않고 멋져보이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번 그 가격에 사입어야 하는 경우고 금민은 나름 스타일리쉬했지요. 그걸 많이 안 산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사회 아닙니까? 사고 팔고... 별로지만 한번 힛트상품이 될 수 있다면 대박치겠습니다.

    12. 뼈쏙 깊숙이 스며 들어있는 사람들에 대해 판매할 성공 상품을 개발하고 계신지요. 다시 말해 힛트상품을 여쭙습니다. 이 사회는 자본주의사회라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미 호불호 좋고 싫은 기준이 따로 있으니 금민이 좋다고 성공시키려면 이 사회의 의식에 위장전술이 어쩔 수 없게 필요할 텐데요.

    13. 옳은 것과 옳은 것을 설득하고 깨닿게 하는 방법은 그 길이 이어져 있어도 겉으로는 다르다고 봅니다. 저 골짜기 깊숙한 샘물이 맑고 깨끗하다고 다들 알고 있지만 그걸 차로 가서 큰 물통에 떠다 먹는 사람든 없잖아요. 정수기나 사먹는 물이 대세이지요. 그 물 마져도 공장에서 재생물통에 받으니 그 물통을 의심하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그냥 믿을 수밖에요. 그러면서 수없이 웰빙 농심 새우깡에 배반을 당하지만 여전히 새우깡은 팔리고 있습니다. 금민이나 사회당이 추구하는 것들이 아무리 옳더라도 사람들은 그걸 옳다고 생각조차도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14. 은평구민들이 정치의식이 대단히 높다고 들었습니다. 이재오는 당선되고 바로 무슨 장관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여전히 승승장구합니다. 금민은 지금 무얼하고 있습니까?

    15. 아까는 사는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팔아주셔야지요. 제 형이 도시농부로 일합니다. 소박한 포부는 착한 먹거리 가게를 여는 겁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열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금민이나 사회당은 어떤 지원을 해주시겠습니까?

    16. 제가 잘 몰라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번 선거 후 금민을 찍은 혹은 금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무언가를 세우고 선거가 발판이 되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번 선거에 들인 돈, 시간, 노력, 땀과 눈물이 깃들었을텐데 득표 말고 어떤 한 걸음, 한 계단을 더 많이 오르고 계십니까? 잘 나가고 계십니까?

    17. 사회당에서는 어떤 위치에 있으십니까? 직접 만나뵙지 못했지만 목소리도 굉장히 어눌하시던데요.

    18.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EBS 다큐멘터리 한국독립운동사를 보셨습니까? 시청소감은? 봉은사 강연을 들으셨습니까? 소감은?

    19. 고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축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채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축산업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의 살이나 고통을 매일마다 씹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 취미가 뭡니까? 잘하는 운동은 뭡니까? 수영이나 자전거는 어떤가요? 달리기는요.

    21.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22.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흔하디 흔한 질문이지만서도요.

    23. 문성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성근을 만나실 생각은 없나요? 만날 날짜를 잡았나요? 문성근이 화두이라서요. 문성근의 거리 캠패인에 금민만의 거리 캠패인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24.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 친한 정치인, 연예인, 사상가, 선후배는 누구입니까?

    25. 사무실은 얻었습니까? 그 사무실에서는 뭘 하시려고 합니까?

    26. 은평 뉴타운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적어도 20년은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길거리를 지나쳐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 겁니다. 자그만치 20년이니까. 그들과 재밌게 놀만한 아이템을 말해주세요. 모두 처음이고 새로운 무언가에 설레고 있습니다. 딱 금민이 성공시켜볼만한 금싸라기 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27. 아파트에 대한 생각을 여쭙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희망을 말씀해주세요. 인사를 서로 하거나 아이들은 친구인데 부모들은 덜하거나 은평뉴타운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들 모임이 분수광장에서 있었지요. 다들 기본이 애들 둘 이상입니다. 다들 30,40대이구요.

    28.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게으르신 것 같은데 왜 그럽니까? 요즘에는 이거 안하면 물 안마시고 사는 사람과도 같은 정도인데요.

    29. 박노자외 김수행 등등 많은 선각자들이 금민을 지지했습니다. 박노자의 글은 많은 깨달음을 줬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용기를 내서 옳은 것을 지지해라. 절대절명의 득표와 당선보다 먼 이야기지만 그보다 더 가치있는 행동을 이야기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바라는 진보대연합이나 문성근의 100만 민란에 대해 단순히 입장을 말하지 말고 그 갈망이나 바로 당장 급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해보시지요.

    30. 삼성과 노무현정권에 대한 짧지 않은 글을 읽었습니다. 사실인가요?

    31. 가게가 어떤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전단나눠주고 인증샷을 찍고 잠깐 대화하는 것보다 소비의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교육의 공간, 소비의 공간을 일치하면 어떨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노동에 지쳐 즐기고 소비하는 공간을 원하니 사실 소비의 공간이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보세요.

    밤이 세도록 마시고 먹는 공간은 어쩔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건 내 아이 교육에 관한 겁니다. 학원이 그 걸 장악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놀이터, 태권도장, 수영장 또는 피아노학원 등등... 그 안에 금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32. 친하게 수다떠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친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행동강령을 제시해주시지요.

    33. 은평뉴타운으로 돌아갑시다요. 여긴 원주민을 내몰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새로운 사람들이 이주해있습니다. 저도 삼양동 거북바위 산동네 시절이 아주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그러고 미아동 뉴타운이 생겼지요. 삼양동이라는 이름이 왠지 후져보이니 그 이름도 없앨려고 합니다. 은평뉴타운이 자랑스럽지만은 않지요. 사실 은평구 구파발역에서 나와 살았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싶습니다. 제 기억엔 92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이 곳 다음 지축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지축역 부근은 아직 철거촌 상태라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 놈의 구파발역에 나온 부근 십년 전 상황은 아무도 모르고 기억도 못됩니다. 그걸 적어도 알고 있는것이 지금 여기 사는 이들의 기본적인 자식에 대한 양심인 것 같아요.

    34. 은평을 선거비가 얼마들었습니까? 돈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세요.

    이상 답할 만하지 않으면 그냥 패스하거나 단답으로 처리하셔도 감점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거지요. 질문이 길고 많았습니다. 저도 이거 만드는데 시간이 꽤 걸리네요. 우문현답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8. 2010/08/23 23:01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지지자2 2010/07/31 15:14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제 시작이시겠죠. 선거운동 재밌게 봤고, 의미있는 일을 하시는 모습에 미래 대안에 걸맞게 움직이시는 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힘내시고, 화이팅입니다.

  10. 지지자 2010/07/29 20:06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힘내시고, 앞으로의 여정 또한 더욱 기대해 보겠습니다.
    멋있는 선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진보정치가 우리 사회, 서민들의 희망이자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 절박합니다.
    금민 선배님께 무거운 짊이지만 당차게 짊어져 나가 주시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