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자유주의는 위기 속에서도 지속되면서 민중의 삶을 침식하고 사회를 해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진보정치세력은 혁신하고 재정렬해야 한다. 혁신과 재정렬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제를 극복하고 사회구성원 모두의 연대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현재 이러한 노력은 진보대통합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은 혁신을 전제로 하는 통합, 통합 속의 혁신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의 주요한 장이라 할 수 있는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진보정치가 혁신을 통해 거듭나기 위한 소통보다 기존 세력의 통합과 재편에만 관심이 있으며, 이를 위해 혁신 의제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당은 진보정치의 미래를 가로막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 다가오는 2012년 정세 속에서 혁신진보세력이 한국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시급한 과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아래와 같은 가치, 원칙, 당면 과제, 전략과 경로를 제출한다.

1. 진보의 위기와 혁신에 관하여

진보의 위기는 시대적 과제, 새로운 주체, 새로운 의제의 등장 사이에서 불일치가 생겨나고 이와 같은 간극이 장기간 지속될 때 발생한다. 이 위기가 극복될 때 역사적 순환은 비로소 한 매듭이 지어진다.

우 리가 지금 겪고 있는 진보의 위기는 20세기 사회주의, 그리고 그 운동의 기반이었던 조직 노동자 운동과 민족해방투쟁이 적실성을 상실해갔음에도, 그리고 신자유주의 하에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고 새로운 의제가 제출되었음에도 기존 진보운동이 낡은 관습과 사유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혁신이란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다.

이때 혁신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기존 진보정치 세력의 자기 혁신 및 상호 대화와 상호 혁신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통합은 이와 같은 혁신의 맥락에서 전체 과정의 결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진보정치 세력의 통합은 혁신을 전제로 한, 혁신 속의 통합이어야 하며, 그 방식은 기존 진보정당의 확대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이어야 한다.

2. 연석회의에 관하여

연 석회의는 그 원리 상 참가하는 모든 주체가 대등하게 혁신의 의제와 통합의 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이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참가하는 주체들의 자기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진행 과정을 보면 기존의 영향력과 힘의 논리가 압도하고 이 와중에 혁신의제는 간과되고, 주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만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연석회의가 혁신의 장이 되어야 하며, 이를 기초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나아갈 때 비로소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연석회의에서 혁신을 가로막는 힘과 싸우는 한편, 널리 퍼져 있는 혁신 세력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진보정당을 정치적, 이론적, 조직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러할 때 연석회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혁신 의제를 공적으로 논의하는 장이며,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치의 기존 주류가 혁신에 과연 동의하는지, 동의한다면 어느 정도로 동의하는지를 확인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합류할 것인지가 사회적으로 확인되고, 역사적 행위로서 명확해져야 한다.

3.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입장

오 늘날 진보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대안을 통한 신자유주의 극복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태이자 정책,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우리 위기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지향과 정책을 시행했고, 현재도 마찬가지인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진보정치 세력이 아니고, 진보 혁신과 통합 과정의 주체로서의 자격이 없다. 민주당을 제외하고 국민참여당과만 함께 하는 통합도 노동자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파멸, 진보정치의 소멸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현실 정치를 이유로 하여 이 두 세력을 통합 과정에 끌어들이려는 시도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다.

4. 이른바 민주연립정부에 대하여

오 늘날 진보정치의 과제는 혁신된 내용을 지닌 진보정치 세력을 정초하는 일이다. 따라서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신자유주의 정치 세력과 함께 하는 연립 정부는 지금 진보정치가 추구할 방향이 아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도 민주연립정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비판적 지지’는 사실상 신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하는 연립정부는 신자유주의 연립정부이며 진보정치의 소멸일 뿐, 노동자 민중을 주체로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진정한 민주연립정부일 수 없다.

5. 북한의 선군세습독재 체제에 대한 입장

새 로운 진보정당은 혁신을 통해 거듭 태어난 진보의 가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일반 및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북한의 선군세습독재를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특히 ‘분단 체제’가 한국의 정치 지형과 진보 정치 운동의 조건을 형성하기에 북한의 현 체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수립 없이는 앞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이 국민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 세력으로 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의 선군세습독재 체제는 당면한 진보 의제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 수립에 중요한 걸림돌이라는 점에서도 진보정치는 이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에 따른 신냉전의 중심지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은 신냉전기에 진행되고 있으며 신냉전의 조건들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체제 안정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신냉전의 장기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격렬한 갈등의 장으로 몰아가는 반평화적 정책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민주주의 일반의 보편적 차원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의 관점에서도 북한의 선군세습독재에 반대해야 한다.

선군세습독재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북한 국가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협력자이자 장차 평화적 통일의 대등한 당사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6. 이른바 ‘패권주의’에 관하여

패 권주의는 정당 질서 내에서 일부 정파가 소통과 토론을 가로막고 다수결의 원리를 악용하여 주로 자기 세력의 확대나 영향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론화된 것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이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거나 추구되고 있다. 이런 패권주의는 당연한 말이지만 진보의 혁신을 가로막는 주요한 걸림돌이며,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혁파되어야 할 구습이다.

7. 새로운 진보정당에 관하여

혁신 속의 통합을 통해 건설될 새로운 진보정당은 당면 과제로서 세 개의 정치적 과제, 두 개의 조직적 과제, 한 개의 사회적 과제를 추구해야 한다.

우 선 세 개의 과제 가운데 첫 번째는 금융적, 지대적, 재정적 수탈 체제를 없앰으로써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 경제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회구성원의 연대와 공통성에 기초한 사회적 공화국, 자연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반토건 생태 사회, 핵 위험이 해소된 탈핵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과제로 한다. 세 번째로, 새로운 진보정당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적극적인 평화주의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신냉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명확히 반대할 뿐만 아니라 신냉전 하에서 각각의 체제 이익을 도모하는 남한과 북한의 반평화적 정책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반대하여야 한다.

새 로운 진보정당의 두 개의 조직적 과제 가운데 하나는 정당의 운영 원리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대표단을 포함한 중앙당부터 지역 당원까지 이어지는 동심원적 구조를 가짐으로써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분권적이며 정치적으로 활성화된 정당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새로운 진보정당은 평등한 민주주의적 감수성과 자발적 역동성의 정치문화를 수립함으로써 의사소통과 행동방식에서 이전 정당과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당면한 사회적 과제는 불안정 노동자 및 청년 세대의 조직화와 정치세력화이다. 이와 같은 당면 과제들은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전략 과제이다.

세 개의 정치적 과제는 기획의 재구성, 두 개의 조직적 과제는 조직의 재구성, 한 개의 사회적 과제는 주체의 재구성과 관련된다.

8.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경제 강령

새 로운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경제 강령을 대중정치 의제로 제시해야 한다. 그와 같은 사회경제강령은 첫째, 조세재정혁명, 둘째, 금융사회화, 셋째 노동사회 재구성에 관한 중장기 전망과 단기적 과제로 구성되어야 한다.

증세와 관련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의 준별점은 좋은 증세와 나쁜 증세의 구별에 근거해야 한다. 부동산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한 고율의 토지보유세, 금융수탈로 인한 불로소득에 대한 고율 과세는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목표에 부합되는 좋은 증세이다. 유럽 수준의 환경세를 도입하는 것도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좋은 증세이다. 반면에 간접세와 근로소득세의 대폭 인상은 중산층에 부담을 전가하는 나쁜 과세이다. 누진적 과세는 정률 과세에 비교할 때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를 시정하는 좋은 과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추진할 조세혁명은 신자유주의 극복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단지 증세만 중요한 과제가 아니라 증세방식도 그러한 목표에 부합되어야 할 것이다.

조세혁명을 통해 확충된 재정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가도 마찬가지의 원리에 입각해야 한다. 토건재정과 국방재정을 축소하고 복지재정을 확대해야 한다.

확 대된 재정은 의료, 주거, 교육, 보육, 노후 영역에서의 완벽한 기본복지와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종류의 활동에 대한 비시장적인 인정과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은 만성실업을 야기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정책일 뿐만 아니라 노동력 상품의 부분적인 탈상품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주 요은행의 국유화와 사회적 통제의 확립, 추가적인 사영화 방지, 금융배제의 해소 등은 진보신당, 사회당, 민주노동당의 현 강령과 정강정책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정책방향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추진이 이와 같은 금융사회화 강령의 후퇴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정반대로 역외 파생금융상품의 금지, 파생금융상품 규제, 증권 대량보유에 대한 등록제, 신용카드업의 국영화 등 금융시장에 대한 추가적인 규제와 통제 정책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정강정책이 되어야 한다.

새 로운 진보정당은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의 양산과 대량 실업이 자연사적 필연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조건의 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노동사회 재구성의 중장기적 비전, 즉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모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모두 더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은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기본복지와 기본소득의 도입, 법정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 노동시간 법정상한제를 통해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과 과로노동체계 해소의 세 가지가 연동되어 실현될 경우 더 적게 일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골고루 나누어지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노동사회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울러 새로운 진보정당은 이와 같은 중장기 비전과 이행 경로 설정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기적인 행동강령을 채택하고 즉각적인 투쟁에 나서야 한다.  

9.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관하여

신 자유주의 시대에 불안정 노동자는 새로운 진보정치의 주체가 될 이름이다. 이들은 노동의 유연화를 통한 초과 착취의 시대, 다양한 방식을 통한 수탈의 시대에 주변인으로 취급받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사회적 중심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의 전망을 연다는 것은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 진보정치의 기반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비 정규직, 청년실업세대, 돌봄 노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다양한 장소에 존재하는 불안정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일은 기존의 민주노조운동의 각성을 전제로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자인 민주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원인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을 든다. 하지만 이는 전도된 인식이자 정치적으로는 핑계거리를 찾는 일에 불과하다. 도리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에 민주노총 등 민주노조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즉 불안정 노동자를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세우지 못한 데 기인한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 즉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새로운 사회계급인 불안정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계급 전체를 정치적 재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10. 혁신주도세력의 결집을 위해

민 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은 부정적 의미에서의 분열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혁신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진보의 혁신과 통합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으로 협소화하는 것은 정치적 무능력과 역사적 상상력의 결여뿐만 아니라 정치세력의 가장 큰 죄악인 무책임을 드러내는 일에 불과하다.

진보신당은 2011년 3월 27일 대의원 대회에서 ‘종합실천계획안’을 의결하여 진보 정치의 혁신과 통합에 대한 몇 가지 원칙과 입장을 분명히 했다. ‘종합실천계획안’의 기조는 진보의 혁신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진보신당의 창당 정신에 충실한 것이며, 그 내용은 사회당이 말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과제와 일치한다.

따라서 사회당은 진보신당 대의원 대회의 결정을 환영하며, 양당이 진보 혁신의 가치와 원칙에서 이미 일치와 동질감을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사회당은 앞으로 진보신당이 지금까지의 진보정당과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진보정당 수립으로 귀결될 진보정치의 혁신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이를 위한 구체적인 첫 걸음으로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연석회의를 비롯한 현 시국에서 포괄적인 정치적 목표를 함께 함으로써 진보의 혁신을 주도할 세력을 더욱 광범위하게 결집하자고 제안한다.

2011년 4월 17일
사회당 중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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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정치철학

 

<기본소득의 정치철학적 정당성: 실질적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의 이념에서 바라본 기본소득>
진보평론 45, 2010 가을호, 국문 요약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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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은주 2011/02/20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료 퍼가요.^^

  2. 푸하하 2011/03/15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머리속에 든것도 없는 무식쟁이들이 진보를 외치나요? 지식도 없고, 대책도 없이 반대만 하면 되는줄 아는 좌꼴들 때문에 진짜 좌파들까지 매도당하면서 좌파를 말아먹지. 사회당은 어째 진보신당보다 더 막장이냐.


기본소득의 정치철학적 정당성: 실질적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의 이념에서 바라본 기본소득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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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다중 - 야마모리 도루, '하나인 다중'에 대한 논평

  

  금민(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1. 두 가지 논점

 

일본기본소득네트워크의 야마모리 도루 교수의 발표문의 논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본소득과 임금노동의 관계에 대한 자율주의적 입론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기본소득이 도입될 맥락"에 관련된다. 물론 이 두 번째 논점 역시 '기본소득은 제국의 책략인가'라는 자율주의적인 문제의식에 연관된다. 도루의 답변은 설령 그것이 제국의 책략일지라도 "의식적으로 기본소득을 위해 투쟁해야 하며, 동시에 다른 요구들을 타협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운동이 동시에 자신의 슬로건으로 해야 할 "다른 요구들"에 대하여 도루의 발표문은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도루는 "어떤 종류의 법안이 기본소득과 함께 도입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풀뿌리 운동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발표문에서 소개된 영국 클레멘트 조합운동과 일본의 장애인 운동 '푸른잔디'의 예는 "극단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국제적 통제 레짐에 대항하여 일어난 서로 중첩되는 투쟁들이 존재한다는 객관적 우연의 일치"(H&N 2000, p. 262-3)를 실증하기 위한 사례로 등장할 뿐이다. 이 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기본소득 운동이 자신의 요구로서 받아 안아야 할 '다른 요구들'은 "삶이 곧 노동"이라는 특유하게 자율주의적인 문제 지평을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 운동과 결합되어야 할 다른 종류의 사회적 의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삶이 곧 노동"이라는 요구가 노동사회 내부의 전통적인 문제들과 어떻게 중첩되며 또한 그 해결 방식에 있어서 둘은 어떻게 결합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논의 지평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2. 도루의 자율주의 기본소득론

 

도루에 따르자면, 하트/네그리의 기본소득 옹호를 복지국가론과 등치시키는 비판(Boron 2005, pp. 89-90)은 핵심을 빗나간 오해이며,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임금노동 중심성과 기본소득의 탈노동패러다임의 차별성을 간과한다. 도루는 전통적인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분석하면서 임금노동의 중심성 문제가 불연속성의 핵심에 위치한다고 밝힌다.

 

a)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직접 소득이전체계가 개인의 기여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 조건에 부합되는지를 심사하는 절차를 전제로 하는 사회부조, 이와 같은 조건과 결부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범주의 사람에게만 지급되는 사회수당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급여로 구성되는데, 이 세 가지 소득이전 방법은 결코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그 중에서 사회보험이 복지국가의 핵심에 위치한다.

b)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개인의 기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며 사회부조 및 사회수당은 최소한 규범적 측면에서 보충적이다.

c) 이는 전통적인 복지국가가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하여 설계되었음을 뜻한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 하트/네그리에 따르자면 - 더 이상 전통적인 노동가치설이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 생산의 변화에 조응하는 새로운 요구로 파악된다. 즉 "산업노동자 계급만이 아닌, 가정주부와 실업자를 포함한 다중 전체가 가치를 생산"하는 현재의 생산방식에서, 즉 "자본의 생산이 사회적 삶 그 자체의 생산 및 재생산에 점점 더 수렴하고 있는"(H&N 2000, p. 401) 생체정치적 생산방식에서는 다중은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도루의 발표문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제국]에서 전개된 논리는 '사회적 임금'을 경유할 필요 없이 직접적으로 기본소득에 도달할 수 있음에도 왜 하트/네그리가 '사회적 임금'을 언급하는가의 문제이다. 도루는 그 이유를 이탈리아에서의 노동거부 운동의 경험, 즉 임금을 받지 못하는 실업자, 학생, 가정주부들이 임금 노동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또 다른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또한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역사적 경험과 노동거부에 대한 초기 네그리의 이론화 작업에서 찾는다. 물론 "맑스는 노동의 폐지를 주장"했고, 해방된 노동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네그리 1991, p. 165)"이라고 보는 네그리의 입장은 '사회적 임금'이나 '사회적 노동자' 개념을 경유할 필요 없이 직접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옹호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네그리는 '사회적 임금'을 경유하여 기본소득을 옹호할까? 도루가 찾은 답은 "노동가치설은 또한 가치노동설"이며 "전자가 설명력을 잃고 있다면, 후자는 다양한 운동들의 단일성"을 보장해 준다는 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도루는 전통적인 계급투쟁과 새로운 사회운동 모두 "노동 그리고 가치의 정의를 둘러싼 투쟁"이며 결코 이분법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임금노동자의 투쟁이건 비물질노동 종사자의 투쟁이건 모두 '사회적 노동자'의 투쟁으로 단일성 속에서의 다양한 갈래를 이룬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이론적 맥락, 곧 '다양한 운동들의 단일성'과 '가치의 정의를 둘러싼 투쟁'의 측면에서 기본소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임금'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통적 노동자운동과 신사회운동을 대립적인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은 네그리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이론적 맥락에서도 전혀 다른 근거로 수긍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 둘은 동일한 오류를 각각 다른 방향에서 되풀이하고 있다는 주장도 양자를 대립적으로 구별하는 통상의 지적 태도와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에 관해 상론하는 것은 논평의 본분을 벗어난다. 일단 여기에서는 도루가 지적한 문제, 즉 '사회적 노동'과 '사회적 임금' 범주가 전통적인 운동과 신운동의 단일성을 보장하며 다양한 주체들을 하나의 운동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 대해서만 집중하도록 하자.

 

3. 네그리의 '확장된 노동' 개념을 둘러싼 쟁점

 

도루는 '사회적 임금' 범주가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여러 운동들의 단일성을 보장해 준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이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 필요로 하는 논의는 과연 임금노동(Lohnarbeit)과 임금을 받지 못하는 기타 여러 가지 활동(Tätigkeiten)의 구별을 넘어서서 이를 단일하게 '사회적 노동' 개념에 의하여 통합함으로써 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타당한가의 문제이다.

 

네그리가 수행한 노동 개념의 확장은 고용노동 범주를 매개로 하는 착취(Exploitation, Ausbeutung) 개념과 고용노동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수탈(Expropriation) 개념의 구분을 넘어서서 두 가지 모두를 '확장된 착취' 개념 아래로 단일하게 포괄하게 됨을 뜻한다. '확장된 노동' 개념은 사실상 '확장된 착취' 개념을 내포하는데, 생산과 재생산의 구분이 사라지고 생체정치적 생산방식이 등장했다는 네그리의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임금노동/활동, 착취/수탈의 구분은 불필요해진다. 이와 같은 구분이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분배의 구분에 연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네그리의 이해방식을 받아들이게 되면, 임금노동과 기타 활동, 착취와 수탈의 분단선은 실제 경제의 분단선이 아니라 노동가치설과 임금 범주를 강제적으로 유지하려는 자본의 자의적 분단선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네그리의 가설에 대한 논박은 분명 이 논평문의 분량을 벗어나는 주제가 될 것이다. 다만 네그리가 그리는 현대 자본주의의 상은 특유의 철학적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배경철학을 달리한다면 동일한 사태들은 달리 이해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동일한 사태들에 대하여 네그리와 달리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정보혁명의 결과 임금노동 이외의 활동들을 매개로 사회적 생산력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지대적 수탈이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강남훈, 2010).

 

아울러 우리는 - 그것이 자본의 자의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이든 -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임금노동과 기타 활동, 착취와 수탈의 분단선을 네그리처럼 이론적으로 소거하는 것이 실천적으로 과연 효과적인가를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착취당하는 임금노동자와 수탈당하는 '실업자, 가사노동자, 학생' 등의 구분은 단순히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구분이 아니며 사회적 실재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 질문은 중요해진다. 이 구분은 현존 노동사회에서의 실제적 효력(Geltung)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효력논리는 가치의 원천의 문제 등과 같은 발생(Genesis)의 문제도 역으로 규정한다. 수탈은 이윤을 생산하지 않으며 착취로 인해 발생한 총이윤의 재분배일 뿐이라는 맑스의 정식화(MEW 25, S. 390, 456)는 '발생에 대한 효력의 우위'라는 논법을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고용노동과 기타 활동의 구분의 강고한 현실성, 실제적인 사회적 효력이 사라진다면, 곧 고용되어 있다는 상태가 고용되지 않은 상태와 큰 구별을 의미하지 않는 경우에, 우리는 착취와 수탈의 구분에 대해 맑스와는 달리 - 하지만 맑스의 방법에 충실하게 - 새로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상태와 실업상태의 구별이 현존하는 노동사회를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사회정치적 의미를 이루는 현 상태에서 두 가지 구분 너머의 '단일성'으로서 '사회적 노동'과 '사회적 임금' 범주를 등장시키는 일은 '모든 사회적 부는 인간 활동의 산물이다'는 당연하기 짝이 없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와 같은 '단일성'은 상이한 투쟁들이 임금노동 범주를 뛰어넘는 요구를 제기한다는 "우연의 일치"(H&N 2000, p. 262-3)만을 만들어 낼 뿐, 임금노동의 범주를 뛰어 넘는 상이한 투쟁들을 전통적인 임금 범주와 결합시킬 전략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4. 기본소득과 노동사회 재구성

 

문제는 노동사회의 내재적 구분인 노동/활동의 구분 속에서 어떻게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요구를 통해 이와 같은 구분을 넘어설 것인가이며, 이는 '노동자'와 '살아 있는 인간 모두'의 공통된 요구인 기본소득의 보편성과 단일성을 어떻게 이론적 실천적으로 형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과제는 기본소득과 임금노동 범주를 조우하게 만들며, 이는 기본소득 운동이 최저임금 인상운동, 노동시간단축운동, 비정규직 철폐운동 등 다른 요구들과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점(김세균, 2010: 강남훈, 2010)을 지시한다.

 

기본소득 운동은 임금노동이 축소되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신자유주의 상황에서 유의미성을 가진다. 즉 기본소득 운동은 노동시간의 혁명적인 단축 없이는 완전고용이 불가능하게 된 상태의 반영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기본소득을 통하여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이 가능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확립되며, 그리하여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 더 골고루 일하게 되는 완전고용사회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금민, 2010)과 함께 기본소득 도입 운동은 현존하는 노동사회에서 현실적 보편성의 차원을 획득한다. 기본소득 운동을 탈노동 패러다임에 일면적으로 정초하는 일은 기본소득을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의 필수적인 복지대안으로만 사고하도록 하며 기본소득의 포괄적 사회대안으로서의 의의를 축소시킨다.

 

<문헌>

Boron, Atilio A., Empire & Imperialism: acritical reading of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Zed Books, London and New York 2005.

Hardt, Michael and Antonio Negri,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 Massachesetts and London, 2000.

Negri, Antonio, Marx Beyond Marx: Lessons on the Grundriss, translated by Harry Cleaver, Michael Ryan, and Maurizio Viano. Bergin and Garvey, South Hadley,1991.

강남훈(2010), 기본소득 도입 모델과 경제적 효과, 8월 19일 기본소득학술대회 발표문.

금민(2010), 노동자운동과 기본소득, 울산기본소득네트워크 초청강좌 발표문.

김세균(2010), 「기본소득 보장론, 어떻게 볼 것인가?」, 『진보평론』 44호(2010년 여름호).








하나인 다중(UNA SOLA MOLTITUDINE):

기본소득을 위한 투쟁 그리고 이탈리아, 영국 및 일본에서 도출된 공통 논리

 

  

야마모리 도루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사무국장, 도시샤대 교수)

 

  

1. 서언

 

“우리 모두는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요구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기본소득 / Renta Basica, 시민소득 / Reditto di Cittadinanza, 보장소득 / Revenu Garanti, Revenu D'Exxtence, Allocation Universelle 등.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러한 요구를 다중의 3대 정강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 대응하여 쓰여졌다. 첫째, 하트와 네그리의 비판자들은 이 요구를 적절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근래 이 요구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발전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이 요구의 뿌리 중 하나가 1970년대의 급진적 풀뿌리 운동이라는 사실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거의 무시되고 있다. 셋째, 이번 회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탈리아의 Lotta Feminista, Autonomia Operia 및 기타 운동의 경험들은 인민들이 이러한 요구를 한 사례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바깥의 경험은 널리 인식되지 않고 있다.

 

이 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 요구를 둘러싼 최근의 학문적 담론을 소개할 것이다 (2절). 이를 통해 하트와 네그리의 비판자들이 지닌 오해를 지적할 것이다. 이후 1970년대 이탈리아의 투쟁을 잠시 언급하면서 하트와 네그리의 주장을 소개할 것이다 (3절). 다음 기본소득을 둘러싼 몇몇 회의적 시각을 검토할 것이다 (4절). 기본소득은 제국의 책략인가? 그럴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 도입의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을 위한 투쟁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이러한 사례로 영국(5절)과 일본(6절)의 경험을 살펴볼 것이다.

 

 

2. 기본소득에 대한 최근의 담론

 

2.1. 다수의 이름, 하나의 내용

 

이 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보장소득에 대한 요구는 상이한 이름으로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주로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인데, 이는 이 용어가 학문 공동체 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 때문일 뿐, 이 용어 또는 학문적 담론에 특권을 부여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다는 점을 밝혀 둔다. 기본소득에 대한 최근의 담론은 한 학문 공동체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이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서 1986년의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가 모체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을 위한 조건 없는 보장소득이다. 필립 반 빠레이스는 이를 “정부가 사회의 모든 성인 구성원에게 지급하는 단일한 수준의 정기적인 소득”이라고 정의한다. 기본소득은 “부자 또는 빈자, 홀로 사는 자 또는 공동생활을 하는 자, 근로의욕이 있는 자 또는 없는 자에 상관없이” 지급된다 (반 빠레이스 2001, p. 5). 기본소득이 “기본적”이라 불리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 것은 기본 수당으로서 “기타 소득이 - 그 형태가 현금이든 현물이든, 그 원천이 노동이든 저축이든, 시장이든 국가이든 상관없이 - 합법적으로 추가될 수 있다 (반 빠레이스 2001, p. 6)." 둘째, 그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셋째, 그 것은 "인간의 기본권"에서 유래한 권리이다. "보장 소득"이란 명칭은 기본소득과 현존하는/존재했던 복지국가 제도의 차이를 간과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데 (참고. Boron 2005), 복지국가의 주된 목표 중 하나가 "최저 소득 보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장 소득"이란 명칭이 복지 국가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자, 최저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류 시민"의 존재를 드러낸다고도 말할 수 있다. "allocation universelle[보편수당득]"이라는 명칭을 통해,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 체계의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볼 수 있다.

 

2.2. 연속성 및 불연속성

 

먼저 연속성의 측면부터 고찰해 보자. 기존 복지 국가의 직접 소득이전체계는 사회보험, 사회부조, 사회수당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급여로 구성된다. 사회보험은 두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개인의 기여 (예. 일정 기간 동안의 월별 기여금) 및 자격 (예. 일터에서의 부상). 사회부조는 몇 가지 테스트를 통과할 것을 요구한다: 수입 조사, 일자리 조사 및 (보통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행태 조사. 사회수당은 이러한 조건을 요구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아닌, 특정 범주에 속하는 사람에게만 지급된다. (예. 자녀 양육자 / 일정 연령 미만 아동). 이론적으로 기본소득과 사회수당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따라서 사회수당의 지급을 모든 사람에게 확대하면 기본소득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즉, 사회수당에서 보편수당(allocation universelle)이 되는 것이다.

 

이제 불연속성의 측면을 보자.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복지 국가의 특징을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3가지 소득이전 방법은 결코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 중 사회보험이 복지국가의 핵심에 위치한다. 보험체계는 사람들의 삶 속 “리스크”를 보장한다. 여기서 리스크는 일시적이라고 가정된다. 사람들이 (복지국가의 계획자들은 이를 “남성 가장”이라고 인식했다.) 장기간 동안 임금노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일을 해야 했고, 할 수 있다고 인식됐다. 일부는 복지국가를 케인지언-베버리지 복지 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케인즈 경제학 이론이 “일을 할 수 있다” 측면에 부합한다면, 윌리엄 베버리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일을 해야 한다” 측면에 부합한다.

 

국가는 시민들의 피할 수 없는 소득의 중단에 대비하여 적절한 혜택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시민들이 일체의 합리적인 직업기회를 찾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를 강요할 수 있다.

 

따라서 기타 두 방법은 (사회부조 및 사회수당) 최소한 규범적 측면에서 보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의 주된 사회부조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보조 수당”이라 불린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일 해야 한다”는 규범은 사회 부조 청구자들을 “이류 시민”으로 낙인찍는다. 품위 있는 사회 보험을 수령하는 “일류 시민”과 사회 보험을 수령할 수 없거나, 그 것만으로 “리스크”를 적절히 보장받지 못하는 “이류 시민”으로의 구분은 젠더와 인종 간 구분으로 이어진다. 적절한 사회 보험 프로그램이 통상 안정적인 정규직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위와 같은 구분은 “1차 노동 시장” (공식 부문의 안정된 고용)과 “2차 노동 시장” (공식 및 비공식 부문의 불안정 고용) 및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자간의 구분을 반영한다. 많은 여성들이 후자에 속한다 (Fraser 1997, 2장). 똑같은 설명이 인종 간 구분 및 장애인/비장애인 구분에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기여라는 개념이 복지 국가에서 필수적임을 알 수 있으며, 임금 노동은 이 개념의 핵심이다. 직업에 우위 또는 의무를 부여하는지 여부의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우리가 아는 복지국가와 확연히 다르다. 다양성이 일부 존재하기 하지만,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소득을 보장한다. 몇몇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기타 소득 이전 일체를 폐지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일부는 보완적인 소득 이전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하트와 네그리의 비판자들은 두 사람의 기본소득 옹호가 복지국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Boron 2005, pp. 89-90).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임금 노동에 대한 기본소득과 복지국가의 차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주장의 핵심에 위치한다. 이 문제는 추후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하트와 네그리의 주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3. 다중의 정강 및 이탈리아의 경험

 

하트와 네그리는 기본소득을 다중의 3대 정강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H&N 2000, 4장), “빈곤에 대항한 구성적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했다 (H&N 2004, p. 136). 앞서 살펴보았듯 기본소득의 요구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존재하지만, 정당화의 근거는 단일하다.

 

사회적 임금에 대한 요구는 자본의 생산에 필요한 모든 활동이 동등한 보상과 함께 인정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모든 사람에게 확대시킴으로써, 사회적 임금이 사실상 보장 소득이 되게 한다. (H&N 2000, p. 402)

 

현재의 생산방식 하에서 - 즉, 생체정치적 생산방식 - “자본의 생산은 사회적 삶 그 자체의 생산 및 재생산에 점점 더 수렴하고 있다 (H&N 2000, p. 401).” 따라서, (1) 산업노동자 계급만이 아닌, 가정주부와 실업자를 포함한 다중 전체가 가치를 생산한다, 그리고 (2) 이 가치는 전통적인 노동가치설로 측정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다중은 보장 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제국에서 전개한 논리를 통해, 모든 이를 위한 보장소득의 제공 (즉, 기본소득)이란 결론에 직접 도달할 수 있으며, 사회적 임금을 경유할 필요는 없다. 하트와 네그리가 사회적 임금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탈리아의 경험 및 이를 언급한 네그리의 초기 저술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노동 거부”는 공장 노동자, 실업자, 학생, 가정주부 등 다양한 단체들의 투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슬로건이었다. 이들은 임금 노동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또 다른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또한 보상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가정주부를 위한 임금”을 요구했다 (Bono and Kemp 1991). (임금을 받지 못하는 또는 비가시적인 노동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 이러한 정치 운동은 이탈리아 다중의 요구가 왜 사회적 “임금”의 형태를 택했는지 설명해준다.

 

그것이 (기본 “소득”이 아닌) 사회적 “임금”의 형태를 띈 또 다른 이유는 네그리의 노동 거부에 대한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 거부에 대한 네그리의 초기 이론화 작업은 마르크스 독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맑시스트”로 정의하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형태의 소요 및 저항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금도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직업/노동의 자연화 또는 신비화”라고 부를 수 있다.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독해한 후, 네그리는 우리가 구출할 수 있는 노동 개념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맑스는 노동의 폐지를 주장했다. 해방된 노동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네그리 1991, p. 165)"라고 결론 내린다. 이러한 주장 자체는 사회적 임금 보다 기본소득을 직접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네그리가 시도했던 것은 노동 거부를 맑스의 전통 속에서 정당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맑스 독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후일 하트와의 공동 저술에서 밝히듯이 (Diane Elson의 저술을 참고하며)(H&N 1994, p. 9), 노동가치설은 또한 가치노동설이다. 전자가 설명력을 잃고 있다면, 후자는 다양한 운동들의 단일성을 보게 해준다. 보통 맑시즘 용어로 설명되는 전통적 계급투쟁과 후기 구조주의 용어로 설명되는 새로운 사회운동 사이의 이분법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며, 사실은 두 운동 모두가 노동 그리고 가치의 정의를 둘러싼 투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 맥락에서, 그리고 이탈리아의 현실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에 도달하기 전에 사회적 임금의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4. 제국의 책략?

 

2절에서 언급했듯이, 기존의 복지국가와의 불연속성 여부는 임금 노동의 지위에 달려있다. 임금 노동은 복지국가의 핵심에 놓여있지만, 기본소득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에 대한 대부분의 회의적 시각은 이 문제를 두고 발생한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사람들은 노동을 멈출까? 이것은 노동권의 부정이 아닌가? 이는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위협하는 제국의 책략이 아닌가? 제도로서의 기본소득에 기반할 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기본소득을 개념화하는 복수의 상상력을 통해, 복수의 대답에 도달할 것이다.

 

4.1. 임금 노동에 대한 이윤동기에 대하여

 

먼저, 기본소득의 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자들의 황금율은 사회제도는 개인의 선호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체계는 노동과 여가에 대한 개인의 선호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으며, 노동에 대한 선호를 중시한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일부 비판자들은 그 것이 임금노동에 대한 이윤동기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윤동기를 감소시키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회 제도는 개인의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이윤동기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 이는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명한 기본소득 옹호자인 필립 반 빠레이스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반 빠레이스 1995).

 

둘째, 일부 옹호자들은 임금 노동에 대한 이윤동기가 적다는 점에 찬성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이를 정당화한다. 일부 생태론자들은 임금노동의 이윤동기가 감소되면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전환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참고. Gorz 1999).

 

셋째, 감소된 이윤 동기는 하트와 네그리도 환영한다. 임금 노동은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임금노동에 대한 이윤 동기를 가질 필요가 과연 있을까?

 

4.2. 기본소득의 모호한 효과

 

기본소득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위협하는 제국의 책략이 아닌가? 답은 예, 아니오 모두다. 이런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불안정 노동을 정당화하고 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물질적 조건을 훼손한다고 본다. 먼저, 동일한 맥락에서 일부 노동단체들의 “완전 고용”,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 및 임금 노동에 기초한 그들의 연대는 일을 하지 않거나 또는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어떤 요구의 긍정적 측면은 그 구체적 맥락을 살펴봄으로써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일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지배라는 특별한 맥락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 그 것은 노동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더 적은 보수를 지급한다. 자칭 신자유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기본소득과 유사한 정부의 저소득층 보조금(negative income tax)을 옹호했다. 이 때문에, 일부는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적 산물 또는 제국의 책략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노동자 권력”이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된 것처럼 기본소득도 그렇게 사용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악용에 주의해야 하지만, 그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1968년의 급진적 운동을 면밀하게 연구한다면 우리는 관료주의적 국가에 대항한 자유와 같은 그들 요구의 대부분이 후일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악용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들이 요구했던 것들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그 어떤 진보적인 저자도 1795년에 도입되어 30년간 지속된 영국의 스핀햄랜드 체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 체제는 생존 비용과 임금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소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해주었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이 제도로부터 소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덜 지급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노동자들이 타락하게 되었다는 비판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규범적 평가는 시장경제에 대항했던 저항의 존재를 감추고, 미처 실현되지 못했던 빈민층의 해방 가능성을 은폐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더 낮은 임금을 받기 시작했다는 비판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스핀햄랜드 체제는 노동조합 또는 일체의 노동자 연대를 금지하는 법과 함께 도입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지배계급은 빈자에게 잠재적으로나마 권력을 주는 스핀햄랜드 체제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법안과 함께 이 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의식적으로 기본소득을 위해 투쟁해야 하며, 동시에 다른 요구들을 타협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될 맥락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법안이 기본소득과 함께 도입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풀뿌리 운동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이 글에서 이 문제까지 다룰 수는 없다. 대신,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사례 이외에 두 가지 투쟁을 소개하고자 한다.

 

 

5. “임금체제 철폐”: 영국의 클레멘트(Claimants: 청구인) 조합

 

클레멘트 조합 운동은 1960년대 말경, 영국에서 등장했다고 알려져 왔다. 여기서 “클레멘트”는 다양한 사회적 혜택 및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연금생활자, 장애인, 환자, 사회부조 수령자, 미혼 부모, 학생, 실업자 등이다. 기존에는 이들에게 공동의 이해관계가 없다고 인식되어 왔지만, 클레멘트 조합은 동일한 적, 즉 사회보장부(department of social security)와 동일한 요구, 즉 기본소득을 통해 공동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표출하고자 했다. 집단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지만, 클레멘트 조합이 그러한 정체성을 추구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조합의 출판물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금생활자를 위한 핸드북의 서두에서, 클레멘트 조합은 “우리 / 우리의”가 의미하는 것이 단지 연금생활자가 아닌 모든 청구인(claimant)임을 강조하였다 (전국 클레멘트 조합 연합, 발행년도 미상)

 

그들은 자신들의 슬로건이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에서 “임금체제 철폐”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클레멘트 조합 연합, p. 5). 그들은 임금노동과 결합된 성별 노동분업 및 노동윤리에 근거하여 무보수 노동에 문제제기 했다. 노동 윤리는 복지 국가만이 아닌, 자선단체 및 기타 봉사단체 등의 “빈민 사업”이 함께 부과한 것이었다.

 

이 핸드북은 “전국 클레멘트 조합 연합”이 작성한 것인데, 이 연합은 “함께 동맹을 결성한 모든 클레멘트 조합들의 네트워크”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들은 “클레멘트 헌장”이라고도 알려진 4가지 공통된 요구를 공유했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수입 조사 없이 모든 사람들의 적정한 소득을 받을 권리

2. 모든 필수재가 무상으로 공급되며, 인민들이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회주의 사회

3. 비밀의 금지 및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권

4. 소위 “자격자” 와 “무자격자”간의 구분 폐지

(전국 클레멘트 조합 연합, p.3)

 

첫 번째 요구는 기본소득에 대한 것이며, 연금생활자들의 13개 요구에서도 다음과 같이 첫 번째로 언급되었다: “자유로운 복지 사회, 보장된 적정 소득에 대한 개인의 권리 (전국 클레멘트 조합 연합, p. 37)." 당시의 복지국가는 인민을 통제하려는 의도 때문에 비판받았다.

 

불행히도,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 운동에 도입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신, 한 지역 클레멘트 조합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잉글랜드 남서부의 Newton Abbot에서, 한 클레멘트 조합이 1971년 발족되어 4년간 지속되었다. 이 조합은 3가지 점에서 전형적인 클레멘트 조합과 차이를 보인다. 첫째, 규모면에서, 운동의 절정기에는 약 400명의 사람들이 이 조합에 가입했다. 따라서 클레멘트 조합의 평균 규모와 비교할 때 상당히 컸다. 둘째, 계급 구성에서, 비서를 제외하면 어떤 중간계급도 포함하지 않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그 지역에 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다음 두 가지 점은 전국 연합 회의에서 기타 클레멘트 조합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농지에서 야채 기르기(타 조합들은 일체의 노동을 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비조합원인 비서 봉사자를 운영하기 (타 조합들은 조합원이 아닌 사람을 포함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합의 초창기에 열린 한 주간회의에서, 다른 조합들에서 기본소득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았던 몇몇 멤버들이 회의 자리에서 기본소득을 논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다른 멤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일부 반대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의 중에 어떤 반대도 제기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진실로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후일 비서는 나에게 그 것은 유쾌한 놀라움이었으며, 사람들의 지지가 없을 것이라고 의심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몇몇 전(前) 조합원들은 멤버들이 실업, 질병 및 장애 때문에 인간적 삶을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동일한 믿음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통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 또는 자기가 속한 계층에게 충분한 수당을 줄 것을 요구한다. 어떻게 Abbot의 클레멘트 조합은 기본소득을 공동으로 요구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객관적 조건이며, 다른 하나는 주관적 인식이다. 첫째, 조합원 모두는 강제로 임금 노동에서 배제되었다는 공통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동시에 임금노동에 접근할 가능성은 조합원마다 상이했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 때문에, 그들은 실업자 또는 노동조합의 통상적인 요구인 일자리 보장 혹은 특정 계층에게 특정 수당을 지급할 것에 매몰되지 않고, 기본소득이라는 보편적 요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계급적 분열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노동자와 클레멘트(청구인) 사이에도 존재했다. 노동자들이 창업가가 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전적으로 틀린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비록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 지배하에 더욱 창궐했다) 클레멘트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담론도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좌파 사이에서 이 담론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객관적 물리적 조건만으로 집단적 계급 정체성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이 것이 필자의 두 번째 요점이다. Newton Abbot 조합의 경우에, 경작 또는 시위와 같은 공동의 활동을 통해, 조합원 각자의 다양한 상황을 존중함과 동시에 클레멘트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주관적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통의 이해관계와 주관적 인식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했다. 단기 실업자였던 젊은 조합원들이 일터로 복귀하면서, Newton Abbot 클레멘트 조합은 대부분의 활동적인 조합원을 잃었다. 조합은 1975년 해산되었다. 대부분의 클레멘트 조합들 역시 1970년대 중반에 활동을 중단한다. 비록 일부가 후일 클레멘트 운동을 재개했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몇몇 시도가 존재했으며, 두어 개의 클레멘트 집단이 오늘날에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기본소득 요구는 더 이상 그들의 정강에 들어있지 않다.

 

 

6. “삶이 곧 노동이다.” 푸른잔디 및 일본의 장애인 운동

 

이제 동일한 요구에서 동일한 정당화 논리로 초점을 돌려볼까 한다. 제국에서 기본소득의 정당화 근거를 보았을 때, 일본의 급진적 장애인 운동의 표현들이 떠올랐다. “뒤척이는 것이 노동이다.”, “삶 자체가 곧 노동이다.” 등등이 그 것이다. “통제 거부” 또한 그들의 핵심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장애인 운동은 클레멘트 조합 운동과 유사점을 지닌다. 장애인 운동도 일종의 기본소득을 요구했다. “우리 모두는 조건 없는 보장소득에 대한 권리가 있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사실 “장애인”을 의미하며,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탈리아 및 영국과의 유사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1970년경, (장애인들을 “위한”, 또는 장애인들을 “대신한”이 아닌) 장애인들의 운동은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일어났다. Tomoaki Kuramoto는 이 새로운 흐름을 “장애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차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요약했다 (Kuramoto, 1997). 1950년대 상호부조 단체로 출범한 Aoi shiba no kai는 (영어로 직접 번역하면 푸른잔디 공동체임. 이하 푸른잔디) 1970년경 급진적 행동단체로 변화했다. 1970년 처음으로 등장한 조직 정강은 설득력 있게 그들의 사상을 설명한다.

 

1. 우리는 스스로를 뇌성마비자로 규정한다.

 

우리는 자신의 지위를 현대 사회에서 “존재하지 말아야 할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이 운동 전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이 믿음 위에서 행동한다.

 

2. 우리는 공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뇌성마비자로 규정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강한 자기주장만이 자기보호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으며, 이 믿음 위에서 행동한다.

 

3.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거부한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가 상징하는 에고이즘을 비난한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거부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관찰이 가능해지며, 여기서 비롯된 상호이해만이 진정한 행복을 의미한다고 믿고, 이러한 믿음 위에서 행동한다.

 

4. 우리는 문제해결 방식을 거부한다.

 

우리는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쉬운 해결책은 위험한 타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끊임없는 대립만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행동방침이라고 생각하며, 이 믿음 위에서 행동한다.

(Aoi Shiba no Kai Kanagawa Rengo Kai, 1970)

 

푸른잔디는 대다수 비장애인과 시스템을 상대로 저항하는데, 이 둘은 모두 '중증 장애인은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장애인 아동을 살해하는 부모들에게 동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들에게 이는 사회 대다수의 편견 때문에 초래된 현실적 위협이었다 (“내 부모는 언제 나를 살해할 것인가?”). 하지만 이와 같은 인식을 내면화하는 것은 자기긍정을 어렵게 만든다. 정강의 첫 번째 및 두 번째 주장은 이러한 상황에 맞서 싸울 필요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그들의 요구를 잘 요약해준다. 푸른잔디는 장애인들이 제국주의적-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의해 부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부정은 이러한 생산양식이 형성한 “사람들의 인식에 의해 고정되고 강요된다”고 보았다 (Kansai Aoi Shiba no Kai, 1975). 그들이 사랑과 정의를 부정할 때, “사랑”은 이러한 인식, 예를 들어 위에 언급된 것처럼 자식들을 죽이는 부모의 “사랑” 또는 장애인들의 자율성을 부인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선의”를 의미한다. “정의”는 현 시스템, 즉 장애인을 분리하고 통제하는 복지국가를 의미한다. 그들은 특수기관에 입실되기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독립된 삶”을 시작했다. 그들은 “통합” 교육을 요구했다. 복지 정책, 법 및 우생학에 근거한 의료행위는 비판받았다. 특수기관 밖에서 살기 위해, 달리 말하면, 비장애인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들은 대중교통수단 접근권부터 소득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요구해야만 했다.

 

네 번째 부분은 그들의 전략을 잘 설명해주는데, 시간의 제약상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생략한다. 단,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만 부연하고자 한다. 상기 정강에서 잘 드러나듯이 (특히, 첫 번째와 네 번째), 푸른잔디의 정치를 정의할 때, 근대 정치철학의 용어를 빌려 “차이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로부터 그들이 단지 분리주의자이며, 비장애인 다수와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면 그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노동자들의 역사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우리와 노동자간의 상호비판을 통해 공동의 미래를 위한 정강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비장애인의 문제를 작업장으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노동의 가치를 변혁한다 (이탤릭은 필자).”

 

“노동의 가치를 변혁한다”는 것은 기본소득을 정당화한 네그리의 주장과 일치한다. 생활을 위한 소득 및 개인별 사회 부조 지급은 1980년대 창설된 개인 부조 보장을 위한 전국 클레멘트 조합이라는 명칭의 또 다른 단체가 주로 추구했던 것이다. 이 단체 외에도 기본소득과 유사한 요구를 제기한 단체는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푸른잔디 공동체는 오늘날에도 존재하며, 광범위한 이슈에 대해 투쟁해왔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위해 싸운다는 점에서 “평범”하지만, 동시에 사회 대다수와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삶이 곧 노동이다”와 같은 형태로 표현된 그들의 논리는 네그리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둘째, 네그리 및 Autonomia와의 차이는 푸른잔디의 강조점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클레멘트 사이에 공동의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시도했던 영국의 클레멘트 조합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클레멘트 조합 역시 클레멘트와 노동자간의 차이를 강조했다. 영국의 클레멘트 조합 그리고 일본의 푸른잔디가 채택한 차이의 정치학은 노동자 (전자) 및 비장애인들 (후자)의 지배적 인식에 대항한 투쟁을 외쳤다. 이러한 점에서 두 개의 투쟁 사이에는 유사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7. 결언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개의 운동은 (각각의 운동도 복수의 운동이다) 핵심 운동 주체의 정체성이란 면에서 서로 상이하다. 또한 이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운동 속에서 유사한 요구 및 동일한 정당화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제국의 다음과 같은 분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경향은 필연적으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잠재적 또는 실질적 통합을 창출한다. 이 실질적 통합전 지구적 정치 연합으로 완전히 실현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효과를 지녔다. 달리 말하면, 실질적이고 의식적인 국제 노동조합이 거의 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극단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국제적 통제 레짐에 대항하여 일어난 서로 중첩되는 투쟁들이 존재한다는 객관적 우연의 일치가 가장 중요한 사실인 것이다. (H&N 2000, p. 262-3)

 

이러한 “투쟁들의 객관적 우연의 일치”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실질적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이번 회의를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대신, 몇 가지로 결론을 짓고자 한다. 먼저, 네그리의 (그리고 후일 하트의) 노동 거부 이론화는 이탈리아 밖에서 우리가 목도한 운동들에서도 도출되었다. 따라서 네그리 (그리고 하트)를 비판하는 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이탈리아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축소하려고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은 필자가 소개한 기타 투쟁들을 무시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둘째, 기본소득은 제국의 책략일 수도 있다. 기본소득이 이렇게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자는 이 글에서 제시한 사례와 같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을 제안한다. 이 역 사적 경험들을 점증하는 기본소득 학술 네트워크의 논의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는 여러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기본소득 운동과 소통하고 참여하는 것의 핵심적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을 위해 투쟁해온 정치주체들은 “하나”이면서도 “다수”다 (Una Sola Moltitudine). 이런 경험이 다중의 정치에 지니는 함의는 논의할 가치가 있으며, 이번 회의 및 앞으로의 토론거리라고 생각된다.

 

 

감사의 말 및 주석

 

이 글의 초기 버전은 일본어로 출간되었다 (야마모리 [2003]). 초기 버전에 적은 감사의 말은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Newton Abbot 클레멘트의 전(前) 조합원들, Southsheilds 클레멘트의 전(前) 조합원들, Edinburgh 클레멘트 및 기타 클레멘트 운동의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익명으로 남고자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실명 거론은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Bill Jordan 및 Jack Grassby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들의 저서 (Jordan 1973 and Grassby 1999)는 클레멘트 조합 운동에 대한 소중한 기록물이다. 이 글을 작성함에 있어 그들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일본에서의 투쟁에 대한 부분 (6절)은 (역설적이게도) 캠브리지로 옮긴 후 거의 새로 쓰여진 것이다. 장애인 운동에 관한 홈페이지 및 Shinya Tateiwa가 주로 집필한 연구들은 머나먼 캠브리지에서 사료들에 접근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6절의 집필은 과거 그와의 교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재집필 과정에서, 캠브리지 자율연구 프로젝트 사람들과 제국을 다시 읽었다. 당시의 비판적 토론은 필자에게 네그리의 사상 중 무엇이 현대 자율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핵심적인지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Rosie Vaughan, Mishko Hansen 및 Thomas Lalevee에게도 따뜻한 격려와 도움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모든 오류는 필자 자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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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및 토론문 파일




제1회 한ㆍ일 기본소득네트워크 공동 심포지움
- 한국ㆍ일본의 기본소득 비전과 대안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

 

2010년 8월 19일,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2층)

 

13:00~13:30
참가등록

 

13:30~13:40
개회사 - 이성백 |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소장,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자문위원

 

13:40~14:30
1부 한ㆍ일 기본소득네트워크 과제와 협력 방안
곽노완 |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최광은 |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사회당 대표
오자와 슈지 | 일본 교토부립대,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대표
야마모리 도루 | 일본 도시샤대,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사무국장

 

14:30~15:50
2부 한ㆍ일 기본소득의 비전 - 사회 |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 한국의 기본소득 도입모델
발제: 강남훈 | 한신대 경제학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대표
토론: 조정재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2. 하나인 다중: 동아시아의 투쟁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발제: 야마모리 도루 |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사무국장
토론: 금민 |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16:10~17:30
3부 21세기 기본소득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주체 형성 - 사회 | 임경석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1. 가치법칙 비판과 기본소득: 새로운 맑스 - 독해
발제: 김원태 | 독일 마부르크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토론: 이진경 |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2. 한국의 프레카리아트: 왜 기본소득을 필요로 하는가?
발제: 가이 스탠딩 | 영국 배쓰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명예 공동대표
토론: 백승호 |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17:30~19:00 종합토론
사회: 김세균 | 서울대 정치학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자문위원

 

대회 참가비는 자료집 포함 10,000원이며 동시통역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주최: 한ㆍ일 기본소득네트워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후원계좌: 055201-04-150690 국민은행, 권문석(기본소득네트워크)
문의: 김성일 010-7377-4899 신재성 010-8251-2812 | bi@basicinco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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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야3당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그것도 가장 문제가 많은 후보라서 민주당 지지자조차 고개를 돌렸던 장상 후보로 단일화가 되었다. 이대 총장 시절 김활란 상을 만들어 극우파적 역사관을 과시했고, 총리 인준 과정에서는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천박한 상류층의 면모를 드러내어 결국 총리가 되지 못한 인물이 이명박 정권 심판의 기수가 되었으니 그 누군들 단일화에 흔쾌히 동의하겠는가?

 

지난 십 년 동안 민주당은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개혁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하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더니, 이번 재보궐 선거, 특히 은평을에서는 장상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퇴행적인 정치 집단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러니 민주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야3당 단일화를 원했던 지지자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민주당의 오만하다 못해 무모한 태도는 거대 야당의 지위에 취해 국민의 진정한 목소리를 외면해서 나온 결과이다. 물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도 이런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꾀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정치적 민주주의와 개혁을 자기 과제로 삼는 국민참여당이 장상 후보 같은 사람을 공천한 민주당과 연합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더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단일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과 보편 복지를 대안으로 한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일관되게 추구한 금민 후보는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지지를 바탕으로 진보의 가치와 정책으로 끝까지 정권 실세 이재오와 맞설 것을 다짐한다. 그 길만이 많은 사람이 바라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보듬어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26일
금민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선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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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기 은평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오늘(26일) 금민 후보 지원유세에서 “기호 9번 금민 후보를 기필코 국회로 입성시켜야 2만 명이 넘는 은평의 장애 주민이 당당하게 살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최용기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겠다고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2010년 장애인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장애인 연금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존 장애인 수당의 이름만 바꾼 것일 뿐”이라고 성토했다.

최용기 소장은 “장애인이자 은평 주민인 나는 주민들과 당당하게 함께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소득이 보장되어야 하고, 장애인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오직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금민 후보만 할 수 있다.”며 오늘 7월 28일 금민 후보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했다.

 

2010년 7월 26일
금민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선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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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칼럼] 88만원 세대와 기본소득


평생 한나라당에만 찍으셨던 아버님이 "왜 너는 맨날 택도 없는 곳에만 서 있느냐?"는 말씀을 지난 지방선거 때 하신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투표한 사람 중에서 당선된 사람은 노무현 후보가 유일한 것 같다. 당선권 비슷한 곳도 아닌, 10퍼센트도 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로 투표하고, 그들과 함께했다. 정치로 보면, 정말 마이너 리그, 그곳이 내가 자라고 성장한 곳이다.

녹색당을 만들자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 결국 5000명의 당원을 모으지 못해서 창당에 실패했다. 서울, 경기, 이런 데는 가능하지만, 대구에서 한나라당이 아닌 당을 만들자, 광주에서 민주당이 아닌 당을 만들자, 그리고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이 아닌 당을 만들자, 그러면서 미친 놈 취급도 많이 당하고, 배신자 취급도 많이 당했다. 페이퍼 당원이라도 채워서 창당하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녹색당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민주노동당은 완전히 큰 형이었고, 창당에 성공한 사회당만 해도 엄청나 보였다. 시민운동은 사실상 민주당 뒷배 같은 시절, 민주노총은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운 괴물처럼 느껴지던 시절, 그 뒷공간에서 녹색당의 꿈을 안고 전국으로 당원을 모으기 위해서 뛰어다니던 시절, 그게 나의 30대였다. 건강을 잃었고, 모아놓은 돈도 다 썼던 그 시절, 그러나 내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보람찬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 녹색당의 꿈마저 잠정적으로 정지된 한국, 그 마이너의 마이너의 뒷공간을 사회당 혼자서 지키고 있다. 은평을에 찾아가면서, 나는 금민 후보와 함께 한 사람들 속에서 마이너 리그에서 등판하던 내 30대 시절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한국 정치에는, 민주노동당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커 보이는 그런 마이너리그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마이너리그가 한국 정치를 뒤흔들었던 정책들이 나오는 그런 아방가르드의 공간이기도 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총선을 기억한다. 그 때 나는 환경과 에너지 분야 공약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농업 그리고 다시 '완전고용제'와 같은 경제 공약까지, 현장에 있던 거의 유일한 경제학자로 꽤 많은 공약에 관여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하게 된 선거이다. 그 때 '부유세' 공약이라는 게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 '무상'이라는 이름을 단 무상 의료 등 일련의 무상 시리즈가 있었지만, 부유세가 워낙 강력해서 세상에 제대로 얼굴을 보이지는 못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를 뒤흔들었던 무상급식 논의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 역시 그런 마이너 리그를 통해서였다. 내 기억으로는 2003년, 2004년 경, 학교급식과 군대급식 그리고 현대 중공업 같은 작업장 급식에 대한 논의가 시민단체와 생협단체 일각에서 시작되면서, 한편으로는 무상급식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친환경급식이라는 형태로 정리되어 나갔다. 그리고 2004년경, 농업의 대안이라는 논의로 전개되어 나간 셈이다. 그리고 2010년, 드디어 정국의 태풍이 되었다.

은평을의 금민 후보가 이번에 제1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이다. 이 논의는 분당 전의 민주노동당 일부에서 한동안 2007년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일부 전개되었었는데, 이명박 후보의 초반 질주 과정에서 논의가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아마 이 공약이 2012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제시할 공약 중에서는, 현재로는 가장 앞 쪽에 있을 공약인 것 같은데, 이번은 사회당 이름으로 먼저 그 포로토콜이 제시된 점이다.

아직은 아방가르드 수준이고, 어떤 재원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20대 알바, 60대 이후의 은퇴자, 산업 논리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소규모 문화생산자, 그리고 혼자 사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엔가 이 논의가 폭발적으로 커져나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투표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다. ⓒ대학생사람연대

▲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투표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다. ⓒ대학생사람연대



모든 정책은 처음 제시되는 아방가르드의 순간이 있고, 그렇게 시대의 전위가 형성된다. 내가 지난 15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처음에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나 집단이 영광을 본 경우는 거의 없다. 기존 정당에서 그 공약을 가져가는 순간 혹은 큰 운동단체에서 슬로건으로 내거는 순간, 아방가르드는 또 다른 정책을 찾아 다시 전위의 입장이 된다.

부작용으로, 아주 이상하게 변해버리는 정책도 적지 않다. 청계천 복원의 원래 아이디어는 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 간담회에서 나왔다. 지금은 상류를 팍 잘라 버려서 결국 '인공 하천'으로 이상해져버렸지만 말이다. 뉴타운은 용인 등 경기 남부 지역의 난개발 과정에서 나온 정책이다. 원래는 정부에서 교육과 의료 등 기본 인프라를 확보하고 민영개발의 폐해를 막는 공영개발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논의이고, 여기에 기본 계획을 하는 '조닝(zoning)' 개념을 결합해서 지구단위계획으로 가는 것들도 시민단체의 어느 한 구석에서 아방가르드처럼 나온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게 이명박 서울시장의 손에 들어가면서 '뉴타운'으로 탈바꿈했다.

어디 그것만 그런가? 버스 전용차선제도 무조건 지하철과 미래형 교통으로만 집중되어 결국 개발만 늘어나고, 대중교통이 비싸지는 것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버스 전용차선과 버스공영제를 결합시켜서 매우 저렴한 버스 요금 혹은 '공짜 버스'를 시도하자는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 그게 '공짜'라는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한국에서는 버스 전용차선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대중교통비가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새로 생기는 도시마다 지하철 혹은 경전철을 도입하고, 버스 비용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버렸다.

선 거 때에 마이너 리그가 벌어지는 것은, 새로운 정책 아방가르드들이 많은 경우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 사회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고, 그래서 선거비용을 조금도 돌려받지 못할 정도로 당선권과 거리가 멀어도 한국의 아방가르드들은 선거에 참여한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제도들을 도입하고, 조금씩 복지 사회로 나아간 셈이다.

한나라당은 정책 개발 능력이 사실상 없다. 그들의 원형이 미국의 네오콘이었는데, 네오콘이 클린턴으로부터 정권을 찾아올 때 같은 이론적 뜨거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정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집단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새롭게 제시한 것들이나 정형화시킨 것을 그냥 가져가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은평을 선거에서는 모든 것들이 단순 재반복되고 있다. 이재오는 "지난 선거에서 나를 찍어주지 않았으므로 은평이 재개발되지 않았다"라는 얘기 외에는 추가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반대 진영에서는? 어떤 정책도 새로운 것이나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보는 것이 없다. 유일하게 지금의 재보궐 선거에서, 비록 원형의 형태로나마 새로운 정책이 제시된 것은 은평을의 기본임금 정책 외에는 없다.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 아니면 민주당, 그리고 메이저 리그급 게임을 즐기고, 언론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 구석에서는 그런 무시와 탄압 속에서 마이너 리그 게임이 열리고 있는데, 한국에서 히트친 정책들은 대부분 그런 마이너 리그에서 출시된 것들이다. 은평을의 알바 88명이 금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언문을 하나 만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언젠가는 이 선언문이 한국의 정치와 미래를 뒤흔들, 그래서 결국 창궐한 미래가 되는 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알바, 그들이야말로 한국 경제에서 마이너 중의 마이너 아닌가? 그 마이너들이 금민을 선택했다.

그 마이너 리그에서 함께 나의 작은 지지를 더할 수 있어,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자랑스러웠다. 힘 없는 사람, 배 고픈 사람, 고단한 사람, 우리는 모두 마이너 리그에 속한 사람들이다. TV에 나오는 사람, 공중파가 밀어주는 정치인, 그들이 아니라 마이너 리그에서 아방가르드가 시작되고, 역사가 시작되는 것, 이것은 해방 이후로 변하지 않은 한국의 진실이다.

나 는 아직 내가 마이너 리그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다는 것, 그 삶이 자랑스럽고, 그렇게 지지할 수 있는 마이너 리그의 선발투수, 금민이 있다는 게 정말로 고마웠다. 구속은 초특급이 아니고, 구위가 다양하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천하무적 야구단에 속한 사람들 아닌가!

88만 원 세대에게 기본소득을!
-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인 금민 후보 지지 선언

오늘날 20대들의 또 다른 이름은 '88만 원 세대'다. 그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오늘날 20대의 대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취업을 하려고 해도 말 그대로 바늘구멍이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들이 저임금 중노동의 비정규직이거나, 아르바이트의 연장일 뿐이다.

'88만 원 세대'가 곧 우리의 비극적인 삶이지만, 이를 극복할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노동자, 서민 그리고 88만 원 세대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여 년의 양극화를 통해서 체험했다.

이 명박 정부도, 민주화 10년도 우리의 처지를 개선할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해 미국발 경제위기로 한국경제가 추락할 때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고 임금을 삭감하면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통분담만 있고 고통을 분담한 대가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차피 모든 20대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88만 원 세대를 더 양산하는 것에 그치는 이명박 정부의 20대 수탈정책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장하는 대안은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기호 9번 금민 후보가 강조하는 전국민 기본소득제 도입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노동여부와 상관없이, 또 소득이나 자산에 대한 심사 없이 무조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것만이 우리 20대 88만 원 세대들의 미래를 희망차게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국민이 투표권뿐만 아니라, 당당한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

심 각한 양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이라는 우리의 요구는 과도하지 않다. 당장 실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비생산적 방식의 투기불로소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고, 오늘날의 경제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면서도 실제로 책임은 지지 않은 고소득 불로소득 생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동안 이행하지 않았던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며, 국가는 여기서 마련된 재원으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우리 20대들은 먹고살기 위한 취업이 아닌, 꿈을 실현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다. 보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88만 원 세대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 희망 세대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88만 원 세대로서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기 위해 7.28 은평을 재선거에서 기본소득을, 기호 9번 금민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평생 고난을 감당해야만 하는 우울한 미래가 아니라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오는 7월 28일에 선택할 것이다.

2010년 7월 22일
기본소득과 금민 후보를 지지하는 88만 원 세대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명

<편의점>
고 보경 권오현 김강석 김동훈 김명순 김문수 김미진 김병수 김수자 김시진 김일수 김창현 류은영 민용기 박보은 박소연 박충은 박효경 배기백 석광섭 송창훈 안민영 여현지 오경식 오세원 오은주 왕지정 유성진 윤강의 윤덕희 이강희 이기명 이미애 이병학 이성희 이아름 이정훈 이중선 장강희 장우성 전재훈 천정우 최윤호 홍예나 황영진 (이상 45명)

<PC방>
강현수 김소연 김연정 김준우 김지권 박혜원 송지선 신종철 심영환 오인영 유아린 이은주 이주희 이준이 장솔이 전민주 조아해 주지인 최 솔 한상우 (이상 20명)

<기타 아르바이트>
강영환 김시원 김태규 김현철 민하늘 박수영 박지영 박진영 사가영 송형택 안용수 안창규 엄민지 유진아 윤주호 이덕선 임상철 장영휘 전정현 정대윤 천현우 최고영 한태경 (이상 23명)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00726104438&section=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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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알바’들, 금민 후보 지지 선언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박사, 청년유니온 박보은 씨 등 참석
 
은평시민신문
 
 
은평구 편의점,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88명이 22일 ‘기본소득’ 도입을 제1공약으로 내건 금민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 연신내역 물빛공원에서 ‘88만원 세대에게 기본소득을!’이라는 기치로 ‘은평구 ‘알바’ 88인의 금민 후보 지지 선언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21일 금민 선본이 주최한 작은 문화제에서 기타 공연을 한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와 청년유니온의 박보은 조합원(20대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우석훈 박사는 “역대 진보진영에서 히트를 친 정책들이 몇 개 있다. 부유세가 있었고, 무상급식이 있었다. 기본소득도 그렇게 히트를 칠 정책이다.”고 말했다.
 
우 박사는 “노무현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했는데, 일하지 않는 사람은 복지에서 제외된다는 말이다. 즉 20대 청년 실업자들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저는 보편적 복지라는 말을 쓴다.”며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금민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은평구 알바 88명은 지지선언문에서 “심각한 양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기본소득제 도입 요구는 과도하지 않다.”며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20대들은 먹고 살기 위한 취업이 아닌, 꿈을 실현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는 등 더 이상 88만원 세대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 희망 세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밝혔다.
 
88명의 금민 후보 지지 ‘알바’를 대표해 지지 선언문을 낭독한 박보은 씨는 “대학 등록금 문제도 그렇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당장 나 자신의 삶이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도 미안하다.”며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부모님도 나 자신도 경제적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입력: 2010/07/23 [12:14]  최종편집: ⓒ 은평시민신문 Copyrights ⓒ e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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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축지법을 쓴다고 해도 믿을 만큼 빨랐다. 시민들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에 비하면, 한 시민과 다른 한 시민을 만나는 '사이' 시간은 거의 0에 가까웠다. 금민이 시민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유명 연예인의 팬싸인회처럼, 시민들이 금민을 차례차례 만나고 떠나는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근래에 보기 드문 정치인의 '파워 워킹'.

그러나 금민의 파워 워킹은 자신의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비대해진 한국 보수 정치꾼들의 권력욕을, 파렴치한 투기불로소득으로 배가 터질 듯한 부자들의 돈 욕심을 '쏘~옥' 빼기 위한 당당한 발걸음이다. 그리고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 3년의 시간동안 허기질 대로 허기져, 반대의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힘찬 발걸음이다. 이제 금민의 파워워킹은 서민들의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을 것이다. (덤으로, 서민들의 권력이 커지는 만큼 점점 날씬해지는 금민을 상상해본다.)


더욱 단단해진 진보의 결집, 보수정치에 틈을 내다

금민을 지지하는 진보인사들의 지원유세 행렬은 계속됐다.

오늘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나섰다.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이사장이기도 한 김상봉 교수는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계승해서 양극화를 극복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확충해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시대의 과제는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경제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이며 이를 강력히 수행할 사람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천한 기호 9번 금민 뿐"이라며 은평구민의 지지를 간곡히 부탁했다.

오후에는 6.2지방선거 진보신당 인천시장 후보였던 김상하 변호사의 지원유세가 이어졌다.

김상하 변호사는 "은평을 그렇게 잘 챙기고 싶었으면 구청장 후보에 출마했어야 한다"며 지역공약을 남발하며 시민들 앞에 바짝 엎드린 이재오를 나무랐다. 또 지난 10년간 한미 FTA를 추진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해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파탄내고, 중산층을 몰락시킨 민주당은 절대 한나라당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둘은 하나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바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마지막으로 "진보유일 후보 금민을 국회로 보내,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모두를 위한 복지를 실현하자"고 호소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왜 은평에서 진작에 후보를 내지 않았냐", "나는 은평갑이어서 투표를 할 수 없다. 너무 안타깝다"며 응원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횡단보도 앞에서, 커피숍 안에서 박수를 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이제 은평에서는 흔한 일이다. 은평시민들의 마음에서 진보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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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흉악한 구석이 있다. 순수하고, 착하고, 그렇지만은 않고, 나한테는 좀 흉악한 구석이 있다.

지금 와서 공개하면, 이계안이 은평에 나올 생각이 있다고 할 때, 나는 택도 없는 생각 하지도 말고, 차라리 '강남 좌파' 내걸고 압구정에서 승부봐라, 그렇게 말했다.

은평은, 구석구석까지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내가 잘 아는 동네 중의 하나이다.

인간 우석훈, 대학 시절부터 그렇게 데모하고 선동질하고 돌아다녀도, 서대문서에서 대략의 윤곽은 잡아도 끝까지 이름은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미꾸라지처럼 잘 도망 다녔었다.

그걸 위해서 가출까지 하면서 운동하는데, 족적이 잘 잡히지가 않을 것 아니냐.

그런 내가 처음으로 벌금형이지만 실형 선고 받은 곳이 바로 은평 뉴타운 때였고, 은평 경찰서에 출두하고 그러면서...

결국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진 곳이 은평구였다.

상고할까 했는데, 그런다고 이제 곧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명박한테 이길 가능성도 별로 없어보이고, 무엇보다도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벌금 내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서 가끔 꿈에도 나오는 게, 한양주택 주민들과 당시의 한양주택 지도부들의 모습. 나도 목숨걸고 시민단체 연대체의 사무국장 역할을 하면서 몇 년을 뛰어들었던 뉴타운 싸움에서 지고 물러나면서, 다 잊을 법 했지만, 한양주택 주민들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것은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솔직히, 은평에서 41년 살았다고 하는 이재오 앞에서,

내가 사실상 이재오 사무실이었던 서울민중연합 사무실에서 간사로 데뷔할 때, 그 때도 사무실이 홍제동에 있었다.

야당 후보들은 여기에 명함 내밀 처지 안된다.

나오겠다고 하던 이계안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그 이상의 명분을 나에게 보여주지 못했고, 금민 후보도 앞으로는 살겠다는 거지, 당신이 은평을 뭘 아느냐, 하면 별 할 얘기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50보 100보다.

백기완 선생이 이 동네에 살고, 그 양반 집이 딱 뉴타운 구역에 들어가 있었다. 겨울에 보일러 고칠 돈이 없다고 신문에 나왔던 바로 그 해의 일이었다. 이 양반은 누굴 지지할까, 그런 얘기들이 은평의 얘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이번 은평 선거는, 꼭 이계안 아니더라도 민주당에서 적당한 사람 내면 그냥 합치자, 그렇게 지지할 생각이 있었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한명숙 후보가 졌을 때, 그 마음의 부채감이 나라고 왜 없었겠나.
 
(부채감 있다, 아주 약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노회찬 후원회장 하면서 3% 고지를 지킨다고 나도 열심히 뛰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 선거 패배에 대한 부채감 마저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상이 이 지역에서 후보로 결정되었을 때, 솔직히 나는 그러한 판단에 대해서 존재론적인 질문도 던졌다.

왜 하필 장상? 천호선처럼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그래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가자, 그럴 수도 있었을텐데, 장상!

좋든 싫든, 그도 나의 상사였던 적이 있고, 현대그룹 시절부터 나의 직장 생활 마지막 순간까지, 상사와 다툼은 많았어도 상사가 싫어서 근무지를 옮긴 딱 한 번의 경험이 장상과 함께...

그래서 이번 재보궐 그리고 특히 은평구 선거는 그냥 넘어갈려고 했다. 어차피 나는 투표권도 없고, 나는 이제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는 모른다... 할려고 했다.

그러나 금민이 내건 정책이, 그냥 묻고 가기에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마이너 리그, 동네 리그인데, 금민이나 지지하자, 그게 애초의 생각이었다.

금민, 나도 최영미와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 그 자리에서 처음 봤다.

그리고 이틀 연속 유세를 같이 했는데.

솔직히 이런 음흉한 생각은 든다.

장상이 후보로 결정되면서, '천기' 같은 요상한 표현을 치자면, 이재오의 운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얘기들은, 선거 좀 지나고, 또 격풍 좀 지나서, 이제 누구한테 상처줄려고 그 얘기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정도 시간이 되면 그 때 하기로 하자.)

어차피 어려운 것, 정책이라도 좀 보자,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사실이다.

금민이 xx% 정도를 넘으면, 이재오 보다는 뒤지지만, 아마 장상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 야당 통합 후보다는 살짝 투표율이 넘게 된다.

물론 현실적 가능성 0%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생각은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최소한 사회당이 내건 정책은 선거사에 남는다.

그런 생각도 좀 한다.

나한테 진짜 어려운 질문은 이런 거다.

예를 들면, 천호선을 지지했던 표가 장상한테는 갈 것인가?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생전 처음 사회당이라는 요상한 이름에 투표하는 사람들은, 과연 투표장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런 질문들을 가지면서, 만약 금민이 야당 통합 후보보다 높게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흉악한 생각들을 좀 해본다.


(오늘 거리에서, 어제는 못 본 새로운 흐름의 전환 가능성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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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임시연습장 - 우석훈 http://retired.tistory.com/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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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금민 사회당 후보] "4대강 삽질보다 '기본소득제'가 훨씬 경제적"
 
김영국
▲ 금민 사회당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 대자보 박진철

지난 21일 7.28 국회의원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인 은평을 찾았다. 전반적인 선거 분위기도 살펴보고, <대자보>가 기획한 금민 사회당 후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재보궐 선거인데다 더운 날씨에 치러지는 선거여서인지 유권자들의 반응과 열기는 썰렁 그 자체였다. 권력 실세인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의 조용한 선거 전략도 한몫한 것 같다.
 
당초 30분 정도 예정하고 시작한 인터뷰는 한 시간이나 계속됐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은 후보란 걸 미쳐 계산하지 못 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회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한 켠을 짓눌러서인지 중간에 끊지도 못 했다.
 
후보는 물론 사회당, 사회적 공화주의, 기본소득제, 예상을 깨고 북적대는 선거사무실, 선거 자체를 즐기는 듯한 사회당 대학생들…. 하나같이 '궁금투성이'였다.
 
게다가 이들의 유세 현장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이날만큼은 목에 핏대 세우며 연설하는 대신, 유세차를 활용해 더위와 고단한 삶에 지친 주민들을 위해 작음 음악회를 열어 휴식을 제공해주었다.
 
▲ 금민 사회당 은평을 후보의 '유세 장면'     © 대자보 박진철

젊은 학생 당원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자 당 대표라는 사람은 오카리나(흙피리)를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마실 나오듯 왔다는 우석훈 <88만원 세대> 저자는 지원유세 대신 통키타를 치며 '일어나'를 목청껏 불러 제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저자인 최영미 시인은 잔잔한 시낭송과 엣지있는 지지연설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선거 현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유익하고 흐뭇해보기는 처음이다. 꼭 선거 때문이 아니라,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들을 만나고 알아볼 기회가 있었겠는가.
 
아래는 금민 사회당 후보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진보 지식인 거의 전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자보: 진보신당 서울시당이 이번 은평을 재보선에서 금민 사회당 후보 지지를 공식 결정하고, 노회찬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서기로 한데다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금민 후보를 위해 사퇴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88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교수도 금민 후보를 돕고 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 금민 사회당 후보     © 대자보 박진철
▲금민:
일단 지지의 성격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저 개인 혹은 사회당만을 지지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보다는 폭넓게 진보정치가 재구성이 되어야 하고, 지금 이 상태로는 진보정치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성을 확신하는 분들의 지지가 쇄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진보적인 지식인 거의 전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를 대안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나의 명분을 그분들이 지지해준 것이다. 결코 저 개인을 지지해준 것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신당의 지지 결정이 타이밍상 약간 늦었긴 하지만, 어쨌든 나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무엇보다 대표단이 그냥 결정한 것이 아니라 공당의 공식적 절차를 거쳐서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또 진보정치가 현재 처해 있는 모든 현실적 문제들을 숙고한 끝에 이루어진 매우 신중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빨리 지지받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 지지가 현재 더 많은 지지를 만들어내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 금민 후보의 선거 캠프나 운동원들을 보면, '고군분투', '악전고투'라는 예상과 달리 상당히 젊고 활기차 보인다. 당세가 약한 사회당의 형편을 고려하면 다른 보수정당의 후보들과 비교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갖춰진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동안 이번 선거를 어떻게 준비해왔나.
 
▲금민: 사회당의 당세가 약하긴 하지만 한 지역의 선거를 버거워할 정도의 당력은 아니다. 사회당도 전국정당이고 당원 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리고 지난 12년 동안 정당활동을 해 온 정당이기 때문에 일개 지역의 선거를 치르는데 기세에서 밀린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따라서 그 정도의 캠프를 가지고 출발한 게 사실이다. 
 
▲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교수가 금민 사회당 후보 지원유세차 통기타를 치며 '일어나'(김광석)를 부르고 있다.     © 대자보 박진철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원내정당이 아니고 또 원외에 있으면서도 많은 포괄적인 시민사회의 지원을 얻어낼 만한 언론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다른 때와 달리 일찍이 진보교수연구자 모임이 지지를 해주었다. 또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과 김수행·김세균 교수, 촛불 때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우희종 교수 등도 일찍 지지를 결정해줘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다소 유리한 조건이 됐다.
 
그리고 우리 캠프의 젊은 선거운동원들은 '알바'가 전혀 아니다. 사회당 당원들도 있고, 사회당을 지지하는 대학생 단체의 회원들도 있다. 또 인연맺기운동본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오신 분들도 있다. 대부분 대학 1학년부터 27세까지의 청년들이다. 대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는데, 고정적으로 있는 분들도 있고 일일 선거운동을 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잘 모르는 분들도 굉장히 많다. 선거운동 방식도 젊은 친구들이 스스로 고안해서 하고 있다. 젊은 감성은 그들이 더 잘 알고 따라서 그들 방식대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고마울 따름이다.
 
이재오 나홀로 선거운동, 떳떳하지 않다
 
☞ 'MB 대리인'격인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에 대해 평가해달라. 이 후보의 나홀로 선거방식에 대해서도 촌평을 해달라.
 
▲금민: 이재오 후보의 나홀로 선거운동 전략은 득표로만 보면 유효적절할 수 있다. 여기에서 41년 사신 분이고, 은평구민들이 거의 다 이웃사촌 같은 분들일 것이다. 등산객 하나하나까지 알고 있는 분이다. 그래서 이 후보의 선거운동은 연고에 입각한 동정, 호소 전략이다.
 
현재 이 후보의 전략은 자신과 이명박 정부를 나누는 전략이다. MB는 MB고 나는 나다. 나는 은평 사람이고 나는 은평 사람들을 대변하겠다는 일종의 갈라치기 전략이다. 그런데 이 후보가 단순히 은평 사람을 대변하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고 말할 수 있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이명박 정권 말기에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떳떳하지 않다.
 
그리고 이 떳떳하지 않은 선거전략은 지금은 먹히고 있는지 모르지만, 다른 여건들이 급격히 변화할 때 먹히지 않을 수 있음을 이재오 후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가 그런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MB 정부가 신망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정정당당한 선거운동 방식이 아니다.
 
▲ '은평을 후보들 한자리에'  왼쪽부터 천호선 국민참여당, 이상규 민주노동당, 이재오 한나라당, 유원옥 공선협 상임대표, 장상 민주당, 금민 사회당, 안웅현 통일당 후보     © 대자보 박진철

장상,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 민주당이 신경민 MBC 선임기자를 영입하려다 실패하고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를 공천한 걸 두고 여전히 말이 많다. 이재오의 대항마로서 함량미달 아니냐는 평가 때문에 민주당 당원들도 우려가 적지 않은데, 실제 은평을 유권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장상 후보를 평가한다면?
 
▲금민: 장상 후보를 두고 말이 많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제가 듣는 얘기가 민주당이 지역에서 오래 일한 일꾼들을 제치고 장상 후보를 고집한 게 이해가 안 간다고들 한다. 장 후보가 경쟁력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은평의 지역 후보들도 그만큼 할 수 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항의성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두 번째는 장상이건 누구건 좋다. 단일화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유권자들의 반응은 뜨겁지가 않다. 장상 후보와 민주당을 찍고 싶은 유권자들이 일체감을 가진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민주당 표가 집에서 침묵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혹은 다른 대안이 등장할 때 그쪽으로 쏠려갈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후보들이 현재로서는 민주당 표를 결집시킬 수 있는 정서적인 간격을 메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제가 장상 후보 개인을 볼 때는 그분이 왜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다. 이것 역시 이재오 후보와 마찬가지로 장 후보에게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다. 국회의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나라 전체와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인데, 장 후보의 공약에는 지역 공약 외에 다른 것은 딱히 보이지가 않는다. 구청장에 적합한 분 아닌가 생각된다.
 
야3당 단일화 논의 '퇴행적', 성사되도 파괴력 없어
 
☞ 이번 은평을 재보선에도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은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여론조사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 야3당의 단일화 논의에 대한 평가와 성사 가능성 그리고 파괴력 등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나.
 
▲금민: 일단 저는 선거연대, 연합정치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연대·연합을 위해서는 정책, 대안, 비전 등을 서로 최소한 합의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6.2지방선거 이전부터 5+4연대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 야권의 연대·연합 틀은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식이었다. 정책연합이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완전히 세력 연합, 자리 나누기 연합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리가 별로 없다. 한마디로 흥정 거래의 틀이 됐다.
 
나는 이 틀 자체가 한국정치를 퇴행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MB 연대가 정작 필요한 그 이유 자체마저도 실종시켰다고 본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 특히 MB 실정에 화가 난 국민들은 밑에서부터 단일화를 요구한다. 그런데 아래로부터 단일화를 요구하는 흐름과 위에서 진행되는 단일화 흐름은 전혀 다르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MB를 넘어서는 뭔가를 해달라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흐름이다. 단합해서 MB 넘어서는 어떤 대안을 이야기해달라는 강요이다. 그런데 이런 요청에 야3당의 단일화 논의 틀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굉장히 낙후된 틀이고 정치 발전 측면에서 보면 퇴행적인 것이다.
 
설사 성사되더라도 파괴력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단일화가 힘을 받을려면 후보등록 전에, 최소한 공보물 발송 전에는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재오 후보가 꼭 당선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론조사 믿을 수 없다. 매우 복잡한 선거다. 박사모도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지지표도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마지막까지 표를 까봐야 아는 상황이 되고 있다. 물론 박사모의 정적 제거를 위한 낙선운동 방식은 가장 나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만큼 MB에 대한 신망이 떨어져서 이재오 의원이 MB의 아바타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노당 후보의 '정치 사기극', 즉각 사퇴해야 
 
☞ 금민 후보는 그동안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를 향해 "언제든지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후보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후보와는 후보단일화를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의 단일화가 성사된다 해도 이 단일후보와 단일화할 생각이 없는 건가. 끝까지 완주할 생각인가? 

▲ 금민 사회당 후보     © 대자보 박진철
▲금민:
저는 저를 지지하는 표가 단순히 사회당 지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께 우희종 교수가 오셔서 지지연설을 해주셨는데, 저를 보고 진보정치의 심볼이라고 말했다. 저는 저 스스로를 진보대안 정치의 대변자, 대표자, 현 국면에서의 대표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보신당의 지지 이후에 단일진보후보나 진보단일후보라는 말을 스스로 사용한다.
 
그런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야3당의 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야3당의 틀이 민주노동당에게 연대·연합 정치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몇일 전에 민주노동당에 공문을 보냈다. 조건없이 만나서 진보대연합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 아예 응답이 없다. 또 야3당 연대와 진보대연합, 이 두 가지 틀을 동시에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상규 후보가 연설을 할 때 '자기야말로 야권연대의 주역이다. 자기는 사회당 금민 후보까지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가 이상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 둘이 먼저 해결한 다음에 우리의 틀 즉 진보대연합을 넘어서는 연대·연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둘의 틀은 전혀 구성하지 않고 저쪽 틀을 구성하고 있으면서 '나는 금민을 사퇴시킬 수 있는 후보이니 나를 밀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이거야 말로 정치 사기극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상규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완주한다. 왜? 이건 의리에 대한, 정치적 도리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남의 공문에는 전혀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연설에서는 자기로 단일화되면 금민은 지지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말도 안되는 망발 아닌가. 나는 이 상태에서는 진보대연합의 대의와 정당성을 위해서 이상규 후보가 즉각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상규 후보와 민주노동당은 진보대연합에 관심이 없다. 야3당 틀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 사이에 어떤 틀을 형성할 수 있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 이상규 후보가 거부해 왔다. 이상규 후보가 국민참여당·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두면서 그 과정 속에 금민 후보와 단일화를 하려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상규 후보의 태도는 손을 양쪽으로 내미는 것이고, 저로 대표되는 세력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저희의 입장은 '선(先) 진보대연합'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의 연대·연합 정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진보대연합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과는 이야기할 수 없다.
 
개혁세력과 연합, 대안 중심 '협의체' 구성이 우선
 
☞ 민주당·국민참여당 등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사회당 등 진보세력이 선거연대나 연합정치가 성사되려면 최소한 어떤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나? 예컨대 민주당이나 소속 정치인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거나 어떤 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든가 그런 조건이 있는가?
 
▲ 금민 사회당 후보     © 대자보 박진철
▲금민:
형식적으로는 대안 중심의 연대·연합 논의의 틀이 만들어져야 우리가 그 논의에 낄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말만 하지 말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세·재정 개혁안에 대해서 떳떳하게 얘기를 해야 한다. 떳떳하게 증세 프레임, 투기불로소득 중과세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 없이 어떻게 그 재원을 충당할 것인가. 그런 말도 없이 복지 마케팅만 해서 거저먹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의 주장을 보면 이건 뭐 허경영과 비슷한 수준이다. 뭐 해주겠다, 뭐 해주겠다는 말은 많은데 정작 쥐꼬리 같은 복지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이다.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OECD 국가 수준의 담세율(세금을 부담하는 비율)로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의 담세율은 현재 19.7% 정도밖에 안된다. 이것은 거의 세계 최하위 국가이다. 이것을 적어도 35%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미국 스텐다드라고 말은 많이 하는데 그럴려면 뉴욕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뉴욕도 담세율이 30% 이상 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정당은 부자 정당이고 귀족 정당이고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다.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보편적 복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합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협의체 틀을 만들기 전에 제발 재정 문제부터 이야기 좀 했으면 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정치인들은 국가재정 문제는 아예 건드리지 않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분들이 집권을 하면 뭘 할 수 있겠나. 결국 쥐꼬리 같은 복지 몇 가지로 오세훈·이명박보다 조금 더 많이 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치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재정 문제다. 조세·재정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걸 합의할 수 있는 협의체 틀이 있어야 한다. 대안 중심의 연대·엽합을 하기 위한 협의체 틀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 없이 늘 선거에서 나눠먹기 위한 틀만 있어 왔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긴 후에, 정권을 잡은 후에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청사진과 프로그램을 서로 합의해야 한다. 그 협의체 틀에서 최소한 우리가 판단할 때 '우리한테는 좀 미흡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되겠다' 하면 민주당 등과 연대·연합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그런 틀 자체가 없다. 그런 틀을 만들어서 같이 논의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협의체 틀 안에서 진보정치 세력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진보정치의 선 결집, 선 연합이 있어야 생긴다. 진보정치가 먼저 자기들끼리 뭉쳐야 되는데, 지금처럼 민주노동당은 저쪽에 가서 놀고 나머지는 각자 나눠져 있는 상태에서는 안 된다. 진보정치의 통합과 연합이 전제조건이다.
 
'노무현만도 못한' 민주·국민참여당, 반성·성찰해야
 
또 하나는 민주당·국민참여당 세력의 과거 집권 시절 정책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 예컨대 의료민영화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정책이 아니다. 제가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가 '노무현은 자신을 딛고 진보의 시대로 가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야권연대는 '진보를 딛고 노무현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이건 안될 말이다. 그건 오히려 노무현 정신을 폭 좁게 만들고, 노무현을 두번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지금의 민주개혁 세력이다.
 
▲ 금민 사회당 후보     © 대자보 박진철

제대로 된 계승 세력이라고 한다면 노무현 정권의 잘된 점은 계승하되 부족하고 아쉬웠던 점은 좀 더 진보적인 대안으로 이어가야 하는데, 지금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과 영정에 의존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은 진정한 노무현 계승 세력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만도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노 전 대통령이 '나를 밟고 진보의 시대로 가라'라고 말을 할 때는 자기의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진보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성을 했다고 본다. 즉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그들은 모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한 행동과 퇴임 이후의 자기 성찰을 나눠서 봐야 한다. 최소한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이라도 반성하고 성찰하라는 게 저의 주문이다.
 
진보신당·사회당 선통합 후 민노당과 상설적 정치연대체로
 
☞ 금민 후보는 최근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선(先) 통합을 주장했다. 그 배경과 향후 진보정당들의 재편과 관련한 금 후보의 입장 또는 구상을 말해달라.
 
▲금민: 저의 주장은 꼭 사회당과 진보신당만의 선통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두 당을 포함해서 현재 은평을에서 저의 출마의 정당성에 대해 동의하는 모든 진보적인 개인, 세력의 통합을 의미한다. 그것이 저희가 추진하려고 하는 통합이다. 이것이 선결집이다.
 
그렇게 먼저 하나의 정치세력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 선결집은 진보정치 재구성의 1단계다. 그런 다음에 민주노동당의 문제가 남아 있는데, 저는 선결집된 진보정치 세력이 민주노동당과 상설적인 정치전선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합당까지는 가지 못 한다 하더라도 상설적인 정치연대체. 즉 선거대응을 같이 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의제들을 같이 이야기하고 행동 통일을 하는 상설적인 정치선전체를 만드는 것이 옳다. 그래야 2012년 선거가 있을 때 먼저 진보진영이 논의하고 그 다음에 민주개혁세력과 선거연합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이쪽에 먼저 참여하고 이쪽의 결정에 따라 민주당과 연대연합 논의를 풀어가야 한다.
 
물론 두 당이 통합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과정에는 여러가지 필요한 일들이 있다. 그리고 2012년까지 무조건 통합하는 것이 전제라고 하면, 실제 통합이 안 되면 또 아무 것도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일단 상설적 정치연대체로 가는 것이 옳다.
 
비민주·범진보대통합당 '비현실적', 빅텐트론 '말도 안돼'
 
☞ 그런데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연대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고, 그런 흐름이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쭉 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민주노동당이 겉으로는 진보대연합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민주당과 연합에 방점이 찍혀 있고, 선거 때는 진보정당들을 제쳐놓고 '민주당과 후보 조정 협상'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민주노동당을 상대로 진보신당, 사회당이 결합해서 비민주·진보대통합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빅텐트론까지 이야기한다.
 
▲금민: 심상정 전 의원 등이 주장하는 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한 비민주·범진보대통합정당론은 지금 현재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계획인지 의문이다. 기본 토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명명가들이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많다. 두 번째는 그러한 목표로 나아가자고 주장은 할 수 있는데, 진보정치 선결집과 상설적 정치전선체를 우회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선후 화급을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주장은 그 주장 자체로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정치는 어차피 경로 의존적이다. 어떤 경로를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목표에 도달했을 때도 상당히 많은 차이를 뜻할 수 있다.
 
그리고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주장하고 있는 빅텐트론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원래 한 병영에서도 텐트는 다 따로 친다. 야영장에 군대가 모일 때도 텐트는 다 따로 치고 모인다. 그리고 사실 그만한 큰 텐트를 치는 것 자체가 모으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차라리 민주당에 다 들어가자고 한다면 속 시원한 이야기일 텐데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어쨌든 그런 주장에서도 전제조건으로 민주당의 쇄신이 중요할 것이다. 김기식 씨의 주장을 언론에서 띄워주는 이유는 민주당의 쇄신을 바라는 여론이 굉장히 많다는 뜻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그런 계획은 다 민주당의 쇄신을 전제로 한 계획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과연 쇄신이 가능한 정당인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결국 비민주·범진보대통합정당과 빅텐트론은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경로가 다르다. 따라서 방식도 다르고, 똑같은 목표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목표의 성격 자체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진보대연합 결성을 위해 현재 민주당과의 연대로 기울어져 있는 민주노동당을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물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2012년까지 견인해야 한다고 본다. 설령 민주노동당 상층부가 그런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은 한국에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바라는 사람들과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이다. 그런 10년의 역사를 민주노동당이 송두리째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이라는 화두를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계기적으로 견인을 해서 최소한 상설적 정치전선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실제 이번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에서 진보대연합을 말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는 구호를 내세운 후보가 당선됐다. 아래로부터 진보대연합의 요구가 분명히 있다. 정치는 힘의 문제다. 이쪽의 힘이 충분히 생기고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진보정치 세력의 선결집이 이루어진다면 민주노동당도 견인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공화주의? '먹고사는데 최소한의 기본적 조건이 같은 사회'
 
☞ 금민 후보 하면 '사회적 공화주의'란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사회적 공화주의가 무슨 뜻인지 일반 대중은 거의 감을 잡지 못 한다. 사회적 공화주의란 한마디로 알기 쉽게 말하면 무엇인가? 또 사회주의, 사민주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사회당과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사이에 어떤 노선 상의 차이가 있는가?
 
▲ 사회당 대학생 선거운동원과 어린이의 즐거운 비누방울 놀이     © 대자보 박진철

▲금민: 사회적 공화주의는 사실 간단한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이후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됐다. 그 때문에 그전에 있었던 국민의 공통성이 해체됐다. 따라서 사회적 공화주의는 국민의 사회경제적인 공통성을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공공서비스를 확충하고, 현금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사회경제적인 부분에서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국민이 다 공통적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 공통적이어야 된다는 것이 바로 공화국이다. 공화국이라는 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뜻이고 공통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1등 국민 따로 있고 2등 국민 따로 있고, 이렇게 돼서야 이걸 공화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투표는 하니까 민주주의는 맞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고 또한 공화국 즉 사회경제적인 공통성이 보장되는 국가가 핵심이다. 그래서 사회적 공화주의란 사회경제적 공통성이 최소한 일정 수준까지는 보장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공화주의는 정책으로 이야기가 돼 왔다. 하나는 공공서비스 확충이고,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이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저의 2007년 대선 공약이었고, 지금도 저의 1호 공약이 기본소득이다.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오히려 기본소득으로 접근하니까 사회적 공화주의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사회적 공화주의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사회적 공화주의가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일단 전통적인 사민주의는 1970년 중반 공황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면서 해체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고립된 섬 같은 북유럽 모델이다. 나머지 사회민주주의는 거의 무너졌다. 제3의 길이니 신중도 노선이니 이런 게 나오면서 다 무너졌다. 그 무너지는 이유를 나는 많이 분석했다. 그래서 옛날 사민주의 모델로 돌아간다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대안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다. 그렇다고 옛날 모델인 공공서비스 체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이것의 장점을 가져가면서 현금 기본소득을 통해서 보편적 복지 체계를 완비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본다. 
 
사회적 공화주의가 사민주의냐 사회주의냐라고 물을 때 나는 사민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라고 말한다. 왜 사민주의가 아니다라고 얘기를 하느냐면,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50~60년대 사회민주주의의 황금기 모델도 아니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쓴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포물선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 원환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든, 새로운 진보 이념이든 뭔가가 나와야 한다. 저는 기본소득과 사회적 공화주의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주의가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회적 공화주의나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는 사회주의 정책이 아니다. 그 자체로는 소유권 문제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이행의 조건이기는 하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과 기본 토대를 쌓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식 사회주의, 북한식 사회주의, 중국식 사회주의는 사회당의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90년대 사회당 창당 때부터 줄곧 이야기해 왔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로 우리가 찬성하지 않는다. 국유제, 수령제 그런 것도 찬성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한다. 이런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 그런 의미의 사회주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해방된 사회라는 의미로 사회주의라는 말을 쓴다면 관계는 있겠으나 직접적으로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것을 트랜스포메이션하는 정책 즉 대안, 얼터너티브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사회적 공화주의는 전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조건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의 개인적인 소유관계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주의 정책은 아니다. 다만 소유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는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가 수립된다. 기본소득을 통해서 협동조합 등이 수립이 되고 혹은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는 데 초기 조건이 된다. 또 우리는 이 이행을 평화 이행으로 생각하지 어떤 급격한 사변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당 또는 의회주의·수권주의 노선을 부정하고 혁명주의 노선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노위, 사노련 등과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주장하는지는 제가 잘 모른다. 아직은 그 주장이 완결된 형태로 나온 것이 없다. 그 분들의 주장이 대중에게 표방된 형태로 나오면 그 때 가서 자세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증세 프레임으로 MB식 감세 프레임과 싸워야
연봉 1억 소득자도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 금민 후보가 다른 당 후보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기본소득제·대중교통 무료화·전국민 주치의제' 같은 파격적인 공약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뜻은 좋은데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반응이 많다. 심지어 공약 제목만 보고 '허경영인줄 알았다'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이번 기회에 이런 공약을 내건 이유와 그 실현 방법 특히 재원 마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금민 사회당 후보     © 대자보 박진철
▲금민:
저의 공보물에 가장 중요한 페이지 하나가 재원 문제로 되어 있다. 저는 오히려 재원 문제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복지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포퓰리스트가 아니다. 지금 이명박 시대는 감세 프레임의 시대다. 증세 프레임을 이야기 하면 손해를 본다. 그런데 저는 증세 프레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건 프레임 전쟁이다. 이명박의 감세 프레임과 저의 증세 프레임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프레임 전쟁을 회피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바로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야권연대다. 이걸 안 하려고 한다. 보편적 복지라는 얘기만 할 뿐이지 정면으로 이명박 정권의 감세 프레임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의 주장은 최소한 OECD 수준으로 올리자는 증세 프레임이다.
 
두 번째는 한국이 또 유달리 금융적인 수탈, 지대적인 수탈이 많은 나라이다. 즉 땅투기 많고 금융투기가 유달리 많은 나라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 규모에 비해서 금융투기와 땅투기가 많다. 이거 그대로 두면 일본식 장기불황이 온다.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문제, 건설 문제를 조정했어야 했다. 불황기에 하는 일은 그거다. 그런데 불황기라고 해서 또 거꾸로 그걸 못 했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계속해서 땅 문제로 인해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갈 우려가 있다.
 
그래서 저는 투기불로소득 고율 과세를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일정한 규제를 해야 한다. 규제를 마구 철폐할 것이 아니다. 미국도 금융규제를 다시 하겠다고 그러는데 이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일정하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재원을 만들고 유럽화하자는 거다. 유럽식으로 하자는 거다. 딴 거 아니다.
 
그런데 감세 프레임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실현 가능한가라고 얘기할 때 '세금 올리면 안된다'는 전제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실현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저희가 마련한 재정·조세안에 따르면, 연봉 1억을 받는 근로소득자도 절대 손해보지 않는 방식으로 보편적 복지를 도입할 수 있다. 당신이 받는 것과 당신이 내는 것, 즉 복지를 통해서 당신이 받는 혜택과 당신이 내는 세금이 쌤쌤이 되도록 하겠다. 우리의 이야기대로 하면 중산층까지 다 복지 혜택이 돌아간다. 그런데 혜택만 받는 것이 아니라 세금도 내야 한다. 이렇게 중산층을 설득하고 있다.
 
MB 4대강 삽질보다 '기본소득제'가 훨씬 훌륭한 경제정책
 
☞ 증세를 주장할 수는 있는데, 대중들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다. 선거에서도 상당히 타격을 많이 받는다. '세금 폭탄'이라는 보수신문의 마타도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내가 세금을 냈을 때 정부가 나에게 주는 혜택이 별로 없고 또 세금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새나간다는 불신도 깔려 있다. 또 하나는 '부자 마케팅' 열풍에서도 보듯이 내가 지금은 형편이 이렇지만 나도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대중들에게 있다. 그래서 집과 주식 투자 열풍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데 증세 프레임은 내가 부자가 되었을 때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자 하는 나의 희망을 빼앗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그런 부분들을 설득해내는 문제가 증세 프레임이 감세 프레임과의 싸움에서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사회당 금민 후보뿐만 아니라 민주당이든 진보정당이든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증세 프레임에 속할 수밖에 없는 정치세력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결국 내가 세금을 좀 더 내는 것이 '그 세금을 안 내고 내가 지금 사교육, 사보험에 쏟아붓고 있는 돈'보다 훨씬 덜 먹히고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과제 아닐까.
 
▲금민: 그걸 개별적으로 조세 심리적으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본다. 사실 미국식 정치의 강점이자 약점이 바로 유권자 심리학이다. 그것은 시장 심리학이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시장에서의 합리적 선택론에 입각해서 시장도 분석하고 정치도 분석한다. 이 방식에는 장점도 있지만 허점도 있다. 그 허점을 파고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복지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복지재정을 확충하면 사회적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서민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지기 때문에 내수성장 기업이 발전한다. 또 바깥에서 환율효과로 떼돈을 버는 수출기업들도 당장 한국 환율(한국 돈의 가치)이 올라가면 꽤 손해를 보고 망할 수 있다. 그 사람들도 한국에 물건을 팔 수 있다. 즉 내수 성장, 복지 성장 이런 걸로 설명을 한다.
 
또 하나는 질 좋은 성장을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매번 이야기한 것이 첨단산업이었는데, 하이로드 성장을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노동이 생기고, 과로 체제가 해소되고, 과학기술 혁명의 사회적인 조건이 형성된다. 그래서 우리 전체가 성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 당신들도 다 잘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제가 증세론을 이야기하면서 분배 논리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성장 논리로 얘기한다. 분배론으로만 얘기를 하는 것은 50~60년대 사회민주주의 황금기에나 가능한 얘기다.
 
기본소득제 도입으로 재정 파탄이 우려된다면 재정을 늘리고,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기본소득은 결국 '내가 세금 낸 것 내가 돌려받는 것'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네, 맞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런데 부자는 많이 내고 적게 돌려받는다.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고 많이 돌려받는다. 일종의 국가가 현금을 걷어서 골고루 나눠주는 현금 재분배가 일어난다. 즉, 주기는 똑같이 나눠주는데 세금을 걷을 때는 소득에 따라 걷는다. 어떤 사람은 세금을 150 내는데 돌려받는 것은 50이고, 어떤 사람은 세금 30 내는데 50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현금 재분배를 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가 얘기하는 부자 감세에 의한 트리클 다운 효과(낙수효과) 이런 것은 없다.
 
이재오·야3당은 사표, 금민은 느낌표!
 
☞ 보수신문들이 금민 후보의 주장을 들으면, '부자들 돈 뺏어서 서민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좌파빨갱이의 주장이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이야기냐,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빼앗는 게 제대로 된 사회냐'고 공격할 것 같다.
 
▲금민: 내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에도 맞다. 그런 조선일보식 논리로 가면 공황이 온다. 저는 케인즈보다 한발 더 나아간 주장을 하지만, 케인즈도 이런 주장을 했다. 케인즈가 대공황 때 영국 은행에 있는 모든 금괴를 폐탄광에 묻고 사람들로 하여금 캐가게 하라고 했다. 즉 돈을 그냥 나눠주자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냥 나눠줄 순 없으니 탄광에다 묻고 사람들이 가서 노동을 해서 캐가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발상이 실현된 것이 일종의 공공 토목공사다. 필요한 일을 시킨답시고 요즘 우리 눈으로 보면 환경파괴에 해당되는 일들을 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삽질보다는 기본소득이 훨씬 더 훌륭한 경제위기 대응책이라고 생각한다.
 
☞ 끝으로 은평을 유권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금민: 첫째, 이재오 찍으면 사표(死標)다. 왜 사표냐. 강도 죽이고 사람도 죽인다. 그거야 말로 사표 아닌가. 두 번째, 민주당이나 야권연대 후보 찍으면 그것 역시 사표다. 그 표가 미래를 위해 어떤 힘도 못 쓰고 죽는다. 저를 찍으면 그 표야말로 현재의 절망에 마침표를 찍는 마침표다. 그리고 미래를 여는 느낌표가 될 것이다. 저를 찍는 표만이 사표가 아니다. 진보대안을 선택해야만 그것이 사표가 안 된다. 그리고 누구를 찍어도 그 표가 당선자에 대한 유효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번 선거에서 진보대안 후보를 선택해주시는 것이 미래를 대비한 선택이 될 것이다.  
 
▲ 최영미 시인(왼쪽)의 금민 지지..'투기와 수탈 없는 세상,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는 세상을 위해'     © 대자보 박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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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을 재선거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기사입력: 2010/07/24 [13:5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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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파일을 다운로드 하셔서 들어보셔야 합니다.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호 9번 금민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선거 로고송

부자에겐 세금 폭탄 안겨줄 금민
국민에겐 기본소득 지급할 금민
은평의 목소리로 외쳐요
기호9번 금민의 복지혁명

4대강을 지킬게요 용감한 금민
보수정치 호통치는 시원한 금민
은평의 목소리로 외쳐요
기호9번 금민의 진보정치

청년들의 일자리를 나눠줄 금민
노인에게 월급주는 친절한 금민
은평의 목소리로 외쳐요
기호9번 금민의 복지혁명

4대강을 지킬게요 용감한 금민
보수정치 호통치는 시원한 금민
은평의 목소리로 외쳐요
기호9번 금민의 진보정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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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오늘(24일) 은평을 방문해 금민 후보 선거운동을 함께 했다. 김상봉 교수는 지원 유세에서 “전라도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내가,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이사장인 내가 금민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사회적 공공성, 복지국가 실현을 오직 사회당 금민 후보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사회 진보의 과제는 독재 종식, 민주주의 쟁취였으며 보수는 한나라당 진보개혁세력은 민주당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87년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제도로 정착됐다. 이 제도를 흔드는 이명박을 비판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정치의 미래를 열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상봉 교수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양극화”라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승계해서 양극화를 극복하고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사회적 공공성을 확충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덧붙여 “거대 야당은 양극화를 극복할 능력과 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정권 시절에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 정리해고, 재래시장 잠식, 88만원세대의 등장이 모두 민주정부 10년 동안 있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상봉 교수는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과제는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경제적 민주화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며 “보다 인간적인 세상, 살기 좋은 세상,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호 9번 금민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은평구민들에게 호소했다.

김상봉 교수 소개

전남대 철학과 교수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이사장
마인츠대학교대학원 철학 박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
참여사회연구소 편집위원
학벌 없는 사회 정책위원장

 

2010년 7월 24일
금민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선거운동본부


<사진설명> 위-금민 후보와 함께 은평구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김상봉 교수(사진 왼쪽) 중간-금민 후보 지지 연설을 하는 김상봉 교수와 최광은 사회당 대표 아래-왼쪽부터 김상봉 교수, 김명화 진보신당 당원, 금민 후보, 김승권 진보신당 은평당협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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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3일 저녁 7시 응암동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최로 금민 후보 선거운동본부 공동선대위원장인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강연이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 약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행복한 세상은 누가 만드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 날 강연에서 우희종 교수는 진보와 사회 참여에 대한 평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서양 근대과학의 한계 및 현대 과학과 불교 사상의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을 청중들과 자유롭게 나누었다.

“행복한 세상은 행복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경이롭게 여기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한 우희종 교수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사람들은 경쟁에서 남을 이겨야 하고 상대방을 짓밟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것, 힘 가진 사람이 힘없는 사람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몫을 뺏어가는 것은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돌려드리는 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며,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금민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 우희종 교수는 서양 근대과학이 갖는 환원론적 성격을 비판하면서도 “우주가 한 점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빅뱅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과학은 이미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 같은 것이며, 우리라는 것 자체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의 세계와 금강의 세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상을 버리라’고 주장한 금강경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열린 아상을 갖는 것’ 즉, 우리 속에서 빚어진 우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화엄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더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저녁 유세를 마치고 강연에 참석한 금민 후보는 “제가 정치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차이와 공통성인데, 교수님께서 화엄의 세계와 금강의 세계에 대해 말씀하셔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금민 후보는 “은평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아동 부모님들과의 간담회를 할 때, 모 학교 교장선생님이 발달 장애아동을 보고 ‘너 언제 낫니?’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모든 개별적인 것이 온전하고 우리와 다를 뿐 온전한 것이라는 차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차별이 여전히 발생한다고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0년 7월 24일
금민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선거운동본부


<사진설명> 위-'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강연하는 우희종 교수. 아래-은평구민들과 함께 우희종 교수의 강연을 즐겁게 경청하는 금민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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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vity forms discount 2011/10/21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